[영화비평]
[임필성의 영화비평] 배타적 공포 다룬 새로운 호러 스릴러 <겟 아웃>의 아쉬운 점
2017-05-30
글 : 임필성 (영화감독)

*<겟 아웃>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0여년 전, 절친인 선배 감독과 함께 미국 아이오와에 2~3주간 머문 적이 있었다. 강의 등 일 때문에 간 것이어서, 자동차로 불과 2시간 거리인 대도시 시카고도 못 가본 채 여행 기간 내내 꼬박 백인 중심의 중소도시에 머물게 된 것. 그러던 어느 주말, 우리는 초청 대학의 주선으로 미국 전통 스포츠 경기인 ‘로데오’를 참관하게 됐다. 10여명의 기수가 성조기를 흔들며 종마에 올라탄 상태로 미국 국가를 부르는 개막 행사의 생경함은 그렇다치고, 우리를 진실로 경악하게 만든 건 국가 제창 뒤에 이어진 흑인 광대의 기묘한 서커스 때문이었다. 우스꽝스럽게 분칠을 하고 나온 흑인 피에로는 잠깐의 슬랩스틱 개그를 선보이더니 이내 큰 드럼통에 몸을 꾸깃꾸깃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한가롭게 서 있던 백마 한 마리가 그 드럼통을 발로 차며 굴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흑인 피에로는 드럼통을 빠져나왔다 다시 들어가는 것을 반복했고 백마는 드럼통과 광대의 행방을 따라다니며 계속해서 발길질을 해댔다. 나와 선배 감독은 황당한 표정으로 이 기묘하고 불편한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족히 2만석은 될 듯한 야외 스타디움의 모든 관객은 박장대소하며 이 서커스를 즐기고 있었던 것. 우리는 조금은 섬뜩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고 그제야 중요한 사실을 자각했다. 우리 두명의 동양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관객이 백인이란 사실을.

이상한 일은 그 이후에도 계속됐다. 술 취한 ‘레드넥’ 백인 아저씨가 다가와 앉은 좌석이 맞는 자리냐며, 우리에게 괜한 시비와 행패를 부린 후에(지정석이 없는 공연이었음에도) 급기야 대학 관계자가 로데오 경기의 1부가 끝나면 바로 숙소로 돌아가자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나와 선배 감독이 그 경기장을 빠져나올 때, 객석의 수많은 백인 관중이 우리를 힐끗거리며 때론 노골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는데 그 낯설고 기이한 분위기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여행 후 선배와 나는 LA나 뉴욕 같은 대도시는 미국의 진짜 모습이 아닌 것 같다며 우리가 경험했던 그 이상한 로데오의 밤을 간혹 추억했다.

한 흑인 청년의 생생한 지옥도

상황과 설정, 인물, 지역 등 모든 것이 다르지만 <겟 아웃>의 주인공 크리스(대니얼 칼루야)가 백인 여자친구 부모의 서늘한 백인 지인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의 느낌을 나는 위의 경험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떤 배타적인 집단에 타자가 되어 한중간에 들어선 느낌. 그건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박사모) 집회 한가운데 끼어든 촛불시위 참여자의 공포일 수도, 로데오의 2만 백인 관객 한가운데에 끼어든 내가 받았던 느낌일 수도 있으며, 유난히 빛나는 검은 피부와 사진에 대한 심미안을 가진 건장한 청년 크리스가 타이거 우즈와 오바마를 들먹이며 동물원의 인기 동물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던지는 영화 속 백인들에게서 받았던 느낌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로튼토마토 평점 99점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매우 영리하고 재능 넘치는 감독 겸 배우 조던 필의 영화 <겟 아웃>은 바로 이 진짜 미국의 치부를 장르영화의 관성에 제대로 버무리며 관객을 긴장의 블랙홀, 아니 화이트홀에 밀어넣는다. 조던 필이 참고한 영화의 리스트는 상당하다. 시드니 포이티어 주연의 고전 <초대받지 않은 손님>(1967)부터 이상적인 부인들이 결국 기괴한 사이보그였다는 설정의 <스텝포드 와이프>(1975), 수많은 주말 별장 호러들, 다른 사람의 내면에 들어가 그의 일상을 텔레비전처럼 바라보는 <존 말코비치 되기>(1999), 브라이언 유즈나의 컬트호러 <소사이어티>(1989), 존 프랑켄하이머의 걸작 스릴러 <세컨드>(1966)까지. 특히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초반 설정이 매우 유사할 뿐 아니라 그 영화에 등장했던 백인 여자친구 부모의 외모와 의상까지 노골적으로 참고한 흔적이 역력하다. 더이상 새로운 모티브도 새로운 이야기도 없다는 21세기 장르영화의 아수라장 속에서 제작사 블룸하우스와 조던 필은 익숙한 장르 클리셰와 레퍼런스로 중심을 잡으며, 인종차별과 우생학이란 모티브를주 멜로디로 삼은 새로운 호러 스릴러의 힙합 리믹스를 선보인 것이다.

타자에 대한 공포는 호러 장르의 영원한 테마이지만 그 섬뜩한 타자들이 사랑하는 여자친구의 부모와 그 친구들이란 설정. 그리고 그들의 욕망이 흑인의 건강한 육체와 젊음이라는 모티브는 분명 다민족 사회를 살아가는 ‘세계 시민’들의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주제일 수밖에 없다. 각 인종이 가지고 있는 우생학적 장점을 결합해 ‘영생’을 누리겠다는 욕망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탐욕이자 신기루에 가까운 광기이지만 그걸 실현시키겠다며 과학과 의학, 최면술까지 동원하면서 발버둥치는 자들의 동네는 지옥의 한 귀퉁이일 수밖에 없다. 결국 <겟 아웃>에 열광하는 관객은 한 흑인 청년의 지옥도를 생생하게 체험한 후 극장의 불이 켜졌을 때 자신이 안전한 세상에 있다는 안도와 평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장르 흥행작 정도에 그치다

<겟 아웃>이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전복적인 장르영화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생각되는 지점은 바로 그 철저한 상업영화로서의 안정성 때문이었다. 블룸하우스와 조던 필은 좀더 유혈이 낭자하거나 좀더 신랄할 수 있는 지점들을 영리하게 피해나간다. 영화 후반부에 미친 백인들에게서 벗어나 폭주하는 크리스가 그들을 처단하는 묘사들은 엉거주춤하며 공항 안전요원으로 근무하는 그의 친구가 해결사로 등장하는 클라이맥스 부분이 상당히 안일하게 느껴진 건 골수 장르팬의 우매한 기대 때문이었을까.

스파이크 리나 존 싱글턴이 초기작들에서 보여주었던 흑백 갈등의 묵직한 묘사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크리스가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백인 경찰들에 제압당해 감옥에 갇히게 되는 오리지널 엔딩을 고수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 불편하고 서늘한 결론을 내렸다면 과연 500만달러 제작비에 30배 이상의 수익을 낸 <겟 아웃>의 대흥행이 이루어졌을까란 가정은 영화의 결과를 함부로 예측해보는 바보 같은 질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블룸하우스와 조던 필은 충분히 전복적인 장르 걸작으로 남을 수 있었던 작품을 안전하고 재미있는 장르 흥행작 정도로만 안착시킨 과오를 범했다고 감히 트집을 잡고 싶다.

백인들이 열렬히 지지했던 대통령 트럼프가 온갖 기행을 일삼는 현재의 미국에, <겟 아웃> 같은 영화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 영화가 원용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주었던 강렬한 자각을 관객에게 충분히 경험하게 할 수도 있었다. 부디 영민한 감독이자 작가인 조던 필이 위선적인 미국의 백인 주류 사회에 더 큰 야유와 소란을 일으키는 신작을 선보였으면 좋겠다. 제작자로 참여한 이 영화로 돈은 벌 만큼 벌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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