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선조 25년, 하늘 같던 왕실이 두쪽으로 갈라진다 <대립군>
2017-05-31
글 : 장영엽 (편집장)

선조 25년, 하늘 같던 왕실이 두쪽으로 갈라진다. 왜세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선조는 어린 세자 광해에게 분조(임진왜란 당시의 임시 조정)를 이끌게하고 의주로 몸을 피한다. 엉겁결에 쇠락해가는 조선의 왕이 된 광해(여진구)는 몇 안 되는 수행 인원들과 함께 강계로 떠난다. 이들의 여정에 다른 사람의 군역을 대신하며 목숨을 부지하는 대립군들이 호위병으로 합류한다. 토우(이정재)가 이끄는 대립군 일행은 분조의 수장인 광해를 무사히 호위해 군역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자신들의 팔자를 고쳐보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객의 습격과 조선의 왕세자를 잡기 위한 왜군의 추격은 분조와 대립군의 여정을 더욱 고되게 만든다.

조선시대의 왕이 주요 등장인물로 출연하는 근래의 한국 사극영화와 <대립군>이 차별화되는 지점은 길 위의 왕을 조명한다는 것이다. 몸을 편하게 누일 곳,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조선 방방곡곡의 산을 떠도는 소년 광해와 분조의 이미지는 일말의 권위마저도 잃어버린,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지도자의 모습을 대변한다. 이처럼 주저앉아버린 왕족의 권위를 다시금 일으켜세우는 건 이름모를 민초들의 도움과 희생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뒤집어 생각하면 나라와 백성의 소중함을 아는 권력자의 탄생은 그가 스스로 낮은 곳으로 임했을 때만 가능하다고 또한 말하고 있다. 이 작품으로 9년 만에 장편 상업영화로 복귀한 정윤철 감독은 다큐멘터리적인 필치로 분조와 대립군의 험난한 여정을 조명한다. <말아톤>(2005)과 <좋지 아니한가>(2007), <슈퍼맨이었던 사나이>(2008)등을 통해 캐릭터간의 관계 맺음과 드라마에 주목해왔던 그의 이력을 고려하면 보다 큰 스케일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의 진일보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이들의 성장 드라마에 주목한다는 점은 감독의 지속적인 관심사와 맞닿아 있다. 얼마 전까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해야했던 한국 사회의 수많은 이들에게 바치는, 과거로부터의 소환장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을 작품.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대립군의 여정보다 광해의 성장 드라마에 무게중심이 실렸다는 점은 아쉽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제작사인 리얼라이즈픽쳐스에서 제작한 두 번째 ‘광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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