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9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조은성 감독은 우연히 대로변에서 꼬리가 잘려 너덜너덜해진 고양이를 만났다. 이 길고양이에게 조은성 감독은 ‘해피’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되던 순간, 처음으로 울음소리를 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라운드의 이방인> <60만번의 트라이> 등 그동안 스포츠 다큐멘터리영화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져왔던 조은성 감독은 왜 길고양이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나아가 길고양이를 처음으로 입양하게 되었을까. 거리의 동물들에게 너무도 혹독한 한국의 현실과 해외의 사례를 대비하며, 길고양이와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다큐멘터리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연출한 조은성 감독의 사연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2013년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 지하에서 벌어진 길고양이 학대사건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살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이 작은 생명체와도 공존하며 살지 못하나 싶었다. 일 때문에 자주 찾았던 일본에서는 퇴근길에 샐러리맨들이, 하굣길에 여고생들이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간다. ‘왜 일본은 한국과 다를까’ 하는 의문을 풀기 위해 해외의 길고양이들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다. 대만은 <CNN>이 선정한 세계 6대 고양이 마을이 이곳에 있다고 해서 무작정 찾아갔다.
-한국, 대만, 일본 촬영분의 느낌이 조금씩 다르던데.
=일본은 푸른색을, 대만을 붉은색을 많이 써서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다. 한국의 경우 고양이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반영한 거친 느낌을 주고 싶어서 밤 장면이 많다. 색보정을 할 때 일부러 톤도 다르게 잡았다.
-카메라의 높이가 대부분 고양이의 시선에 고정돼 있다.
=카메라 시선을 고양이와 일치시켜 그들의 삶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과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며 공존할 수 있다고 말이다. 사람이 고양이를 죽일 권리가 없다는 것에만 모두가 동의한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믿는다.
-무려 110회차를 촬영했다고. 편집된 장면도 있나.
=한국에도 고양이 섬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통영에서 배 타고 1시간 반 가면 욕지도가 있는데, 지중해 못지않게 아름다운 바다를 갖고 있다. 그 섬에는 1970년까지 고양이 농장이 있었다. 일본은 고양이가 풍요의 상징이기도 하고 쥐를 잡기 위한 목적으로 배에 고양이를 데리고 다녔는데, 그 배들이 태풍을 피하기 위해 욕지도에 왔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팔아서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맥락에서 쓰기에는, 마을 주민들이 고양이를 너무 싫어해서 편집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해외의 애묘인들은 어떻게 섭외했나.
=일본의 고양이구호단체 네코다스케에 직접 연락을 하니, 길고양이를 돕는 사람들을 소개해주더라. 취재 과정에서 만난 어떤 여성은 혼자 넉넉하지 않게 살면서도 1억원 이상을 고양이를 보호하는 데 썼다. 고양이가 자기 처지와 다르지 않아 보여서 하는 일이고, 그 일을 해서 행복하고, 자신을 살게 만드는 이유라면서 말이다.
-영화 중간중간 고양이 일러스트나 애니메이션이 나온다.
=대만 허우통 마을에서 알게 된 가수 겸 화가 페페 시마다의 작품이다. 엔딩 음악도 그의 곡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초웨이의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은 고양이작가 달나무님과 홍덕표 애니메이션 감독의 작품이다. 다들 고양이를 사랑한다.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이 마음으로 협업했다.
-최근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 중이라고 들었다.
=지금은 두산 베어스인 OB 베어스의 오랜 팬이었다. 연봉도 적은 해태 타이거즈가 매번 OB를 이기고 9번 우승까지 할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최근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이라는 책을 읽고 알게 됐다. 5·18 이후 그들에게 야구는 야구가 아닌 전쟁이었다는 것을. 김대중 정부 이전에 해태는 단 한번도 5월 18일에 홈경기를 한 적이 없다. 더 놀라운 건 원정경기인데도 승률이 100%였다는 거다. 이런 이야기를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