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김소희의 영화비평] 음악다큐멘터리로서 <고려 아리랑 : 천산의 디바>가 지닌 가치
2017-06-08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김소영 감독의 작품이 주는 공통된 느낌이 있다. 영화가 끝나도 하나로 모아지거나 정리되지 않는 일종의 산만함이다. 혹여 ‘정리가 덜 된’, ‘완성도의 부족’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지만 나는 이것이 감독의 고유한 특징이라 여겨진다. 감독의 영화는 마치 물과 같아서 쥐려 해도 쥐어지지 않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린다. 감독의 영화를 이야기할라치면 오직 손바닥 위에 남은 물방울의 흔적이라든지 손바닥을 스치고 지나간 찰나의 감각만으로 사유를 전개해야 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고려인의 노래가 담긴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이하 <고려 아리랑>)는 그런 의미에서 감독의 전작보다 더 많은 것을 관객에게 쥐여주는 듯 보인다. 영화를 관통하는 무수한 노래는 들리는 것을 보았다고 착각하는 일종의 착시효과를 일으킨다. 그러고 보면 감독의 전작에서도 노래만은 이야기가 산파하는 와중에도 또렷이 각인되곤 했다. <경>(2009)에서 뮤지션 손지연의 ‘실화’가 흐르는 순간이라든지,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2014)에서 빅토르 최의 ‘슬픔’은 불가해한 영화로 들어가는 하나의 끈이 되어주었다. 무수한 끈을 제시하는 <고려 아리랑>은 그러나 그 끈들이 서로 부딪혀 산파하게 한다는 점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텍스트다. 여기에서 수많은 끈들의 연결점을 설명할 자신은 없다. 일단은 영화의 주인공인 두명의 디바에게 집중하고자 한다.

영화의 물길이 저절로 흐르다

영화는 1970, 80년대 고려극장 디바인 방타마라 선생과 그보다 윗세대인 고려인 최초의 인민배우이자 고려극장의 1대 춘향 이함덕 선생의 흔적을 좇는다. 방타마라 선생은 이함덕 선생으로부터 한글을 배운 인연이 있다. 두 사람은 여러 측면에서 대조된다. 방타마라 선생은 살아 오늘을 증명하지만, 이함덕 선생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다. 방타마라 선생은 러시아어를, 이함덕 선생은 고려말을 주로 사용했다. 무엇보다 대조적인 것은 두 사람의 음색인데, 중후하고 풍부한 음색의 방타마라 선생과 달리 이함덕 선생의 목소리는 높고 가늘게 떨린다. 처음에 영화는 마치 삶에서 죽음을 구하듯 방타마라 선생에게서 이함덕 선생에게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흐름은 잔가지를 치다가 다시 방타마라 선생에게로 돌아온다. 이때의 흐름은 결코 만드는 자의 욕망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터뷰이들의 발언이나 상황 변화에 따라 물길을 바꾼다. 감독은 영화 제작과정을 설명하면서 ‘(자료가) 저절로 걸어왔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는데, 제작과정의 자동성을 영화의 자동기계적 흐름으로 뒤바꾸는 것이 감독의 지향점이었던 것 같다.

자동기계적이라 표현한 이유는 감독이 제작자의 주체성을 영화에서 부러 드러내는 장면이 부재한 탓에 흡사 영화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영화는 감독의 목소리로 서술된 내레이션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감독은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연해주 땅에 살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배경을 설명한다. 그러나 문장을 덧붙여 갈수록 내레이션의 성격은 단일한 시점의 덩어리가 아니라 다중시점으로 분기하기 시작한다. 강제 이주 과정에서의 고통과 죽음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감독은 마치 목이 메는 것처럼 낮게 읊조린다. ‘아이들이 많이 죽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객관적 서술자의 위치를 거의 버리려는 것 같다. 후에 이함덕 선생의 글을 낭송하면서 감독의 목소리는 감독 자신의 것이기를 그치고 다중주체의 목소리로 산파한다. 첫 번째 내레이션은 ‘고려극장이 배출한 두명의 걸출한 여성 예술가들의 삶의 노래를 듣고자 한다’는 말로 마무리되는데, 이때 내레이션의 주체는 곧이어 등장하는 자료화면 속 해설가의 모습과 공명한다. 이중언어(고려말, 러시아어)로 방타마라 선생을 소개하는 해설자의 모습은 방타마라 선생의 노래만큼이나 귀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며, 이어 등장한 방타마라 선생의 공연과 분리되지 않는다. 감독이 지향하는 바 역시 다큐멘터리 제작의 차원과 아카이브 자료의 일치성에 가닿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열었던 감독의 목소리가 결말부에는 자료화면 속 해설자의 음성으로 대체되는 것도 영화의 지향점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다.

제작자의 대상화 혹은 도구화라 할 수 있는 영화의 성격은 이미지를 제시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영화는 고려인들이 남긴 음악과 기록을 위한 오늘날의 이미지를 채집하려는 것 같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채집된 이미지의 조각일 뿐 이미지를 채집하는 누군가가 아니다. 이때 이미지는 마치 자료화면 속에서 인서트된 풍경 이미지의 느낌을 그대로 따르려는 것 같다. 그러니까 영화는 노래에 철저히 복무하는 뮤직비디오가 되려 한다. 이함덕 선생과 이산의 흔적을 따라 무수한 동선을 그리면서도 이동하는 주체의 모습이 전면화되지 않는 것 역시 이같은 맥락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실패가 만드는 기적의 순간

감독은 최소한의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이후의 변화나 흐름 역시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그것은 때로 우연과 기적의 순간을 만든다. 우슈토베의 고려인 노인단을 방문한 감독은 이들에게 이함덕 선생을 아느냐고 묻는다. 그 과정에서 감독의 작업에 영감을 준 송라브렌티 감독의 <고려 사람>에 출연한 마리아 코발렌코의 딸 안나를 만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후 안나와 마주앉은 감독은 그녀와 고려말로 직접 소통하려고 시도하나 안나는 감독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비슷한 소통 실패의 순간은 앞서 등장했다. ‘(이함덕 선생) 목소리가 어땠냐’는 감독의 질문에 우슈토베 노인들은 ‘노래 잘했지’라고 답한다. 목소리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을 듣고 싶었던 감독이 ‘목소리가 어땠어요? 꾀꼬리 같았어요?’라고 재차 묻는데, ‘목소리 고왔어요’라는 노인들의 답변은 여전히 두루뭉술하다. 구체적인 표현을 원하는 감독과 포괄적인 우슈토베 노인들의 언어 사이의 이러한 격차는 망명과 이주를 다룬 감독의 다른 작품에서도 중요하게 부각되는 요소다. 말하자면 실패의 순간과 기적 같은 발견의 순간은 동시에 일어난다. 이를 통해 감독은 매 순간을 단일한 방식으로 의미화하는 것에 저항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과 소통의 잔여물은 영화가 또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제작진은 이함덕 선생의 묘를 찾는 데 끝내 실패한다. 이들이 실패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작은 기적의 순간을 받아들일 때와 동일하다. 유족은 관리가 안 되었다는 이유로 이함덕 선생의 묘소 위치 공개를 거부한다. 제작진은 억지로 유족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지 않는다. 다만 공동묘지 어귀의 나무와 산굽이마다 이함덕 선생이 생전에 남긴 목소리를 흐르게 한다. ‘이름도 성도 알 수 없는’으로 시작해 ‘지친 듯이 울었소’로 끝나는 가사에, 오직 이함덕 선생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노래는 오늘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물린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증명하는 구슬픈 노래인 동시에, 남겨진 이들의 상실감을 달래준다. 감정의 잔여는 결국 죽음(이함덕)에서 삶(방타마라)으로 이동하는 힘이 된다.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 예술가들이 그들의 아픔을 생의 노래로 바꾸려 했듯이 말이다.

영화가 꿈꾸는 궁극의 이동성은 스크린을 둘러싸고 펼쳐진다. 첫번째 스크린은 아카이브 자료가 영사되는 스크린이다. 비석이 자리한 곳이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한 고려인의 초기 정착지라는 사실은 후에 드러난다. 옛터는 마치 초기 영화관의 일종인 이동영화관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곳에는 관객이 없다. 그것이 잃어버린 풍경인 것은 고려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동 영화관은 이제 손 위에 놓일 정도로 작아졌고 개인화되었다. 영화는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또 다른 모바일-스크린으로 제시한다. 노래와 스크린이 서로를 흐른다. 바람의 흐름에 따라 곡선을 그리는 노래-스크린은 그들의 육체가 되어줄 미지의 관객에게 세차고 우아한 손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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