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영화계의 노장 영화인 두명이 합세한 영화 <인 타임스 오브 페이딩 라이트>가 6월 초 개봉했다. 메가폰을 잡은 동독 출신 중견 감독 마티 게쇼넥을 차치하더라도 주연을 맡은 76살의 배우 브루노 간츠와 시나리오작가 볼프강 콜하제라는 이름만으로 이 영화가 어떤 작품인지 가늠할 수 있다. <베를린 천사의 시>(1987)에서 천사 다니엘 역으로 유명한 브루노 간츠는 이 영화로 올해 독일영화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올해 66살의 동독 출신 시나리오작가 볼프강 콜하제는 이미 동독 시절 <베를린 슈엔하우저 코너>(1957), <솔로 서니>(1980)로 진가를 인정받았고, 통독 후엔 <발코니에서 맞은 여름>(2005), <우리가 꿈꾸었을 때>(2015) 등으로 흥행과 작품성을 담보하기도 했다.
영화의 원작 소설인 오이겐 루게의 <빛이 사라지는 시간>은 2011년 독일 도서상을 수상한 베스트셀러다(2013년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었다). 이 작품에는 지난 40년간 동독 여러 세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영화는 소설과 달리 단 하루에 초점을 맞췄다. 쇠락해가는 동독의 분위기가 주인공의 생일 파티가 열리는 하루를 통해 집약된다. 빌헬름 포빌라이트(브루노 간츠)가 90살 생일을 맞은 날은 1989년 가을, 장벽이 무너지기 바로 직전이다. 나치시대에 멕시코에서 망명했다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온 공산주의자 빌헬름은 동독 공산당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평생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는 90살 생일을 맞아 사회 각계각층의 공식 방문을 받는다. 그런데 정작 빌헬름의 손자 자샤는 서독으로 탈출하고 그 자리에 없다. 이날 무너져버리는 생일 식탁이 영락없이 동독 붕괴를 연상시킨다. 쓸쓸하고 퇴락하는 분위기에 맞게 동독 시절 낡은 소품과 공간은 어둡고 칙칙하다.
독일 언론은 이 작품에 호평 일색이다. 주간 <슈피겔>은 “조용히 쇠락해가는 동독을 보여주는 것에 성공했다”고 했고,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감독은) 희망과 유토피아가 완전히 무너진 (동독)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