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한선희의 <태양 없이> 영화, 나의 진실
2017-06-21
글 : 한선희 (부산아시아영화학교 학과장, 프로듀서)

감독 크리스 마르케 / 출연 알렉산드라 스튜어트 / 제작연도 1982년

영화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다큐멘터리를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 2009년 봄학기 ‘다큐멘터리 역사’를 수강하면서 많은 작품을 보게 되었고, 이후 다큐멘터리의 언어에 대해 조금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경천동지’까지는 아니지만 ‘상전벽해’와 같은 경험이었다. 그즈음 나는 구조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던 한국영화계에 질려 있었다. 엇비슷한 상업 극영화들에 갈증을 느끼던 때, 다큐멘터리는 나의 편향된 영화 관람 이력에서 하나의 돌파구가 되었다. 크리스 마르케의 <태양 없이>는 그런 나의 변화를 이끈 기폭제가 된 작품 중 하나다.

<태양 없이>의 내레이션은 충격적이다. 산도르 크리스나라는 인물이 쓴 편지를 한 여성이 읽고 거기에 주석을 덧붙인다. ‘사실의 기록’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이러한 형식은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의 가정들에 질문을 던진다. 또 파편화되고 분절적인 몽타주 형식은 다큐멘터리가 핍진성과 사실감을 위해 관습적으로 추구하던 연속 편집의 강박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려 한다. 일본과 아프리카,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면서 찍은 여행기(travelogue)를 리드미컬하게 몽타주한 영상은 과거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기행영화나 민족지영화처럼 낯선 문명과 문화에 대한 어떤 사실을 ‘재현’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 작품의 ‘이야기’를 말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억과 망각과 역사에 관한 주관적인 체험과 인상들을 매우 심미적인 차원에서 시적인 수사법으로 제시한다. 인류의 원초적 삶과 문명화 과정에 대한 통찰, 삶과 죽음의 교차로 점철되어온 자연의 시간에 대한 묵상, 그리고 정치와 권력의 이전투구로 불행을 자초한 인간과 그 역사의 무심함에 대한 상념…. 한편으로 TV, 애니메이션, 전자오락의 이미지들은 일본으로 대표되는 일종의 ‘미디어 미래주의’를 드러낸다. 영화를 포함한 광학적, 전자적 매체가 기록하고 증폭하는 이미지의 가변성과 영속성을 성찰하게 한다. 일본의 지하철과 <은하철도 999>의 이미지들이 중첩되고, 아케이드 게임 <팩맨>의 그래픽이 인류 문명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로 소개된다. 또 무소륵스키와 시벨리우스의 음악, 멜랑콜리한 감성이 묻어나는 내레이션, 영상물이 제시하는 기표들과 절묘하게 중첩되거나 미끄러져가는 효과음 등이 몽환적이고 공감각적인 울림을 자아낸다.

이 영화는 어떤 진실을 탐구하기 위해 탐정이나 변호사의 태도로 논증하려 하지 않고, 소설가처럼 어떤 완결된 서사를 들려주는 것도 아니며, 웅변가처럼 누군가를 설득하려 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이것은 유목하듯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만보객이 써나간 ‘시네 포엠’이라고 할 만하다. 다큐멘터리와 종종 일치되는 ‘영화 진실’(시네마베리테, cinema-verite)을 ‘영화, 나의 진실’(cine, ma verite)로 바꿔 불렀던 크리스 마르케의 말놀이를 구체화한 사례이기도 하다.

<태양 없이>는 기억과 역사를 재구성하는 영화의 대안적인 실험을 생각하게 한다. 극중 도쿄의 정치 1번가인 유라쿠초에서 일본 극우파인 대일본애국당 당수가 호국 연설을 하는 한편 (극중 설명에 따르면 “남한의 게슈타포에 의한”) 김대중 납치사건을 규탄하고 서명운동을 벌이는 청년들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2009년 6월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이후 한국의 보수 단체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자살을 권하던 미친 시기였다. 8년이 흘렀다. 우리는 지나간 8년에 대해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한선희 부산아시아영화학교 학과장. <말하는 건축가>(감독 정재은, 2011), <만신>(감독 박찬경, 2013), <망원동 인공위성>(감독 김형주, 2013) 프로듀서이자 다큐멘터리 <올드 데이즈>(2016) 연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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