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들이 불편한가. 그런데 이게 본질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정상화를 논의하기 위한 토론회 ‘다시 시민 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정상화’(주최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가 6월 22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영화계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로는 새 정부 들어서 처음이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 유성엽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 등 정부와 국회 그리고 영화인들이 대거 참석했고, 좌장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의 말대로 여러 이유 때문에 쉬쉬하던 질문들이 오간 까닭에 열띤 현장이었다.
참석자 대부분 부산국제영화제에 정치적인 탄압이 있었고, 영화제가 정상화 되기 위해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이 필요하며, 영화제를 하루빨리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한목소리를 냈다. 잘 알려진 대로 부산국제영화제는 2014년 <다이빙벨>을 틀었다는 이유로 감사원의 감사와 부산시의 행정지도점검을 받았다. 그다음해, 예산이 전년도의 14억5천만원에서 8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삭감됐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첩에서 밝혀졌듯이 “부산국제영화제 예산을 전액 삭감하라”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가 문체부를 통해 내려온 것이다. 강수연 집행위원장 대신 참석해 발제를 맡은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그럼에도 2015년 영화제가 치러질 수 있었던 건 일종의 봉합책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게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의 위촉이었다. 1차 위기가 어물쩍 넘어갔다고 볼 수도 있지만, 덕분에 무사히 영화제를 치를 수 있었다”며 “사태가 일단락된 게 아닌가 하는 희망적인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사 결과가 나오면서 부산시는 이용관 위원장에게 사퇴를 다시 권고하고, 이 전 집행위원장을 전·현직 사무국장과 함께 검찰에 고발했다. 2016년 4월 18일 부산시와 영화제는 사퇴를 선언한 서병수 부산시장을 대신할 조직위원장 선출 방식, 정관 개정과 관련해 팽팽하게 맞섰다. 영화제는 전면적인 정관 개정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김동호 이사장을 조직위원장으로 선출하는 원포인트 정관 개정을 꺼내 영화제를 치르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결정했다.
또 남 프로그래머는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 두분을 영화제를 지키기 위한 방패로서 모셔왔다. 얼마나 노력을 하시는지 지켜봤다. 감정적인 호소가 될지 모르겠으나 지난해 영화제가 무사히 치러질 수 있었던 건 두분의 헌신과 노력 덕분이었다”며 “계속되는 위기 속에서 우리가 걱정했던 건 영화제가 이대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영화제가 정치적인 탄압 때문에 고난의 과정을 겪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었으나 각론에서는 격론이 불가피했다. 남 프로그래머는 “당시 영화제는 김동호 이사장을 조직위원장으로 선출하는 원포인트 정관 개정이야말로 유일한 대안”이라고 판단했지만 조종국 <씨네21> 편집위원은 “김동호 이사장이 아무 조건 없이 서병수 부산시장이 내놓은 조직위원장 자리를 이어받은 것이 결과적으로 ‘이용관 축출의 끝내기 한수가 된 셈”이라고 반박했다. 2016년 2월 서병수 부산시장이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재위촉하지 않는 형식으로 사실상 해임하면서 영화계는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 조치 이행, 정관 전면 개정을 통한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 등 세 가지 요구를 내걸고 보이콧 선언으로 맞섰다. 그런데도 서병수 부산시장은 김동호 이사장의 조직위원장 선임을 강행한 것이다.
김상화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이자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은 “2016년 영화제 총회 당시 아무도 이용관의 임기 연장을 안건으로 제안하지 않고 침묵했던 사실을 두고두고 부끄러워해야 한다”며 “지금의 영화제 운영 조직은 피해자가 아니다. 고발당한 몇 사람과 선긋기를 분명히 함으로써 ‘수성을 위한 경장(혁신)’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멸사봉공(滅私奉公)이 아닌 멸공봉사(滅公奉私)하는 세력에 미래는 없다”라고 유감을 표시했다. 이미연 감독 또한 “조직의 수장이 온몸으로 정치적인 탄압을 받고 있을 때 부산국제영화제는 무엇을 했나”라며 “지난 정부의 문화 말살과도 같은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는데 문화융성위원장(김동호 이사장은 2013년 7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장관급에 해당되는 문화융성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편집자)을 지낸 사람이 여전히 부산국제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영화계는 어떤 입장인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부산국제영화제 운영 조직이 쇄신해야 하고, 정부 지원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 편집위원은 “지난 2월 20일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시민공청회에 참석한 김동호 이사장은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임기를 다 채우고 연임까지 한 그가 피해자라면,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피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김동호 이사장은, 청와대와 문체부의 탄압을 적극 막아내지 못했다면 사과해야 할 일이고, 가담했거나 묵인 또는 방조했다면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상화 집행위원장은 “지난 22년 동안 부산시는 부산국제영화제 지원 정책에 매년 60억원을 써왔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제외한 다른 문화예술인들이 60억원 이상을 희생해온 것”이라며 “이런 희생을 바탕으로 부산국제영화제가 대한민국이 자랑할 만한 행사가 됐다면 이제는 예산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부산국제영화제 지원은 일반 회계로 변경되어야 한다. 중앙 정부 예산이 60억원 이상이 되어야 하고, 부산시의 예산 지원은 15억원 이내로 가야 한다. 나머지 예산은 부산 지역 문화예술인들에게 쓰여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김동호 이사장은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으로 돌아가고,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배우로 돌아가야 한다”고 두 사람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준동 대표는 남동철 프로그래머에게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과 관련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입장을 거듭 물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용관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나.”(이준동) “동의한다.”(남동철) “원점인 이용관 집행위원장 체제로 재건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영화제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 명예회복이라고 생각하나.”(이준동) “우리가 일방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다른 분들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좋은 대안이 있다면 말을 해달라.”(남동철) “영화제의 정상화가 뭐라고 생각하나.”(이준동) “김동호-강수연 체제나 이용관-강수연 체제가 아닌 ‘김동호-강수연-이용관’ 체제가 원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그림이 어떨지 같이 고민하자는 것이다. 솔직히 나도 대안은 없다.”(남동철)
이 밖에도 최용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부천 또한 지방 정부와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김홍준 당시 집행위원장이 해촉되는 사태를 겪은 뒤 많은 영화인들이 찾지 않았다”며 “영화인이 동의하지 않는 영화제는 더이상 성장하기 힘들다. 이게 부산이 풀어야 할 숙제다”고 말했다. 김영진 전주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는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의 장례식장에 가니 영화제 조직이 분열된 것 같더라.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 대한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토론회를 지켜본 전재수 의원은 “서병수 부산시장은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에 대해 부산 시민과 영화인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하며 “‘한국영화의 새로운 10년을 위한 아고라’라는 이름의 연속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으니 관심을 가지고 계속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순간 포착
좌장 이준동 대표와 이재형 부산시 영상콘텐츠산업 과장의 일문일답
-이준동_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게 가한 정치적인 탄압에 대한 부산시의 입장은.
=이재형_ 진상을 알 수 없지만 고의성은 없었다.
-이준동_ 부산시의 공식 입장인가.
이재형_ 개인적인 입장이다.
-이준동_ 이미 고의성이 있다고 다 밝혀졌다.
이재형_ 아마도 (전말이) 다 밝혀지리라고 본다.
-이준동_ 밝혀진 사실이 있음에도 서병수 부산시장은 사과할 용의가 전혀 없나.
이재형_ (시장님의) 사과는….
-이준동_ 국민과 영화인들에게 부산시의 공식 입장을 정리해달라.
이재형_ 공식적인 입장은… 공식적으로 탄압을 하지 않았다는… 그런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탄압이) 사실인 게 밝혀지면 공식적인 사과가 이뤄질 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