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아바오오우우우∼ 혈투는 끝나지 않았다, <용쟁호투>
2002-04-10

내가 처음 극장이란 델 간 건 일곱살 때다. 신작로에서 놀던 반바지 러닝 바람 그대로 부모를 따라 제천의 어느 극장에서 동시상영하던 왕유의 <돌아온 외팔이>와 유현목의 <공처가 삼대>를 봤다. 이 두편의 영화는 재미있었다는 기억 이상의 자극을 내 뇌의 주름에 남기지 못했다.

내가 처음으로 열광한 영화는 중1 때 본 <용쟁호투>였다. 주연배우는 나만큼 쌍절곤과 괴조음을 잘 구사했고, 성까지 같았다. 이소룡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이한 영화 속 나의 영웅이었다. 지금껏 배우의 브로마이드나 팬북을 산 건 그의 것이 유일무이하다. 특히 쌍절곤. 이소룡은 내게, 쌍절곤만 있으면 세상 누구와 맞서도 두려울 게 없을 거란 환상을 심어줬다. 서울 변두리의 유명한 깡패학교를 중·고등학교 합해 6년씩이나 다녀야 했던 나로선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쌍절곤에 머리통 팔꿈치 맞아가며 지성으로 돌렸다. 요즘 더러 흐린 날 팔꿈치가 시려오는 건 혹시 그 때문이 아닐까.

<용쟁호투> 등 그가 남긴 네편의 주옥 같은 영화에서 압권은 늘 결투 장면이었다. 작은 체구의 내 영웅은 조직이나 집단에 기대지 않고 늘 혈혈단신 적진 한가운데서 상대와 정면대결을 벌였다. 그의 결투 장면은 스크린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광기를 뿜어냈다. 미안하게도 내가 성룡이나 이연걸을 ‘졸’로 보는 건, 그들에게선 이소룡에게서 느꼈던 귀기 서린 투사의 숭고미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용쟁호투> 다음으로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는 잉마르 베리만의 적장자 빌 어거스트의 <정복자 펠레>(1988)였다. 이 영화에서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친척에게 강간당한 철부지 소녀가 알몸으로 하얀 드레스의 선혈을 샘에서 닦는 장면도, 농장 여주인이 바람둥이 남편의 성기를 가위로 잘라버리는 장면도 아니었다. 내겐 펠레의 아버지 라세(막스 폰 시도우)가 악독한 농장관리인 앞에서 분노가 끓어올랐을 때의 시퀀스가 가장 충격적이었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식의 계급행동주의를 최고의 미덕이라 여겨왔던 당시의 나로선 당연히 피지배계급 라세가 쇠스랑을 움켜쥐고 지배계급의 하수인의 머리통을 갈기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계급의식도 없게시리, 라세는 울분과 쇠스랑을 함께 내려놓았다. 그는 관리인의 머리통을 가만 놔두는 대신 내 머리통을 후려쳤다. 그것이 차가운 현실이다! 그런 비루함이 삶의 진실이다! 혁명? 계급투쟁? 그건 다 관념이다! 세상은 흑백으로 나뉘지 않으며, 세상을 잿빛으로 만드는 요인은 너무도 많다. 나는 내 눈에서 비늘이 한 꺼풀 떨어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펠레> 다음으로 내게 인상을 남긴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을 꼽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나를 가장 많이 울린 영화다. 난 이 영화를 두번 봤는데, 볼 때마다 엉엉 울었다. 그 시절 ‘이쪽’에 서 있었든 ‘저쪽’에 서 있었든 그 저주스런 세월을 피해갈 수 없었던 사람들의 운명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내 남루한 젊은 시절에 대한 연민이기도 했다.

난 내가 너무 비겁하게,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에 <…펠레>를 보며 “그것이 현실”이라 깨닫고, <박하사탕>을 보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생각한다. 지혜를 깨닫고 옛일에 연민의 눈물을 뿌리는 일은 살아남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현실이 잿빛으로 변하고 회색논리가 지혜로 받아들여질 때, 그런 이중성을 견디지 못한 이들은 진작 암세포라도 불러들여 무덤으로 갔다. 아마 <용쟁호투>의 악당 ‘한’도 젊었을 땐 이소룡처럼 혈혈단신으로 세상과 맞서려 한 투사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순리’를 받아들이면서 그는 어느새 거대한 조직을 거느린 보스로 변한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우리의 귀는 두 개이고, 세계엔 대개 두 가지 목소리가 흘러다닌다. 하나는 모든 걸 거부하는 부정의 목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걸 포용하는 ‘지혜’의 목소리다. 지혜의 소리가 나쁠 건 없지만, 그건 일쑤 비굴이나 기회주의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부정의 소리 대신 ‘지혜’의 소리에 귀를 더 많이 기울인다는 뜻일 터이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이 모호한) 지혜와 회한은 점점 자리를 넓혀갈 게 틀림없다. 그러나 난, 몸은 늙어가겠지만, 정신으로는 부정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싶다. 그런 까닭에 난 내게 지혜와 통한을 일깨워준 영화 대신 온몸으로 싸우는 혈투의 정직함을 보여준 <용쟁호투>를 여전히 내 인생의 영화로 기억할 것이다(아바오오우우우∼).

글: 이상수/ <한겨레> 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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