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파란나비효과>, 여론의 시선에 맞선 성주 주민들 혹은 다큐멘터리의 선언
2017-07-04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비난에 ‘응답’하다

19대 대선에서 경북 성주지역 후보자별 득표율이 몇몇 이들에게 초유의 관심사였다. 성주지역이 박근혜 정부 당시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인 사드 배치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보수정당의 표밭이던 성주지역의 투표 결과에도 변화가 있을 거라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자업자득이라 조롱하던 네티즌은 내심 보수정권에 배반당한 성주가 이번에는 투표를 통해 보수정권에 보복하리라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여전히 보수당 후보자가 과반이 넘는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자 성주군민에 대한 인터넷 여론의 조롱은 거세졌다. 물론 전에 비해 보수당의 득표율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가 굳건하다는 데에 많은 이들이 의아함과 분노 혹은 체념의 감정을 표했다.

대부분이 이미 알고 있을 성주군민에 관한 네티즌의 반응을 여기서 반복한 이유는 <파란나비효과>가 성주군민을 향한 이같은 비난에 응답하는 다큐멘터리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왜 사드 배치 결정 이후에도 보수당 1위라는 선거 결과가 변함이 없는지를 알 수 있다. 정부가 제3 부지 이전을 발표했고 마을 노년층 대다수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파란나비효과>를 ‘응답’으로 읽고 싶은 이유는 이 다큐멘터리가 성주군민의 민심에 대한 네티즌의 의문을 해소해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다큐멘터리가 이같은 비난 여론을 내부에 끌어들이거나 적어도 이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란 자극이 있으면 반응이 있는 거다”, 배미영씨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수업 중 이렇게 말한다. 그날 강의에서 언급했을 많은 이야기 중에 감독이 유독 이 대목을 포착한 건 어쩌면 이것이 불통의 정부를 향한 우회적인 비판이 될 거라 여긴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불통의 정부가 아니라 성주에 등 돌린 여론을 의식한 말처럼 들렸다. 비난이라는 자극을 피하지 않고 맞서 반응하겠다는 주민들의 혹은 다큐멘터리의 선언처럼 말이다. 성주군민에 대한 여론의 싸늘한 시선은 다큐멘터리 속 장면이나 상황을 해석하는 다른 틀을 마련하는 셈이다.

자학(自虐)과 자학(自學)

성주군민이 처한 이중의 곤란함은 투쟁 다큐멘터리에서 익숙하게 드러나는 피해자의 고통을 일종의 고행으로 읽어내게 한다. 자극에 대한 성주군민의 가장 두드러지는 반응은 자학(自虐)이거나 자학(自學)이다. 배정하씨는 더운 날 모자도 쓰지 않고 아이가 손글씨로 쓴 피켓을 목에 건 채 일인 시위를 벌인다. 배은하씨는 군청 앞에서 만난 도의원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제발 아이와 가족들을 살려달라며 울부짖는다. 우는 그녀와 그 옆에서 함께 눈물 짓는 딸의 모습에만 포커스를 맞춘 카메라는 그것을 마치 스크린 뒤의 관객을 향한 것처럼 느끼게 한다.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 중 한명인 이수미씨는 페이스북 친구에게 성주의 상황을 헤쳐 나갈 방향성에 관한 조언을 구했다가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비판에 직면한 일화를 밝힌다. ‘아무 생각 없이 1번 찍더니 고소하다. 5·18, 세월호, 강정을 외면한 결과다’라는 답글에 머리를 울릴 정도의 큰 충격을 받은 그녀는 쏟아진 비난과 비판에 일일이 답글을 달아 사과하고 그 후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드론숏, 관객을 향한 시그널

<파란나비효과>는 이같은 방식으로 비난 여론에 대한 군민들의 대응을 담아내는 동시에 관객의 자리를 상정한다. 그중 하나의 방식이 영화에서 종종 삽입된 드론숏을 통해 나타난다고 가정해 보고 싶다. 그 의도가 모호한 드론숏이 어쩐지 관객이 성주와의 관계를 조종하는 시그널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개발 논리에 희생된 고립된 지역을 조명한 다큐멘터리에서 드론숏은 비교적 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이를테면 드론으로 촬영된 트래블링숏이 빈번하게 쓰인 문승욱 감독의 다큐멘터리 <망대>(2014)에서 드론숏이 등장한 이유는 분명했다. 시간여행이 가능해진 미래라는 시간적 설정 안에서 카메라는 시간여행자를 찾는 ‘시간 검시관’ 노릇을 했고, 이것이 드론 촬영의 초월적 시점으로 표현되었다. <파란나비효과>의 드론숏은 제주 강정마을 투쟁을 다룬 조성봉 감독의 다큐멘터리 <구럼비-바람이 분다>(2013)에서 ‘이 아름다운 풍경이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드론으로 촬영된 유려한 숏과도 다르다. <파란나비효과>의 성주는 강정처럼 지역 주민을 넘어서 모두가 지켜야 할 공유지대로서의 풍경이 부재한다. 드론숏으로 제시되는 투쟁 반대 대자보가 나붙은 아파트, 뒤엎어지는 참외밭 등은 시각적 효과를 위해 사용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인서트일 뿐이다.

영화에 쓰인 드론숏의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이 초반에 주로 배치되어 있고, 후반 이후에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영화의 타이틀 시퀀스 이후 첫숏은 드론으로 촬영된 장면이다. 아파트 사이로 난도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는 이 숏은 실은 없어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이 숏으로 출발하겠다고 정한 데에는 성주의 사드 배치 반대 투쟁에 색안경을 끼고 관망할 관객이 가질 거리감을 어느 정도 인식한 결과로 보인다. 반면 후반부에는 드론 촬영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장면에서 이를 배제한다. 인간띠잇기 운동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인간띠잇기 운동은 다른 지역 주민들이 동참한 상징적인 운동이었다. 이를 드론이 아닌 이동수단 위에서 핸드헬드로 촬영한 것은 관객 역시 주민들의 삶의 이야기와 눈을 맞추고 동화될 것에 관한 기대와 바람이 투영된 것이라 여겨진다.

드론숏이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조명되는 투쟁의 두드러지는 측면 중 하나는 SNS가 투쟁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지역 주민들의 먹거리 정보방이라는 본래의 용도에서 벗어나 사드 배치 반대 투쟁방으로 탈바꿈한 ‘1318 단체 톡방’에서 지역주민들이 서로를 북돋우는 메시지를 보낸다거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지역군수에게 직접 항의하고,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 삶과 밀접한 투쟁 방식을 제시한다. 이수미씨의 “생활이 정치다”라는 명제가 더는 추상적인 구호로 들리지 않는 건 SNS의 발달로 개인간의 연결접속이 용이해진 것과도 관련된다. 달라진 투쟁의 기운은 훨씬 느슨해진 투쟁 구호에서도 읽힌다. 처음에는 딱딱하기만 하던 사드 배치 반대운동 문구가 ‘커피 팔고, 술 파는 것들’이라는 군수의 막말파동 이후에는 ‘술 팔고 커피 파는 사람한테 표 얻어서 니가 군수됐다’는 등, 소위 인터넷 ‘베플’을 연상시키는 재치 넘치는 패러디들로 가득해진다. 이러한 변화에 주목할 수 있었던 건, 물론 다큐멘터리가 30대에서 50대가량의 비교적 젊은 여성 주민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가능했다.

변화의 에너지가 연결하는 투쟁들

사드가 기습 배치된 절망적인 상황에서 끝남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가 희망적으로 느껴지는 건 투쟁의 승패가 아니라 투쟁이 당사자들에게 미친 영향과 그들 각자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지역 투쟁 다큐멘터리는 극히 드물다. 물론 상황이 투쟁과 관계없던 사람을 투쟁으로 밀어넣기에 변화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파란나비효과>만큼 변화를 투쟁의 에너지로 밀어붙인 경우는 드물었다. 영화는 이런 변화의 에너지를 성주 내부의 성과로 가둬두지 않고, 공간과 시간의 측면에서 고립된 각각의 투쟁이 서로 손을 잡는 세계를 상상한다. 그것은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을 상징하는 파란 리본과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함께 연결하는 것이다. ‘성주는 5·18과 세월호, 강정을 외면한 결과’라는 누군가의 힐난 속에서, 그리고 지역 주민을 ‘빨갱이’로 모는 반대쪽 궤변에 문득 광주를 떠올리는 개인의 기억 속에서 잊힌 투쟁과 희생은 다시 떠오르고 함께 연결된다. 사드에 관해서는 미진한 결과물처럼 보일지도 모르나 <파란나비효과>가 지향하고 드러낸 최고이자 최선의 효과는 바로 여기 있지 않을까 한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