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인 클레어(테레사 팔머)는 베를린을 여행하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남자 앤디(막스 리멜트)다. 그날 하루 앤디와 짧은 만남을 가진 클레어는 그를 잊지 못해 먼저 앤디를 찾아간다. 두 사람은 앤디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그러나 앤디가 여행객만을 노리는 상습적인 감금범이란 사실이 밝혀지며, 영화는 급격히 노선을 바꾼다. 기댈 곳 없는 여행객에게 베를린은 한낱 외딴 섬일 뿐, 영화는 음침한 스릴러로 질주한다. 클레어는 앤디의 함정에 빠졌음을 깨닫고 탈출을 노린다. 그러나 클레어의 시도는 앤디의 분노를 자극할 뿐이다. 공포스러운 동거를 끝내기 위한 클레어의 처절한 노력이, 무심한 표정으로 학대를 일삼는 앤디와 대조되며 긴장감을 형성한다.
<베를린 신드롬>이란 영화의 제목은 명백히 ‘스톡홀름 신드롬’ (인질이 범인에게 동화되는 심리 현상)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으로 배경이 바뀌었을 뿐, 가해자에게 기묘한 끌림을 느끼는 피해자라는 구도는 동일하다. 그러나 연민과 공포를 오가는 클레어의 감정이 설득력 있게 묘사되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는 아버지의 죽음을 맞는 앤디의 감정 묘사에 많은 시간을 기울이는데, 앤디에게 인간다운 면모를 부여하려는 이같은 시도는 의도치 않게 그의 폭력을 미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다. 앤디에 비해 클레어에 관한 묘사는 한정적이라는 데서, 이 영화가 여성 캐릭터의 어떤 전형을 답습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