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노후 대책 없다>를 만든 이동우 감독만 만나려 했다. 그러다 이동우 감독이 몸담고 있는 하드코어 펑크 밴드 스컴레이드의 드러머이자 <노후 대책 없다>의 출연자인 이주영이 영화 개봉에 맞춰 한국에 왔다기에 둘을 만나기로 했다. 그러다 스컴레이드의 보컬 류지환도 인터뷰에 합류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인터뷰 장소에 나갔더니 펑크 밴드 파인더스팟의 주축 멤버이자 <노후 대책 없다>에서 카메라 원숏을 가장 많이 받은 송찬근도 함께 있었다. 그렇게 대책 없이 불어난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감독이 출연자의 사생활 노출에 신경 쓰지 않았다는 항의부터 부모님이 알면 큰일나기 때문에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라고 얘기해야겠다는 터무니없는 말까지 쏟아졌다. 사실 이 영화가 그렇다. 하드코어 펑크 하는 이들의 날것의 분노와 고백이 종잡을 수 없이 튀어나온다. 새로운 감각의 다큐멘터리 <노후 대책 없다>를 만든 이들을 만났다.
-포털 사이트에 스컴레이드와 파인더스팟의 정보가 없더라. 펑크가 정말 변방의 음악이구나 싶었다.
=송찬근_ 예전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 창작지원금을 받아볼까 싶어 음악 활동 내역을 증명하려 한 적 있다. 그런데 자체적으로 기획한 공연의 포스터나 자료로는 예술가라는 사실이 증명이 되지 않더라. 포털 사이트에 뮤지션으로 등록돼 있으면 된다기에 네이버에 연락했더니 역시나 뮤지션임을 증명하는 정보를 요구했고 결국 거절당했다. 등록을 시도한 일도, 실패한 일도 사실 우리에겐 부끄러운 기억이다. 친구들이 알면 놀림받을 일이다.
=이동우_ 기본적으로 메인스트림에 끼려고 하는 행동 자체를 수치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주영_ 유명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부끄러워하는 거지.
=류지환_ 음반 리뷰나 인터뷰 기사가 실려도 부끄럽다.
송찬근_ 모순적이라고 느끼겠지만, 좀더 많은 사람이 우리 음악을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없다.
이동우_ 우리처럼 펑크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즐기고 싶은 마음이 크다. 펑크를 소비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펑크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공연장에 왔으면 좋겠다.
송찬근_ 펑크는 힙스터 문화가 아니라 하위문화다. 그런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무브먼트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 때문에 펑크가 힙스터 문화, 멋있는 문화로 보이는 게 싫다. 어떤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 양아치 같은 새끼들이 나중에 사랑스러워진다는 글을 썼던데, 그날 공사장에서 벽돌 2천장 나르고 집에 와서 그 글을 보는데 화가 나더라. 애정이 담긴 말이란 건 알지만 어린애들을 보는 어른의 흐뭇한 시선 같은 게 느껴져서 불편했다. 일해서 돈 벌고 빚 갚고 음악 하는 게 내겐 중요한 일인데, 그런 모습이 단지 웃긴 것으로 소비되는 것 같다.
-파인더스팟과 스컴레이드 멤버들의 이야기가 중심인데 처음부터 카메라가 집중하고자 한 밴드나 인물이 있었나.
이동우_ 처음부터 펑크신을 조명하는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우리끼리 술 먹고 노는 걸 찍어보려고 한 거라 술 마시고 취해 있는 송찬근 형의 모습이 결과적으로 가장 많이 나오게 됐다. 처음엔 우리 밴드(스컴레이드)를 찍었는데 재미가 없었다. 송찬근 형을 처음 만났을 땐 세상에 이렇게 웃기고 재밌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말이 너무 많다. 지금도 말이 아주 많지 않나.
송찬근_ 사실 난 이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행동 중에서 아주 가끔씩 하는 못난 모습만 담겼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다.
-영화를 염두에 두고 촬영을 시작한 게 아닌가.
이동우_ 영화가 목적이 아니었다. 처음엔 스컴레이드의 일본 투어 DVD를 만들려고 찍었다. 공연 영상을 찍어서 DVD를 팔곤 하는데, 찍다보니 공연보다 사람이 재밌더라. 사람들을 찍으니까 카메라 앞에서 이상한 소리도 많이 하고. 이걸 모으면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 영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처음엔 우리끼리 보려고 만든 영상이다.
-그러면 언제쯤 이 영상이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나.
이동우_ 일본 투어가 끝나고 우리끼리 즐길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 싶어 편집을 시작했다. 그런데 영상을 이어 붙이니까 드라마가 생기더라.
-펑크의 정신과 펑크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데 이런 얘기는 편집을 하면서 강조한 건가.
이동우_ 막바지 편집을 하면서 이걸 영화제에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편집은 신경 써서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나 주제는 고민하지 않았다. 펑크 정신 같은 걸 보여줄 생각도 없었고. 우리가 매일 하던 이야기, 늘 생각하던 것을 담았을 뿐이다. 굳이 펑크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에서 그게 보일 거라 생각했다. 우린 항상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스웨덴으로 이민 간 펑크 밴드 익스플로드의 윤찬성을 직접 만나고, 미국으로 이민 간 펑크 밴드 반란의 강용준과 영상통화를 한다. 한국에서 미래를 찾지 못하고 이민 간 펑크 밴드 멤버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도 의도한 인터뷰는 아니었나.
이동우_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촬영차 유럽에 간 김에 스웨덴에서 윤찬성 형을 만났다. 영상통화하는 모습은 편집 막바지에 넣은 건데, 영화가 워낙 시끄러워서 계속 보니까 나도 머리가 아프더라. 그래서 강용준 형한테 영상통화로 얌전한 말이나 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평소에 자주 영상통화를 하는 사이라 영화를 위해 특별히 연출한 건 없다. 모든 게 그 시기의 우연이 빚어낸 결과고, 그래서 사람들이 다시는 이런 영화를 만들지 못할 거라고 얘기한다.
-무대 밖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오는데, 이동우 감독의 카메라가 부담스러운 적은 없었나.
이동우_ 워낙 친하고 매일 보던 사이라 거부감은 없었을 거다. 모르는 사람이 와서 카메라를 들이밀면 싫었겠지만.
이주영_ 평소에도 작은 카메라로 항상 뭘 찍고 다닌다. 그렇게 찍은 영상을 페이스북에도 종종 올리고. 그래서 부담스럽진 않았다.
류지환_ 밴드 활동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서 음반뿐만 아니라 티셔츠나 공연 DVD를 만들어서 파는데, 이번에도 그런 거겠지 싶었다. 거부감은 없었다.
-영화에서 강용준은 펑크를 이렇게 정의한다. “무지하게 화가 나서 그걸 발산하는 음악이 펑크다. 시끄러워도 더 시끄럽고, 빨라도 더 빠르고, 미쳐도 더 미치는.” 각자가 생각하는 펑크 혹은 펑크정신은 무엇인가.
이동우_ 영화를 본 사람 중에 펑크를 멋있고 정의로운 운동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양아치 같던 사람들을 변하게 만든 게 펑크다. 생각도 모자라고 바보 같은 애들인데 더이상 바보처럼 살지 않게 해주는 거, 내겐 그게 펑크다.
류지환_ 좋아하는 음악과 생각이 비슷한 친구들이 모여서 노는 게 펑크다. 펑크가 제일 재밌는 놀이고 그 놀이를 같이할 수 있는 친구들이 이 신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펑크를 할 것 같다.
송찬근_ 1970년대의 펑크는 기성세대에 대한 무조건적 반항이었다. 1980년대에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펑크도 생겨나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운동도 일어나는데, 기본적으로 펑크는 사회운동이 아니고 화가 난 젊은이들의 부족문화 같은 거다. 사회운동적인 요소가 있는 놀이문화.
이주영_ 싫은 걸 싫다고 말할 수 있고 좋은 걸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게 펑크 같다. 잠깐 회사를 다녔는데 야근수당도 안 주면서 아침까지 일을 시키는 회사였다. 항상 듣던 말이 이런 걸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나는 그런 부당한 상황에 적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거기에 순응하지 않게 해준 힘이 펑크였다. 그 힘 덕분에 좀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게 됐고, 어디서든 내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고 내가 말하고 싶은 거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