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비겁한 남자들만 봐라, <스네이크 아이>
2001-03-20

화면 밝아지면. 안락한 중산층의 단란한 가족의 저녁 식사시간. 부인은 맛없는 자신의 요리를 너무도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을 바라보며 감동된 듯, 행복에 겨운 눈빛으로 말한다. “당신은 신사예요.” 부인의 칭찬에 보답을 하려는 듯 격렬한 피스톤 운동의 호흡을 멈추며, 아내의 젖가슴에 머리를 박는 남편. 그의 뒤통수 옆으로 희열에 찬 아내의 행복한 만족스런 얼굴은 잠든 아들의 얼굴을 보는 남편의 모습과 겹쳐진다. “내가 네 아빠란 걸 잊지 마라.” 이렇듯 행복한 가정의 자상한 가장이자 남편 그리고 아빠인 그 남자 하비 케이틀은 영화감독이다. 그것도 영화를 통해서 진실을 말하려고 하는….

스네이크 아이를 본 적이 있는가?

난 7살 초등학교 1학년 첫 봄소풍길, 그날 스네이크 아이를 처음 보았다.

그날도, 그래 화창한 봄날 소풍과 함께 있을 그림동화대회에서 솜씨를 뽐낼 양 새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가방에 안고, 5월의 개나리 꽃망울인 듯 샛노란 학교 모자를 줄줄이 머리에 쓰곤 참새와 병아리를 외쳐대는 선생님 따라 날아갈 듯했지. 나의 첫 봄소풍길. 대구시 사적 몇호 였나 그런 공원으로 가는 그 길을, 지금은 아스팔트로 두껍게 복개되었을 똥천- 너무나 썩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던 그 내천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을 따라 20여분은 족히 걸어가야 했지. 똥천 따라 늘어선 조그만 무허가 슬래브집들 열린 쪽문으론 허벅다리 사이로 허연 속옷 보이던 진한 화장한 누이들이 아침 손님을 맞고 있었고, 무슨 물인지 함석 대야 가득한 물을 똥천에 쏟아버리는 그 누이의 뒤통수에 대고 저 뒤 노란 모자 한 아이가 웃으며 손가락질로 외쳤지. “똥갈보년!” 그러자 병아리 참새 짹짹 대신에 다같이 따라 놀렸지. “똥갈보….” 근데 그 소리에 그 누이 화 대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어.

‘자갈 마당’이라고 불리던 텍사스촌 끝날 무렵 그 똥천이 둘둘 휘감고 있는 거대한 성곽의 공원에 마침내 다다랐지. 처음 보는 공원 주변의 그 인파와 형형 색색의 가게 진열장엔 조잡한 장난감들과 풍선들. 군데군데 무리지어 둘러싼 야바위꾼들, 그 사이에서 보았다. “애들은 가라…”를 연신 외쳐대는 거친 목소리의 우람한 털보 아저씨가 전봇대를 부순다나, 옹녀야 이리 오너라며 조그만 목걸이 마이크에 외쳐대던 그 소리 사이에서 난 처음 보았다.

영화 속 감독은 미국 자본주의의 허상을 보여주기 위해 러셀에게 술을 먹든, 마약을 하든, 창녀와 섹스를 하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연기해달라고 소리친다. 엉터리 같은 대본은 때려치우고 진짜로 하라고 마돈나인 사라에게 핏대 세워 고함친다. 지옥을 더 경험하라고. 가장으로서 감독으로서 그의 외침은 아내 앞에 남편으로 아버지로 서자 한순간 정적으로 돌변한다. ‘나는 어디에 있나. 나의 진실은 어디에 있나.’ 그리도 당당하던 카리스마와 자상함은 슬픈 자신의 고백의 노래로 변한다. 자신은 ‘지옥을 훔친 도둑’이라고. 그리도 행복에 겨워하던 아내는 감독인 남편의 위선을 보곤 울며서 소리친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배워”라고.

“우린 이 변두리에서 악몽처럼 살아가고 있어.” 감독은 러셀의 비겁이 되고, 그의 진실은 사라가 되고 마침내 그의 위선은 총이 되어 이마를 향한다. 사라 클레어인 마돈나는 자신을 죽이려면 술에서 깬 맑은 정신으로 하라고 말하며 더이상 러셀에게 구걸하지 않고 초연하게 눈을 감는다.

아벨 페라라는 파충류의 눈처럼 세상을 보고 있는 우리를 본다. 비겁한 남자들을 본다. 무너지는 상업적 자본주의와 남성 중심의 위선과 몰락을 본다.

설레던 맘의 첫 봄소풍 그날 밤. 뱀 몸뚱아리 똥천은 갈보 누이의 싱싱한 허벅지를 타고 처진 치마 사이의 하얀 속옷으로 미끄러진다. 무너지듯 누이는 짧은 탄성을 내뱉으며 나를 보며 손을 젓는다. 그녀의 눈빛에서 도망치듯 돌아서면 유리 항아리마다 가득 부은 소주에 절어 있는 뱀들 앞에서 누런 이빨 드러내고 아랫도리를 부비던 아저씨가, 그리고 지친 듯 보자기에서 끌려나온 체념한 백사의 눈동자가 나의 첫 몽정을 보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던 백사의 눈은 아벨 페라라의 <스네이크 아이>를 보던 그날 밤에도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스네이크 아이>는 진실된 자기를 볼 수 없는 술이 덜 깬 비겁한 남자들만 봐라. 그리고 자기를 몰래 비쳐볼 거울 하나 준비도 잊지 말고.

글: 김진한/ 영화감독·단편 <경멸> <햇빛 자르는 아이> 연출, 장편 <정크맨>(가제) 준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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