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묵은 일흔이 다 된 나이임에도 무척 동안이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허스키한 음성을 지닌 이묵은 자신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깨달은 후 바지씨(남자 역할의 레즈비언을 내부에서 지칭하는 말)로 평생을 살아왔다. 감독 이영이 사는 오늘날은 ‘바지’와 ‘치마’를 구분하지 않고 그저 레즈비언으로 통칭한다. 이묵의 정체성을 아는 고향 사람들은 짧은 머리의 취재진을 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궁금해한다. 이묵과 헤어져 서울로 돌아온 감독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종북 척결을 외치는 서울역 앞 집회현장이다. 예전부터 성소수자들이 모여 사는 곳 중 하나라는 성북에서는 성북주민인권선언문 채택을 앞두고 동성애 반대 집회가 한창이다. 영화는 이묵의 평온한 일상과 레즈비언으로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 다큐멘터리처럼 출발하고 그 분위기는 영화 내내 이어질 것만 같다. 그러나 감독은 성소수자가 어떤 박해를 받아 왔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굳이 과거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는 듯, 여전히 만연한 동성애 혐오 현장으로 눈을 돌린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함께 삶을 꾸려온 일본의 논과 텐 커플을 만나는 에피소드 이후에는 세월호 유가족의 진상규명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을 연결한다. 점진적으로 사람과 사건 사이에 연결점을 그려가는 자리마다 동성애 반대 운동이 마치 거울 이미지처럼 맞붙는다. 거울처럼 보이는 몸짓과 외침들은 실은 흐름을 차단하려는 단단한 벽과 같다. <거북이 시스터즈> <이반검열> 시리즈 등 소수자의 이야기에 주목해온 이영 감독의 작품으로 그간의 내공이 단단하게 응집된 수작이다. 2015년 DMZ국제다큐영화제 한국경쟁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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