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택시운전사> 송강호, ‘송강호’라는 장르
2017-07-25
글 : 이화정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송강호의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양쪽 눈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쌍꺼풀이 짙은 왼눈과 달리 오른눈은 외겹에 가깝다. 온전히 다른 눈의 형상이 배우 송강호의 필모그래피에 기류를 형성한다는 생각이 든다. 왼쪽의 쌍꺼풀진 눈이 ‘너스레’로 대변되는 페이소스 가득한 웃음에 좀더 많은 기여를 한다면, 오른쪽의 외겹처럼 보이는 눈의 움직임은 차갑고 건조한 날선 표정으로 번진다. 1980년 5월18일. 단지 택시비 10만원을 벌기 위해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 ‘만섭’. <택시운전사>는 송강호가 가진 이 두개의 ‘눈’을 통해 바라본 한국사의 비극이다. ‘딸라를 벌어야’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는 줄 알고 ‘데모를 하는 학생들은’ 피해나 주는 문제아라고 여기던, 나쁜 정부와 거짓 언론에 이용당한 소시민 만섭에게 광주 그곳의 참상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가려진 진실’이었다. 송강호는 서로 다른 두개의 눈이 빨갛게 충혈될 때까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현실을 두눈 감지 않고 똑똑히 목도한다. <변호인>(2013)의 변호사 송우석이 우리를 대변해 강직한 ‘입’이 되어주었다면, <택시운전사>의 만섭은 이제 투명한 ‘눈’이 되어주는 셈이다. 소시민을 대변하는 송강호의 마스크에 이제 우리는 이렇게 또 한번의 빚을 지게 된다.

배우 송강호는 그리하여, 송강호로 대변되는 어떤 장르가 된다. <택시운전사>는 작품이 있고 그가 캐스팅되는 수순을 따르는 영화가 아니라 배우 송강호가 존재하고 그를 통해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해지고 시작될 수 있었던 이야기다. 차기작 <마약왕> 촬영으로 부산에서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는 송강호에게, 지난해 뜨거웠던 여름에 촬영했던 ‘광주’의 기억을 꺼내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간 광주를 소재로 한 영화가 적지 않았다. <택시운전사>의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점이 끌렸나.

=광주를 소재로 한 그전 작품들도 다 훌륭하다. 하지만 광주의 비극을 예술적으로 승화하다 보니 관념적으로 빠지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너무 엄청난 비극이니까 다소 제의적으로 다가가는 거다. 신중해지고 겸허해지는 마음은 생기지만 뭔가 짓눌리는 느낌도 없지 않더라. 좀 유희적인 시선도 필요하겠다, 싶었다. 유희적이라는 게 ‘논다’는 게 아니라 좀더 승화적인 지점에서 말이다. 예를 들면 만섭과 피터가 처음 광주 한가운데로 진입할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에 사람들이 같이 놀기도 하고 사물놀이도 하고 그랬다더라. 격한 투쟁이라기보다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이야기도 하고 토론도 하고 잘못된 것을 지적도 하고 그러다 보면 서로 흥이 맞아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를 수 있는, 그게 광장의 문화다. 그 광장의 문화를 보여준다는 게 중요한 것이고, 이제 그런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시선이 참 좋았다.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라, 새삼 이런 시선하에 그때의 비극을 조명한다는 것이 마음에 다가오더라.

-말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지난겨울 광화문광장에서 보낸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긴 겨울을 지나 새로운 시기로 접어든 이 시기에 보는 영화라는 의미도 크다.

=기획은 한참 전에 된 거다. 무엇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에게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 영화에 광주의 참상을 다 그리지는 않았다. 그때의 상황을 담은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정말 미친다. 근데 그걸 곧이곧대로 전달하지 않더라도, 이건 우리 국민이 직접 겪은 거고 극복을 해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걸 작품을 통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하고, 그래서 이 작품이 가치가 있는 것 같다.

-1980년 5월 18일, 그날에 대해 당시 송강호 개인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나. 10대 시절이었고 고향 김해에서 지내던 때였다고 알고 있다.

=중2 때 라디오를 통해서 들었다. 그땐 라디오로 뉴스를 많이 전달받았으니까. ‘오늘 계엄군이 폭도들을 진압했다’라는 소식을 그냥 아무렇지 않게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아후 다행이다’ 하고 학교로 갔던 기억이 난다. 왜곡된 정보에 그렇게 속아 지낸 거다. 정말 아픈 역사인 거지.

-프로젝트를 제안받고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일주일 후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회자됐다. <변호인>으로 인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후문들과 겹치면서 그만큼 부담이 컸을 만한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일주일간 어떤 마음이었나.

=제안받았을 때 중국 상하이에서 <밀정>(2016)을 찍고 있었는데, 이 이야기가 준비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겁을 했다. (웃음) 아무래도 <변호인>을 통해 그 여파를 한번 경험해봤으니까. 그런데 자꾸 생각이 나더라. 작품을 읽고 느꼈던 감정들이 점점 생생하게 다가오는 거다. <변호인>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그 마음이 커지고 점점 깊어지고, 또 그만큼 비례해서 두려움도 커지더라. 그때부터 배우란 존재가 과연 무엇인가. 존재론적인 측면부터 시작해서 질문이 이어지더라. 나는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용기도 더 생기고. <변호인> 때를 돌아보면 결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용기를 주신 기억이 난다.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 특히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가깝게는 집사람의 조언도 있었고. 그런 가까운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큰 용기가 됐다.

-결국 ‘결정적’인 것은 배우 송강호의 결단으로 남는다. 이미 마음속에서는 해야 한다는 결정이 있었고, 그런 마음이 정해지니 지지를 더해주는 사람들의 말에만 기울어지는 거다. 또 그런 말을 해주기를 원하고.

=어떻게 아나? (웃음) 혹여 반대 의견을 말하면 화가 나더라. 반대의 말들이 굉장히 정확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도 안 듣고 싶었다. 사람 심리가 그렇게 되더라. 그런데 또 다르게 생각하면 난 참 영광스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택시운전사>나 <변호인>을 내가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고,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 큰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소재의 영화를 할 때 항상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는데, 한편으로 배우로서 의미 있는 작품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 영광스럽다는 생각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감사한 거고 감사한 만큼 짊어져야 할 마음의 짐도 동시에 지게 된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효자동 이발사>(2004)의 청와대 출입 이발사,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 <관상>(2013)의 정치적 풍파에서 희생당하는 관상가 내경 등 굴곡진 이 나라의 역사를 대변하는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배우라는 것이 천년만년 하는 직업이 아니지 않나. 작품을 할 수 있는 어떤 타이밍이 있는 건데,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과연 몇번 올까 싶다. 그건 쉽지 않은 거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못하는 연기도 있을 테고, 또 이런 연기는 20대 때는 ‘나 그거 하고 싶어요’ 해도 못한다. (웃음) 그런 점에서 볼 때 흔히들 말하는 굉장히 무거운 어깨의 짐도 있지만 나로서는 마음의 어떤 행복이랄까, 성취감, 영광스러움도 동시에 들더라.

-택시운전사 만섭이 목을 매는 ‘10만원’이라는 돈은 당시 서민에게 밀린 월세 세달치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그 돈이 만섭의 택시를 움직이게 하는 거고. ‘손님이 가자면 무조건 가는 거지’라는 것이 처음엔 이 10만원 때문이었다가 결국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의무’로 변하기까지, 그 감정의 진폭 안에 송강호만이 할 수 있는 웃음과 눈물의 페이소스가 발휘된다. 광주 시민이 준 주먹밥을 처음엔 그저 맛있게 먹다가 이후 눈물과 뒤섞인 국밥을 먹는 두 장면이 이 변화를 극적으로 드러내준다.

=슬픔만이 아니라 즐거움, 애환 그런 것들이 곳곳에, 영화의 장면 안에 모두 있다. 한 사람의 감정이 변화한다는 것이 어떤 특별한 계기도 필요하겠지만 사실은 마음 안에서 벌어진다고 본다. 만섭 역시 특정한 사건을 통해서라기보다 현실을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오는 것 같더라.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의 동요나 내적인 갈등이 무리 없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

-만섭이 광주민주화운동의 격랑에 휘말리면서 겪는 심경의 변화를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가 어린 딸을 둔 홀아버지라는 이유도 크다. <효자동 이발사>에서는 중앙정보부에 간첩으로 끌려간 어린 아들 낙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 성한모를, <괴물>에서는 괴물에게 잡혀간 딸 중학생 현서를 구하기 위해 달리는 아빠이자 한강 매점 주인 박강두를, <관상>에서는 역사의 광풍 안에서 아들 진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내어놓는 아빠 내경을 연기한다. 심지어 <우아한 세계>에서는 조폭 역할을 할 때조차 기러기아빠 강인구로 나오고 인류의 희망이 바닥난 근미래를 그린 <설국열차>에서도 딸 요나를 지키는 것이 남궁민수의 가장 큰 대의로 작용한다. 부성으로 상징되는 소시민의 모습이 어느 순간 배우 송강호의 가장 대표적인 얼굴을 형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리적으로 이제 쉰하나다. 만 50이라고 치면 아빠 역할을 할 시기도 이제 많이 지났다. 송강호이기 때문에 소시민의 아빠 역할이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은 나도 한다. 좀 친근하고 서민적이고 그런 이미지가 크니까. 확실히 관객은 송강호를 통해서 그런 얼굴을 만났을 때 가장 반갑고 좋고 편안해하더라. 예를 들면 <밀정>에서의 서늘한 송강호의 얼굴은 신선하고 좋기는 하지만 왠지 좀 편안하지 않은 거지. 그래서 반대로 좀더 다양한 시도를 하려고도 한다. <사도>(2015)에서 영조 역할을 했듯이.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송강호가 관상쟁이(<관상>)로 나오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데 영조를 한다는 건 사람들에게 선뜻 그림이 안 그려지는 거다. 일종의 고정관념이다. 사극에서 늘 봐왔던 왕의 모습과 나는 다르니까. 실제로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가면 왕의 모습은 사극 속의 왕보다 나와 더 많이 닮았을 거다. (웃음) 하지만 왕은 잘생기고 풍채가 좋을 것이라는 익숙한 이미지에 우리 모두 세뇌되어 있다. 소시민도 마찬가지다. 잘생긴 배우가 소시민 역할을 왜 못하나. 예술의 근본은 파괴하고 깨는 거지 않나.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이 아니라 정말 우리가 알고 있었던 일상적인 것들을 깨고 찢어나가는 것이 예술이 아닐까 싶다.

-작품에서의 ‘소시민’의 이미지와 달리 자연인 송강호는 사실 작품 외에는 외부와 차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화제가 되었고, 모 매체에 아들과 함께한 인터뷰가 나가는 등의 친화적인 모습은 의외였다. 그만큼 이 영화를 알리고 싶다는 의무감으로도 비쳐지더라.

=<뉴스룸> 처음 생겼을 때가 딱 <변호인> 개봉 때였다. 어떻게 보면 첫 출연자가 될 뻔했다. 그런데 그때가 참 어수선했다. 정권 초기라, 그 영화를 대하는 반응이 컸다. 좋은 뜻으로 ‘난리가 난’ 건데, 이럴 때 내가 방송에 나가서 혹시 말이라도 잘못하면 일파만파가 될 수 있겠다 싶더라. 그런 측면에서 자제를 좀 한 거다. <밀정>이나 <사도> 때도 섭외가 들어왔는데 개인적으로는 나갈 명분이 좀 떨어지더라. 지난해에 정치적인 큰 사건이 있었고, 오랜만에 다시 <뉴스룸>이 재개하면서 적재적소에서로 잘 맞은 것 같다. 처음에는 5월 18일에 나가자 했는데, 그건 또 너무 속이 보인다 싶더라. 그리고 아들과 함께한 인터뷰는 나도 참 쑥스럽다. (웃음)

-부산에서 차기작으로 우민호 감독이 연출하는 <마약왕>을 촬영 중이다. 1970년대 마약계 최고 권력자로 시대를 풍미했던 ‘이두삼’ 역할을 맡는데. 지난해 여름에 촬영한 <택시운전사>에서 만섭이 오히려 짧은 커트의 단정한 모습을 보여줬다면, 지난겨울부터는 <마약왕>의 파격적인 장발 헤어스타일을 해, 이미지부터 달라 보이더라.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부터 형성된 ‘뜨거운’ 온도의 모습, <복수는 나의 것> <박쥐> 등으로 형성된 건조함과는 또 다를 것 같다는 예상이 든다.

=지금도 <마약왕> 촬영 때문에 인터뷰 끝나고 부산에 가야 한다. 열심히 찍고 있다. 그런데 기존의 모습을 깬다라는 것이 일종의 착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가 기존과 다른 연기를 하면 관객 입장에서는 못 보던 모습이지만, 사실 배우한테는 다 있는 모습인데 그렇게 느낄 뿐이다. 반대로 비슷한 모습, 늘 봐왔던 모습을 연기한다고 해서 같은 연기는 아니다. 비슷한 모습이 아닌데도, 내가 늘 봐왔던 그 배우의 그 모습이네 하는 착각. 그게 관객을 편하게 해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배우 입장에서는 다르다. 조용필이라는 가수가 신곡을 발표했다. 그런데 갑자기 최백호가 된다? 그게 있을 수 있나. 조용필의 목소리를 가진 채 다른 신곡을 발표하는 것일 뿐이다. 아무리 뭐를 깼다, 변신을 했다는 수식이 붙어도 다른 배우가 갑자기 송강호가 되거나 최민식이 되진 않는다. 사실 배우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말하는 ‘변신’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다. 배우는 어떤 작품을 만났을 때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그 안에서 가장 적절하고 적확한 연기인가, 그것만 생각하고 그걸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연기를 할 때 생각처럼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부담감이 크지는 않은 편이다.

-<변호인>에 이어 <택시운전사>는 허구로서의 영화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구체적인 실제 역사 속에 놓인 영화들이다. 송우석 변호사에 이어 만섭을 세상에 내어놓는 기분, 의미를 듣고 싶다.

=기술시사를 보고 기분이 좋더라. 내가 이 작품에서 잘했다 그게 아니라, 관객에게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변호인>을 영화로 만들고 그 캐릭터를 내어놓았을 때 준 건 ‘충격’이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쉽게 꺼내지 못했던 인물이었으니까. 그런데 80년 광주에 대한 이야기는 앞서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정서적 충격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의미는 영화의 완성도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의 의도는 정확하다. 그런데 의도대로 감정을 소비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좀더 성숙한 영화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흡족하다. 관객도 내가 느낀 이 감정을 전달받는다면, 이 영화에 참여한 의미가 커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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