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의 여름밤, 서울시청 앞 광장 야외무대에 여섯명이 올라갔다. 퀴어문화축제의 홍보대사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을 모델, 사진작가, 배우, 유튜버, 크리에이터라고 소개한 다음, 자신의 커밍아웃 스토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상근은 10년 전에 모두에게 커밍아웃을 하며 오픈리 게이로 살기 시작했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고, 사진작가이자 모델인 나비는 번번이 검열당해버린 자신의 수많은 커밍아웃을 애도하며 다시 그 자리에서 자신은 레즈비언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배우 권기하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는 몇편의 퀴어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너 혹시 게이니?”라는 질문을 종종 받아왔다고 했다. 호의적으로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너 그냥 인권 개념이 좀 있을 뿐 게이는 아니지?”라는 말을 듣고 싶어 했고, 악의적인 사람은 멸시와 호기심으로 그런 질문을 한다 했다. 그다음 이어지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앞으로 평생동안 이런 질문에 답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했다니, 세상에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커밍아웃과 세상에 ‘쟤’가 누구인지를 폭로하는 아우팅으로 양분되어 있던 세계에서 좀처럼 듣기 어려운 선언이 아닌가.
커밍아웃 정치학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당사자가 만들지 않는 범주로 자신을 설명하고, 때로는 모욕하기까지 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과연 개인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일까.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과연 누구를 안심시키는가. 때로는 대답하지 않는 것이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선택이 될 때가 있다. 나는 가끔 결혼했는가, 아이는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대체 내가 뭐라고 답할 줄 알고 그런 질문을 하는지 되묻곤 한다. “제가 여러분의 예상을 뛰어넘는 대답을 하면 그 대답을 들을 준비는 되셨고요?”라고 하면 물어 본 사람들은 매우 당황한다. 일부러 당황시키려고 한 건 아니다. 진짜 궁금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산다. 하지만 저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그런 경우의 수가 단 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정체성의 정치가 신자유주의와 만나 다양성의 목록 하나를 채우는 식으로 축소된 요즘, 진정한 불온세력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침 이에 딱 맞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불온한 당신>이 극장에서 개봉한다. 주인공 이묵은 자신으로 살았을 뿐인데 종북 게이 운운하는 혐오세력에 의해 불온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지만 관객은 트랜스젠더건 동성애자건 레즈비언이건 어떤 이름으로도 그를 쉽사리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불온하기 짝이 없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