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택시운전사> 장훈 감독, "만섭의 시선이 지금 우리의 시선"
2017-08-03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1980년 5월 18일. 군사정권에 항거하던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피의 ‘그날’. 새 정권 출범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진상 규명에 대한 의지를 밝혔지만, ‘광주’ 희생자와 유가족의 상처, 명예회복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는 그간 광주를 다룬 영화와 소설에 이어, 보다 대중적 화법으로 그날의 진상 규명에 다가가고자 하는 영화다. 광주의 사건을 전세계에 보도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영상과 실화를 바탕으로, 10만원을 벌기 위해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치만)를 태우고 아무것도 모른 채 참상의 현장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의 1박2일을 그린다. 만섭의 초록색 택시 브리사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의 순간을 적나라하게 통과한다.

데뷔작 <영화는 영화다>(2008)의 호평 이후, 분단국가 대한민국의 현재를 포착한 <의형제>(2009), 끝나지 않은 6·25전쟁의 마지막 전투를 그린 <고지전>(2011)을 만들며, 한국 근현대사의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시선을 포착해온 장훈 감독. <택시운전사>는 <고지전> 이후 그의 6년 만의 신작이다. 그에게 들추어내기조차 아픈 1980년 5월 18일로 향한이유를 물었다.

-배우 송강호가 처음에 작품을 고사했을 정도로, 그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는 건 민감한 문제였던 게 사실이다. 촬영을 하던 지난해와 달리 그사이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작품을 준비할 때와 지금은 사회적으로 분위기가 굉장히 달라졌다. 지난 5·18 기념식 때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하는 것을 보는데, 하나하나 공감이 가더라. 어찌보면 당연히 이야기되었어야 할 부분인데 그 말을 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비극적인 역사에서 우리가 그래도 희망을 발견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사건을 일단 직시해야 한다. 사실을 똑바로 알아야 하고 그다음에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야 이 문제에 관해 서로 더 깊이 이야기 할 수 있겠구나 싶더라.

-<택시운전사>는 직접 각본을 쓰지 않고 연출 제안을 받은 시나리오였다.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건가.

=2015년 10월 말에 박은경 대표(현재 더 램프 대표로, 쇼박스 한국영화기획투자 팀장 때부터 인연을 맺음)가 제안했는데 그분이 정말 열정적이고 추진력이 대단하다. 시나리오가 나오자마자 거두절미하고 주시더라. (웃음) 불과 얼마 전에 만났을 때 초고 쓰고 있다고 한번 고민해보라고 하시더니…. 사실 2고까지 쓰던 SF물이 있었는데 진도가 잘 안 나가던 차였다. 그 작품을 하려면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해서 이걸 고칠까, 아니면 <택시운전사>를 할까 고민했는데, 이런 좋은 작품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싶었다.

-그만큼 부담도 컸을 텐데.

=부담이 상당했다. 그럼에도 하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는 결국 이 시나리오를 한편의 이야기로 봤다는 점이다. 주변 인물들을 통해 변화하는 택시운전사 만섭을 보면서 나와 동일시하게 되고, 그 캐릭터가 많이 와닿았다. 나보다 더 어린 세대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만난 젊은 관객 가운데에 “이런 일이 있었다니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가 적지 않더라. 그들이 이 문제를 접하고 고민할 기회가 되었으면 싶었다.

-1975년생으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어린 나이였다.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려고 했나.

=당시 나는 6살이었는데 TV나 라디오도 없었고, 사건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이 사건은 대학에 와서야 알게 됐다. 어떻게 군인이 국민을 학살하나, 자료를 보면서도 이해가 안 됐다.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이 시대를 살면서 당시의 광주를 겪은 분들에게 부채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마 사건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낄 거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긴장도 있었고, 한편으로 잘할 수 있을까 부담도 컸다. 한 일주일간 심각하게 고민했다. <고지전> 때도 그랬는데, 또 다른 비극적인 역사를 다루면서 느끼게 될 심리적 부담을 견딜 수 있을까 싶어 걱정이 되었다.

-<고지전>이 현재의 관객에게 역사를 환기시켜주지 못했다는 반성이었나.

=창작자로서 비극적인 역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컸다. <고지전> 때 경험한 부분이기도 한데, 역시 6·25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로서 역사를 바로 담는 게 쉽지 않더라. 작품을 하는 동안 마음이 늘 억눌려 있었고, 그렇게 마음이 짓눌린 상태에서 촬영을 하다보니 연출자로서 이야기를 제대로 그리지 못하겠더라. 영화를 마치고 ‘나는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었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와 접점을 찾은 게 아니라 그냥 과거의 이야기에 머물러 있었던 거다. 그런 태도로는 절대 손을 대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해결 지점을 찾아가는 게 시작이었겠다.

=실존 인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피터의 모델이 된 힌츠페터 기자님을 찾아가는 게 가장 먼저였다. 지난해에 돌아가셨는데 그전에 만나뵐 수 있었다. 만나서 제일 먼저 건넨 질문이, “어떤 마음으로 광주에 갔냐”였다. 어떤 대단한 사명감이 있으면 그런 위험한 곳에 가는 걸 자청할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분이 “기자니까 당연히 간 거다”라고 하셨다. 그걸 힘주어 말한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중요하지 않은 듯 그냥 말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시더라. 혹시 다른 기자들과 다른, 특별한 기자 정신이 있지는 않을까 싶어, “왜 기자가 되었냐”고 다시 질문을 드렸다. ‘돈 때문’이라고 손으로 지폐를 세는 시늉을 하며 대답하시더라. 그날의 그 대화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분은 원래 의대생이었는데 아르바이트로 카메라를 들게 되었고 이후 기자 일을 했다. 투철한 사명감이나 거창한 역사의식 때문이 아니라 그냥 직업윤리에 의한 판단을 했다. <고지전> 때의 시행착오와 맞물려서, 이 영화의 톤을 어떻게 끌고 나가야 할지가 그때 보이더라. 역사의 무게에 눌리기보다 상식적인 태도로 현재의 모습들이 보일 수 있도록, 그걸 관객의 눈앞에 가감없이 보이게 하고 싶었다.

-반면 만섭의 모델이 된 인물인 택시운전사 김사복은 직접 만나지 못했다고 들었다. 기록도 많지 않았고, 거의 대부분 창조된 캐릭터다.

=만섭에 대해서는 너무 정보가 없어서 힌츠페터 기자님의 기억을 최대한 반영했다. 그분의 기억에서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지는 않았다. 사람이 좋았고, 본인보다 나이가 많았다는 점. 샛길을 찾아서라도 광주로 갈 정도로 기지가 있는 사람이었다는 정도더라. 두 사람이 동행하긴 했지만 그들이 그 과정에서 겪은 사건과 장면이 너무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니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기가 힘들었을 거다. 힌츠페터 기자님에게 전해들은 인간적인 특징을 제외하고는 만섭의 경우 캐릭터의 거의 모든 특징을 만들어냈다.

-결국 독일 기자 힌츠페터가 아닌, 그로 인해 그 사건을 목격한 한 평범한 택시운전사의 눈을 통해 당시의 광주를 재구성했다. 그의 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 영화를 보는 다양한 관객이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광주에 살지 않아 그 사실을 모르던 사람들을 만섭이 대변해야 한다고 봤다. 만섭이 금남로에 들어가서 참상을 목도하는 순간, 영화를 보는 관객이 만섭의 시선이 자신의 시선이라고 느끼길 원했다. 만섭은 그냥 평범한 택시운전사다. 돈 10만원에 먼 길 가는 손님을 태우기도 하고, 또 그런 상황에서는 무서워서 도망가기도 하는 사람이다. 손해 볼 일은 안 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는 피해를 봐도 순응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송강호라는 배우의 연기가 그 변화를 수긍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배우 송강호는 ‘최고’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변호인>이 형성한 이미지가 워낙 커서 오히려 다른 대안도 생각해 봤을 것 같다.

=나도, 박은경 대표도 송 선배를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역할에 송 선배를 떠올릴 거다. 정말 ‘넘사벽’이다. <변호인> 때문이기도 한데, 두 인물 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급격하게 변하고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한다. 하지만 이야기한 대로 <변호인>의 모습과 달라야했다. 만드는 입장에서 두 인물의 차이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가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다른 노선을 걷는 것과 달리 만섭은 내적 변화를 겪지만 우리와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그 참혹한 광주에서 빠져나온 뒤 용기를 내서 다시 광주로 가 손님을 태우지만, 결국은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 차이점을 정리하고 가는 게 중요했다.

-힌츠페터 기자와 만섭 사이에 형성된 인간적인 소통을 보면서, 독일영화 <타인의 삶>(2007)의 인물들이 많이 떠오르더라. <타인의 삶>은 독일의 비밀경찰이 감시 대상이던 소설가로부터 자유세계의 가치를 알게 되고 인간적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스토리의 뒷부분으로 가면서 피터와 만섭 사이에 형성되는 감정선, 관계에 대해서는 <타인의 삶>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들은 사실 당시 미술적인 고증 때문에 많이 찾아본 거고, 결정적인 건 힌츠페터가 찍은 영상으로부터 얻었다. 그것 자체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영화적으로 참고한 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사울의 아들>(2015)이었다. 아이를 잃은 아버지 사울의 등을 좇아가는 그 영화처럼, 최대한 인물 중심으로 진행하려 했다. 물론 광주가 보여지지만 만섭이라는 인물 중심으로 감으로써 관객이 좀더 집중해서 사건을 보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군중 신이나 외부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는 <알제리 전투>(1966)를 많이 참고했다.

-서울 택시기사 만섭을 돕는 황태술(유해진)을 필두로 한 광주 택시기사 캐릭터들이 그 당시 광주의 분위기를 설명해주는 좋은 매개체다. 외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다가도 금세 조건 없이 돕고 나누는 그들의 캐릭터가, 광주라는 도시를 재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기간 열흘 동안 그곳의 상황을 돌아보면, 절도사건이 하나도 없었고 서로 네 거 내 거가 없었다더라. 기름도 공짜로 넣어주고. 음식을 만들어 서로 나누어 먹기도 했다. 자료를 봐도 다들 웃고 있고 표정이 밝더라. 이기적인 모습 없이 서로 도와주는 모습들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광주 시민들의 캐릭터를 그릴 때 최대한 내가 보았던 그 느낌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광주 금남로 장면이 참상의 현장을 시각적으로 재현한다. 군인들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시민들의 육체가 적나라하게 클로즈업된다. 주요 캐릭터의 비극적인 최후에 감정이입되는 것보다 이 시가전에서의 죽음이 주는 충격의 강도가 더 세게 다가왔다. 극영화의 감정선보다 실제 그 당시 사건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연출이었다.

=그 부분에 고민이 컸다. 만섭이 병원에 왔다가 금남로로 갔을 때, 구하려던 사람들이 거리에 쓰러진다. 보다 못해 택시기사들이 총알이 빗발치는 현장으로 들어가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온다. 그 상황을, 직시하고 있는 만섭의 표정만 보여주고 사운드로만 갈까 생각했다. 그 장면을 다시 보면 실제 사건을 겪은 분들은 많이 힘들 거고, 직접 장면을 보여주는 것보다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게 관객의 입장에서 더 슬프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편집을 하고 다양한 의견들을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20, 30대 젊은 관객 중에는 이 사건들을 모르는 이들이 상당수 있었고, 그 지점에 많이 놀랐다. 그렇다면 만섭이 보는 걸 관객에게 보여주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이 ‘충격요법’이 불편하게 받아질 수 있고 비판의 여지로 남는다.

=물론 이런 묘사가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광주 시민들한테 이걸 다시 보여주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은 항상 따라다녔고, 늘 고민했던 문제다. 사실 영화의 총격전은 있는 실제보다 오히려 수위를 낮춘 것이었다. 실제 그 사건 현장을 찍은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 더 처참한 묘사들이 많다. 그것에 비해서는 영화적인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너무 적나라하다, 직접적이다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건을 겪은 사람들과 젊은 세대간의 절충점을 고려해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었다. 몰랐던 부분들이 있었다면, 관객에게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택시운전사>가 만섭이 본 광주의 1박2일이고, 광주민주화운동 전체를 다룬 건 아니지만 그 잠깐의 직시를 전달한다면 이 사건을 몰랐던 사람들이 당시 광주에 대한 더 많은 사실들을 찾을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고지전>에 이어 100억원대의 대작에 연속으로 참여했다.

=1980년대의 공간을 만드는 게 쉽지 않더라. 택시가 가는 길마다 그때의 풍경을 재현해야 해서 서울과 광주의 풍경을 CG로 작업했다. 그런데 볼 때마다 CG작업 해야 할 분량이 계속 더 생기더라. (웃음) 끝이 없었다. 너무 거슬리지 않게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금남로 장면을 찍을 때는 한여름 대낮에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곳에서 내내 촬영을 해야 했다. 스탭, 배우, 보조 출연자들 모두 고마웠다. 병원 장면은 실제 광주에서 당시 사망자들이 안치돼 있던 서남대병원에서 촬영했다. 현재는 이 건물을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논의하는 상태라 영업을 안 하고 있는데 오래 사용하지 않고 방치한 공간이라서 나무들도 무성하게 자라 있고 기운도 가라앉아 있었다. 거기서 세팅을 하고 촬영을 하는데, 마음이 너무 좋지 않더라. 물리적인 것보다 심적으로 많이 힘든 작업이었다. 개봉을 앞두고 긴장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다. 관객은 저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가지고 스크린 앞에 앉아 있으니, 각각 다른 지점들이 보일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해서 내가 판단하거나 맞다 아니다를 이야기하는 게 어렵다. 대신 여전히 광주민주화운동 자체를 왜곡해서 이야기하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고 이 영화가 그런 시선에 작은 변화를 일으켰으면 좋겠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원래 하려던 SF는 이번에도 미루어두었다.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규모가 큰 SF는 힘들 것 같고 영리한 SF를 해야 할 텐데. 작품이 ‘익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택시운전사>도 2003년에 영화화하면 어떨까 하며 시작되었고 내 손에 온 게 2015년이었다. 차기작은 <궁리>(장영실과 세종대왕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사극)인데, <택시운전사>가 개봉하고 나면 이제 그걸 꾸리느라 바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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