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산에 사는 30대 여성이 남편이 잠든 사이 5개월 된 아기를 안고 아파트에서 투신해 중상을 입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아내가 평소 육아의 어려움에 괴로워했다는 기사에, ‘애 보는 게 뭐가 힘들다고’, ‘엄마가 돼서 모성애도 없냐’고 말하는 댓글을 읽으며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나는 이상하게도 무고하게 피해를 입은 아이가 아니라 괴로웠을 아이엄마의 마음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마 얼마 전 겪은 처참한 실패 때문일 것이다.
지난 주말, 제주에 사는 남동생 부부가 한돌 반이 된 딸과 서울을 찾았다. 그간 마감에 치여 조카를 볼 수 없었던 나만 속 모르고 신났지 엄마는 집 안 구석구석 아이용 안전장치를 장착하느라, 동생 부부는 온갖 짐을 둘러업고 어린 아기까지 비행기에 태우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다. 어쩐지 좀 미안해진 나는 책임지고 조카를 봐주겠노라 큰소리쳤다. 그동안 밀린 고모 노릇 다 할 테니 안심하고 나가라고, 둘이 데이트도 하고 오라며 동생 부부를 밖으로 떠밀었다. 나름 자신 있었다. 조카가 갓난쟁이일 때 종종 봐주기도 했고, 또 나만 보면 유달리 방긋방긋 웃으며 좋아하는 예쁜 아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랬다, 사랑! 세상에 사랑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 또 있는가!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조카와 반나절을 보낸 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엉엉 울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아이는 그새 더욱 호기심이 왕성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자기주장이 분명한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해 있었다. 무슨 말이냐면 모든 것을 만져보고, 쉬지 않고 뛰어다니면서, 원인을 알 수 없이 울거나 화를 냈다. 새로운 환경에서 모든 게 낯설고 불편할 아이 마음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나의 모든 헌신적인 수발을 아이가 거부할 때마다, 끈질긴 노력의 효과가 없을 때마다 난 깊이 상처만 받았다.
결국 동생 부부가 돌아오자마자 말없이 도망쳐버렸다. 그리고 조카를 전혀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다 몸살까지 났다. 문득 독박육아의 괴로움을 토로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24시간 온전한 관찰과 보호가 필요한 아이를 홀로 책임지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다들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 정말 괜찮은 걸까. 사랑으로 가능케 하라니, 개뿔. 먼저 존중과 이해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육아라는 노동의 엄청난 수고로움과 정성에 대한 존중. 그리고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이해.
비록 일일 육아는 장렬히 실패했지만, 그래도 천사 같은 동생 부부는 덕분에 아이 낳고 처음으로 극장 나들이를 했다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아이가 5살이 돼서야 겨우 극장에 간 친구들도 있는데 자신들은 꽤 선방했다면서. 내가 제대로 한 일이라곤 ‘재밌는 영화 추천’밖에 없는데. 역시 상큼발랄한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밀길 잘했다. 그래도 내가 본 요즘 최고작은 우리 조카의 사랑스러운 옹알이 동영상뿐인데. 대체 조카란 뭘까. 사랑이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