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개의 챕터로 구성된 <여자들>. 글이 안 풀려 고민인 작가 시형의 ‘글 찾기’과정은, 프롤로그와 에피소드, 에필로그로 이어진다. 집, 거리, 서점, 음식점, 오키나와처럼 시형이 머물고 도착하는 공간마다 그 공간을 형성하는 여성들은 시형에게 영감과 깨달음을 준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시형이 관통하는 여섯개 이야기의 ‘문’을 닫는 역할을 한다. 맑고 단아한 재즈풍의 곡들, 같은 음악을 변주한 듯한 심플한 구성의 곡들 사이로, 시형은 그렇게 성장해간다.
영화의 소소한 톤과 맞닿은 곡을 만든 건 음악감독 김동환이다. “시형이 챕터가 끝날 때마다 글을 쓰지 않나. 글을 쓰는 시형의 심정에 최대한 맞춘 곡을 쓰려 했다. 작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시형의 마음이 곡들 안에 담긴다.” 김동환 감독은 “마치 <어린 왕자>의 성장기 같은 영화에 ‘아기자기한 소녀풍의 재즈음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영화를 연출한 이상덕 감독과는 4년째 같은 축구동호회 멤버. “운동 끝나고 밥 먹는데, 나 이 영화음악 하겠다. 더 필요한 거 없나. 뭐든 맞춰서 하겠다고 어필했다. (웃음)”
영화음악을 두고 “음악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서 영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정의하는 김동환 감독. 그가 영화음악을 시작한 건 최시형이 연출한 영화 <경복> 때부터였다. “시형이랑은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 사이다. 맨날 우리집에 와서 <경복> 시나리오를 쓰더라. 그러다 어느 날 ‘네가 음악할래?’ 물었다.” 그렇게 ‘진지하지 않게 시작했지만 <서울연애> 중 <영시>를 통해 제작과정에도 참여하면서 영화음악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고.
김동환 감독은 초등학생 때부터 바이올린을 공부했고 이후 피아노도 치며 음악을 접해왔지만, 음악을 정식으로 공부하지는 않았다. 3년 전, 20대 후반의 시간들을 독일 베를린에서 보내며 다양한 문화를 체험한 그는, 이제 유럽과는 또 다른 ‘아시아’ 특유의 분위기를 발견하고 적용시키려 한다. 재즈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간노 요코는 음악과 활동 방향 모두 그에게 영감을 주는 뮤지션. 영화를 중심으로 그 역시 자신의 세계를 펼치려 한다. “작업 제안은 꾸준히 들어오는데, 공감하는 영화, 능력 안의 영화들을 하려다보니 아직은 생계에 지장이 있다. (웃음)” 하지만 영화는 이제 그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생활 이상의 밀접한 무엇이 되었다. 최시형과 함께 두달 전 연남동에 카페 ‘남국재견’을 오픈한 것도 그 과정 중 하나. 영화 공간을 만드는 게 둘의 오랜 계획이었다. 매주 이곳에서 영화 보기도 이루어진다. “타인의 심사기준에 의해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지만, 가치가 있는 영화들’을 보여주려 한다. 그렇게 만난 감독들과 언젠가 작업도 같이하지 않을까. 일종의 ‘길드’처럼.”
저장해놓은 소리들
김동환 음악감독의 스마트폰 녹음기에는 ‘별별 소리’가 다 있다. “45초 동안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녹음한 것도 있고, 공사장 소음만 녹음한 것도 있다.” 흔히들 사진을 찍는 것처럼 그는 ‘소리를 찍는다’고 말한다. “스무살 때부터 온갖 소리를 녹음했다. 소음들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그걸 잘 풀어보면 나름의 음악이 나온다.” 저장해놓은 ‘소리의 소재’가 언젠가 좋은 영화음악으로 나오길 기대하며, 끊임없이 녹음 버튼을 누른다.
영화 2017 <여자들> 2015 <연애영화> 2015 <서울연애> 중 <영시> 2013 <농담> 2012 <경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