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전복적이다. 권용만, 장성건이 결성한 펑크 밴드 밤섬해적단의 행보를 따라가는 이 독특한 다큐멘터리는 사진작가 박정근이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기소를 당한 사건까지 두루 엮어 커다란 질문을 던진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을 자유는 없는가. 싫은 걸 싫다고 말할 자유는 없는가. 밤섬해적단은 사회부조리를 거대한 농담으로 맞받아친 펑크 밴드였고 그저 펑크답게 놀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된다. <논픽션 다이어리>(2013)를 통해 국가적 살인에 대한 화두를 던진 정윤석 감독은 그 순간의 비정상을 놓치지 않았다. 밤섬해적단과 함께한 6년, 영화는 몸으로 체험한 사회의 부조리를 음악으로 해소한다. 세대 문제, 권위주의, 사회불평등 등을 외치는 그들의 음악은 소음처럼 귀를 아프게 하고 관객은 이를 외면한다. 정윤석 감독은 이 모습이 사회의 불협화음을 외면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과 닮았다고 느끼고 이를 영화로 번역했다. 그러니까 이건 우리의 이야기다. 미술과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의 공공성과 개인의 위치를 표현해온 정윤석 감독의 신작은 그야말로 펑크다. 이 영화는 장르를 분류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전에 그냥 즐기면 족하다. 무엇보다 귀를 닫을 필요가 없을 만큼 재미있고 신난다. 정윤석 감독과 밤섬해적단 전 멤버 권용만과 장성건, 동료 뮤지션 회기동 단편선(이하 단편선), 사진작가이자 프로듀서 박정근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만나자마자 서로 농담부터 건네며 즐거워하는 이들은 영화를 닮았다. 아니, 이들의 호흡과 생각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 영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다. 여기 다시 펼쳐진 서울불바다 공연의 즐거움을 전한다.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올해 가장 주목받은 한국 다큐멘터리 중 하나다. 8월 24일 개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정윤석_ 초반에 오프닝 타이틀 나올 때까지 당황하는 분들이 많았다. 예측하지 못한 지점부터 차별적으로 사운드를 때리니까. (웃음) 원래는 개봉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마음 반, 개봉 안 하고 싶은 마음 반이었는데 갑자기 개봉을 시켜준다고 해서 놀랐다. 이명박근혜 정권하에서 만들어지기도 했고 주변에서 심의 통과는 하겠냐고 걱정도 많이 했다. 지금이야 상관없겠지만 만들 당시만 해도 전략적으로 해외에 먼저 나갔다가 들어와야 하는 건가 고민도 했다.
=권용만_ 영화제 때는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이 많으니까 호의적일 수 있는데 일반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사실 걱정도 된다. 아버님이 <한겨레> 창간 주주이신데 여기서(<씨네21> 사진 스튜디오가 있는 <한겨레> 본사 옥상) 촬영을 하게 될 줄이야. (웃음)
=단편선_ 책임질 수 없는 말들을 정말 많이 했구나 싶다. (웃음) 그런 말들이 영원히 박제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나는 영화에 많이 나오지 않아 부담이 덜한 편인데 멤버들 각자는 부담이 있을 수도 있겠다.
정윤석_ <논픽션 다이어리> 때는 첫 장편이라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는데 지금은 그냥 개봉하는 게 좋다. 지금 이렇게 다 같이 사진 찍는 것도 좋고. 처음에 시작할 때는 극장에서 ‘김정일 만세’를 보면 재미있겠다는 정도의 가벼운 생각이었는데 무려 6년이 지나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건 주인공들과 함께 그 시간을 보냈다는 기억일 거다. 공교롭게도 30대를 함께 보낸 친구들이고, 좋든 나쁘든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 단락을 잘 마무리 짓는 기분이다. 그거보다 큰 의미는 없다.
=박정근_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을 담은 영화다. (박정근 작가는 북한의 ‘우리민족끼리’를 풍자하는 트위터 멘션을 올렸다가 북한을 찬양, 고무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후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했다.-편집자) 워낙에 서류도 많이 보고 변론도 많이 해야 해서 아마 내가 살아온 시기 중 가장 말 잘하고 글 잘 쓰던 시기로 기억될 것 같다. 지금은 다시 바보로 돌아왔다. (웃음) 한창 영화를 찍을 땐 우리가 말하던 이슈가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는데, 이제는 그게 거짓이라는 게 모두 밝혀진 상황에서 그때 이슈들을 사람들이 많이 기억할 수 있을까 싶다.
권용만_ 밤섬해적단도 지나간 밴드다. 이명박근혜시대의 밴드. 실컷했고 거기에 대해선 더 할 게 없다(다큐멘터리는 ‘밤섬해적단’의 해체를 알리며 마무리된다).
=장성건_ 지난 일을 들추는 영화가 개봉한다고 하니 부모님에게 걱정하는 전화가 자주 온다. 그 밖에는 조금 쑥스러운 정도다. 어쨌든 지나간 일들이니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말들을, 그것도 큰 화면에서 다시 마주한다는 게 기분이 이상할 때가 있다. 일반 개봉을 하면 악플이 많이 달리지 않을까 기대한다.
정윤석_ 악플이라도 많이 달렸으면 좋겠다. (웃음)
-영화에 대해 훨씬 격렬한 반응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개봉 전이라는 걸 감안해도 아직 좀 조용한 것 같다.
단편선_ 태평성대라서 그런 거 아닐까. (웃음)
정윤석_ 편이 없는 영화라서 그런 거 같다. 보통 정치적인 소재의 영화는 적과 아군을 구분하고 정확한 관객을 공략하는 데 반해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태도도 그렇고 선택하지 않을 권리에 대해 지지하니까. 아마 밤섬해적단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비슷할 것 같다.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부끄러움 많은 사람들? (웃음)
권용만_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친숙함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솔직히 꼭 알려져야 하나 싶다가도 (감독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감독 생각하면 흥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
장성건_ 고생했으니까.
정윤석_ 갑자기 2011년 무렵이 생각난다. 당시 밤섬해적단이 인터뷰를 꽤 많이 했는데 인터뷰할 때마다 기자들이 당황했었다. 사실 인터뷰를 할 땐 정답을 요구하는 측면이 있는데 정말 솔직하게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는 친구들이다.
권용만_ 미안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다. 만약 우리가 배우라면 원하는 답을 말할 수도 있을 테지만 우리는 그냥 생활인이니까 그렇게 멋지게 꾸미면 안 될 것 같다. 다시 보면 내가 괴로웠던 순간들의 연대기를 보는 기분이다.
장성건_ 굳이 포장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냥 말을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뭘 할 거다라고 하는 것보다 뭘 하지 않을 거다라고 말하는 게 편하다.
정윤석_ 원래 인터뷰라는 게 그 사람이 들키고 싶은 비밀까지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처음엔 나도 왜 제대로 대답하지 않을까 의아했는데 이 친구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깨달은 게 선택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거였다. 밤섬해적단 노래 중 <똥과 오줌>이란 곡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곡인데, 나만 해도 더 낫다는 변명과 함께 똥과 오줌 중 하나를 꼭 선택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우리 부모님 세대도 그랬고. 정의 내리고 선택을 강요당하는 것에 무감각하게 살아왔다.
-그게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의 전체적인 분위기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다큐멘터리의 전형에서 벗어난 건 물론이고 어떤 영화와도 닮지 않았다. 규정과 틀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정윤석_ 앞서 한물간 밴드, 지나간 이슈라는 말이 나왔지만 부분적으로 동의하되 동의하지 않는 지점도 있다. 밤섬해적단이 북한을 재밌게 가지고 노는 건 충분히 해서 끝났다고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살아 있는 이슈다. 우리는 의외로 북한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다.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거다. 그게 재미있었다. 북한도 그렇고 생활, 삶에 대해서도 그렇다.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제대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 이름을 붙이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잘 모르는 것에 이름을 붙이고 그냥 거기에 따르는 걸 편하게 생각하는 거다. 장르, 틀, 규칙처럼 우리가 맞다고 믿고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대부분 그런 식으로 소화되는 거 같다.
권용만_ 북한에 대해 밤섬해적단이 할 수 있는 건 한번 한 걸로 족하다. 이젠 약발이 떨어졌다. 그걸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때를 되돌아보는 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 다큐멘터리가 내게 개인적인 기억과 나도 몰랐던 내 모습들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지금 필요한 이야기들을 다시 불러오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장성건_ 밤섬해적단 이후 어떤 사회적 이슈를 음악으로 다루고 싶은지 물어보는 분들도 있는데 딱히 없다. 꼭 뭘 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사회적인 이슈를 음악으로 다루는 건 지금은 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 음악도 있고 요즘엔 그런 게 좋다.
박정근_ 그런 의미에서 이건 딱 정윤석 감독의 영화다. 윤석이가 바라본 우리. 우리와 함께한 시간. 그걸 보면서 위로를 받는 사람도 있을테고 무덤덤한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불편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사실 불친절한 영화다. 실험적인 형식도 막 쓰고. 개인적으로 스즈키 세이 준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 영화를 추천할 때마다 하는 말이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경험한다고 생각하고 보라’는 거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드는 순간 하나로 결정되어버리니까 재미도 없어진다. 이 영화는 뭉뚱그려진 덩어리로, 피상적으로 경험하라고 권하고 싶다. 보면 느껴진다. 밤섬해적단이 어떤 친구들인지, 내가 겪어온 사건들이 어떤 체험이었는지. 물론 온전히 내가 겪은 일과는 다른 각자의 경험일 것이다. 그 차이가 의미 있는 거다. 대개 그걸 사건이나 이야기로 바꿔서 전달하려고 하지만 정윤석 감독은 자기만의 언어로 찍은 것 같다. 그래서 더 생생하다고 해야 할까.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을 거다. 참 좋은데 보는 것 말고 설명할 방법이 없다. (웃음)
-기본적으로 사회비판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북한에 대한 공포 마케팅에 익숙해진 사회 전반에 대한 풍자는 물론 제주 강정마을, 뉴타운개발 등의 시위현장에서 공연을 하는 밤섬해적단의 행보를 따라 곳곳의 사회 부조리를 헤집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재미있다.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100분 넘는 시간 동안 한번도 지겹지 않게 관객을 끌고 가는 호흡은 사실 다큐멘터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솔직히 이걸 다큐멘터리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단편선_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다. 내가 가장 좋았던 건 이 영화의 스타일이다. 음악을 소재로 하거나 뮤지션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많지만 이만큼 신나는 영화도 드문 것 같다. 음악, 미술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 만든 티가 난다. 막 예술 하고 싶어! 라는 느낌? 누가 다큐멘터리를 이렇게 만드나? (일동 폭소) 영화를 아예 음악처럼 만들어버렸다.
정윤석_ 오히려 지금 같은 지적은 새롭다. 국가보안법 관련 질문을 거의 하지 않고 재미에 대해 주로 물으셨는데 이런 적이 거의 없었다. 대개는 북한에 대한 우리의 입장 같은 걸 꼭 물으신다. 그걸 묻지 말자고 영화를 만들었는데! (웃음) 처음에 이 친구들을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의 전위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내가 해왔던 작업들과 맞닿아 있는 부분도 있었고. 내가 밤섬해적단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면 제대로 담기겠거니 해서 무작정 오래 곁에 붙어 있었다. (웃음) 돌이켜보면 2010년에 밤섬해적단을 만났다가 찍겠다고 다시 찾아간 건 2011년이다. 2007년부터 기획했던 <논픽션 다이어리>가 투자 문제로 정체된 시기였는데 무거운 소재를 잠시 내려놓고 문득 인물에 집중하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어졌다. 원래 인간에 대한 애정, 관심이 없는 편인데. (주변 일동: “무슨 소리야, 완전 많아요!”) 아니, 아름다운 개인주의자랄까. (웃음) 워낙 마음이 가는 친구들이기도 했고 밤섬해적단의 노래 가사를 봤는데 너무 좋았다. 그 음악을 영상으로 옮겨보고 싶었다는 게 정확한 이유일 거다. ‘김정일 만세’같은 가사를 극장 스크린으로 보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상상. 레드 콤플렉스를 다루는 여러 방식 중 내가 선호하는 건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거다. 가짜 공포를 거두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그런 음악을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만들면 그걸로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는 눈으로 읽을 수 있는 음악이라고 부르고 싶다. 밤섬해적단의 음악을 잘 번역하는 게 영화의 목표이자 태도였다.
단편선_ 번역이라는 기능적인 단어로 감추려하지 마라. 장면마다 꿈틀대는 예술혼이 느껴진다. ‘김정일 만세’가 스크린에 막 내리꽂힐 때 스스로 감탄한 적 없나. 솔직히 저런 타이포그래피 폰트를 누가 저렇게까지 쓰나. (웃음)
정윤석_ 특별한 형식을 일부러 쓴 건 아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 이들을 표현할 적절한 방식들을 조합한 것뿐이다. 가령 전작에는 스릴러를 연상하면서 만들었다면 액션영화의 호흡으로 접근했다. 액션영화 볼 때 스토리의 개연성을 크게 따지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쭉 따라갈 수 있는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콘서트 같을 수도 있고. 주인공들 캐릭터가 확실히 살아 있어서 그것만 확실히 잡아주면 이야기적으로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
장성건_ 확실히 형식적인 부분이 눈에 띈다. 거기에 집착은 하지 않아서 더 좋다. 내가 뱉어놓은 말들을 다시 돌아본다는 건 부끄러운 일인데 그나마 이 영화를 보면서 견딜 수 있는 건 감독이 모아놓은 멘트들이 다 내 진심들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살면서 생각 없이 내뱉는 말도 있고, 하고 나서 뭐라고 떠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말들도 많지 않나. 반면 정확하게 자기 생각을 가지고 말을 할 때도 있는데 신기하게도 정윤석 감독이 선택한 멘트는 전부 내가 머릿속으로 확실히 생각하고 한 말들이었다. 그래서 고맙고 한편으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윤석_ 이번 영화는 감독으로서 해석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받은 느낌이다. 다큐멘터리를 찍을 땐 소재, 대상과의 관계를 철저히 의식할 수밖에 없다. 발언 하나에도 예민하게 고민하는 철저히 을의 입장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번엔 밤섬해적단이 음악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밤섬해적단을 가지고 놀 수 있었다. 밤섬해적단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권용만_ 이건 정윤석 감독의 영화다. 우리는 그냥 재료다.
정윤석_ 감독을 완벽히 신뢰하고 자신을 해석할 수 있게 해준다는 건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다.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정말 좋은 친구들이다. 개인적으론 엔딩 장면을 볼 때마다 울컥한다. 감독이 이러면 안 되는데. (웃음) 이 친구들 못 만났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자주 생각한다. 영화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건 내가 이 친구들을 참 좋아한다는 거다. 영화는 2시간이지만 내 6년간의 경험을 압축한 선택들이지 않나. 그들의 이야기지만 결국 내 이야기가 되었다. 사실 이 친구들은 선택을 유예하는 선택을 해온 친구들이니까 막상 시작은 했는데 드라마적으로 끝맺음을 정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상황이나 인물을 통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고. 그때 정근이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혀 들어가고 밤섬해적단 앨범 자체가 증거 자료로 제출되면서 의도치 않은 사건이 발생한 셈이다. 결국 친구를 위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타의에 의해 선택을 강요받게 되었고 그게 영화의 드라마적으로는 정점이 될 수 있을 거라 봤다. 사실 일본의 반핵 집회도 3번 정도 따라갔는데 박정근의 에피소드가 후반부의 축으로 자리잡으면서 전체의 톤과 맞지 않아서 잘라냈다. 단편선도 분량을 꽤 많이 찍었는데 그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결과적으로는 많이 빠졌다. 그래서 만날 자기 영화 아니라고 하고 다닌다. (웃음)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듬뿍 느껴진다.
정윤석_ 어디까지 찍고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는 항상 화두다. 다큐멘터리의 윤리, 카메라와 대상과의 거리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결국 대상을 보호하는 건 감독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기도 하다. 거기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합의를 깨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라는 입장이다. 주인공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영화였지만 내가 원했던 선택은 사실 해체는 아니었다. 《서울불바다》 앨범을 둘러싼 이야기를 했고, 2집의 타이틀 제목이 엔딩이길 바랐다. 그걸로 뮤지션들의 선택, 성장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무리에 이르러서 이야기가 꼭 영화 안에서 마감될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생각해보면 항상 내가 그 시기에 닮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것 같다. 창작자로서의 내 재능은 성실함 정도라고 생각한다. 30대를 밤섬해적단과 보냈고, 즐거웠고, 그렇게 한 시절이 마감됐다. 40대는 누구와 함께 성장하고 나아갈 것인지 고민 중이다.
-영화가 지나치게 참신하다. (웃음) 너무 재미있고 그냥 보면 딱 느낌이 오는데, 솔직히 기존의 다큐멘터리 분류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각자 이 영화를 소개한다면.
정윤석_ 올여름 최고의 액션영화!
박정근_ 명랑다큐멘터리.
권용만_ 강압적 선택의 기로에 선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그 모든 의미에서 무시무시하다?
장성건_ 이명박시대에 밴드하던 애들의 이야기?
단편선_ 올여름 가장 신비한 다큐멘터리. 아, 이제 여름 아닌가.
권용만_ 욜로(You Only Live Once)하다 골로 간다. (일동 폭소 후 합창 “욜로하다 골로 간다!”)
정윤석_ 아, 나 망한 것 같아.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