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라>(1988)가 8월 31일 국내에서 정식으로 재개봉한다. 말이 재개봉이지 사실상 첫 개봉이나 다름없다. 1991년 수입사가 영화를 재편집해 홍콩영화인 것처럼 속여 개봉했다가 상영 중단된 이후 완전한 판본이 국내 극장가에 걸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토모 가쓰히로 감독의 <아키라>는 사실상 일본의 수많은 애니메이션영화가 서구 관객에게 소개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 첫 번째 영화다. 당대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에서 최대 규모의 제작비와 인력을 쏟아부은 대작 프로젝트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후대에 과연 무엇을 남겼을까. 지난 수십년간 씹고 뜯고 맛봐온 <아키라>가 지닌 매력의 정체를 재개봉을 맞아 다시 되돌아봤다. 사실 이 글은 그 이유를 꼼꼼하게 따져 묻는 글이라기보다 <아키라> 제작 과정 전반을 되짚어보면서 다시 한번 팬심을 고백하는 팬레터라 해도 무방하다.
할리우드는 지난 30여년간 오토모 가쓰히로의 장편애니메이션 <아키라> 실사화에 이상하리만치 집착했다. 1988년 당시 10억엔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 제작비를 들여 완성한 영화 <아키라>는 자국 내에서 7억엔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치며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하고 흥행에 실패했다. 그런데 이듬해 인터내셔널판으로 발간한 원작 만화가 마블 코믹스에 의해 미국에 소개되면서 새로운 활로가 열렸다. 만화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 덕에 1989년 애니메이션 <아키라>가 북미에서 개봉할 수 있었다. 해외 관객으로부터 컬트영화로 추앙받기 시작하자 일본에서도 뒤늦게 재조명했다. <아키라>의 미국 개봉 이전에 ‘재패니메이션’의 실체는 서구인들에게 미지의 영역이나 다름없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2001년, 북미에서 <아키라>가 재개봉하던 시기에 맞춰 워너브러더스는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1999)를 제작한 존 피터스와 <블레이드>(1998)의 스티븐 노링턴 감독을 영입해 <아키라>의 실사화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프로젝트가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7년이 지난 2008년, 스튜디오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아키라> 실사화 제작자로 나선다는 발표와 함께 <피프티 퍼센트 그레이>로 2001년 아카데미 단편영화상 후보에 오른 루아이리 로빈슨 감독을 새 연출자로 확정했다. 스튜디오는 애니메이션의 배경인 도쿄를 뉴욕으로 바꾸고 <블레이드 러너>(1982)와 <시티 오브 갓>(2002)을 적절히 뒤섞은 분위기로 <아키라>를 연출하겠다고 실사화 방향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제작이 또다시 중단됐고 한동안 소문만 무성한 프로젝트로 할리우드 언저리를 유령처럼 떠돌았다. 이후 2015년이 되어서야 <프롬 헬>(2001)을 연출한 휴스 형제, <언노운>(2011)의 하우메 코예트 세라 감독 등이 차례로 연출 후보로 거론되며 다시금 프로젝트 부활설이 제기됐다. 최근에는 저스틴 린 감독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거쳐 <겟 아웃>(2017)의 조던 필레 감독까지 연출 후보로 거론되는 등 실사화의 방향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지만,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할리우드는 아직도 <아키라>에 매료되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새로운 디스토피아를 그리다
애니메이션은 아동용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던 일부 서구 관객은 <아키라>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애니메이션은 동시대에 할리우드에서 등장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와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시리즈, 스티븐 리스버거 감독의 <트론>(1982)과 같은 SF 걸작 영화들과 비교해 그들이 다루는 디스토피아의 풍경, 즉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테크놀로지의 폐해나 국가 시스템의 붕괴에 따른 무정부주의사회 풍경 등을 주제 면에서나 스타일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완성도로 묘사했다. 좀더 정교하게 분류하자면 <아키라>는 기술과 인간의 동등한 융합을 통해 기존 첨단기술이 이룩한 사회체제를 거부하는 식의 서사와 묘사를 강조했던 SF문학의 사조인 사이버펑크 장르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해 서구 관객을 사로잡았다.
1982년 12월, 고단샤가 발행하던 <영매거진> 24호에 처음 연재되기 시작한 오토모 가쓰히로 감독의 원작 만화 <아키라>의 시대 배경은 3차 세계대전 발발로 폐허가 된 이후 재건되기 시작하는 ‘네오도쿄’라는 곳이다. 핵폭탄급의 폭발로 도시의 절반이 날아간 폐허 위에 새로운 테크놀로지 시설이 연일 들어서고 있는 곳. 밤마다 섹스와 폭력, 마약으로 얼룩진 10대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광란의 질주를 하며 도시를 방황한다. 네오도쿄의 공권력을 장악한 군대는 비밀 생체실험 프로젝트를 민간에 숨기기 급급하다. 프로젝트의 희생양으로 초인적 능력을 갖게 된 아이들이 방황하는 10대 청소년들과 마주치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오토모 감독은 정부가 올림픽 개최라는 거대한 국가 사업을 1년여 앞두고 온 신경이 곤두선 상태라는 설정을 심어놓는데, 원작 만화에서는 국민의 복지증진 따위는 깡그리 무시한 채 어떻게 하면 타락한 도시 국가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를 두고 탁상공론에 빠져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공들여 묘사한다. 2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단행본 6권 분량의 전체 이야기를 2시간 분량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 삭제되긴 했지만 만화판 <아키라>의 배경에서 감독은 주인공 10대 소년 카네다와 테츠오가 초인적인 힘을 지닌 존재 ‘아키라’와 조우하면서 지구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다는 영웅 서사보다 국가 시스템이 붕괴되는 무정부주의적 디스토피아의 풍경을 더욱 강조한다. 영화화 버전으로 각색하면서 중점적으로 내세웠던 방향 역시 오토모 감독의 말처럼 “특정한 주인공 없이 네오도쿄 자체의 어수선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 한명의 주인공이 세계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가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는 모습”이었다. 일본이 패전 후 고도 경제성장을 목표로 내달리면서 1964년 도쿄올림픽을 유치하던 시기에 유년 시절을 보냈던 오토모 감독에게 과학과 미래에 관한 판타지는 작가로서 <아키라>를 구상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했다. 실제 <아키라>의 배경에서 올림픽 개최 경기장이 주요 배경으로 활용되는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오토모 감독이 평생 존경해 마지않는 일본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세계 역시 이런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SF장르를 기반으로 작업해왔다. 당시 일본이 문화사적으로 갖고 있던 에너지가 마치 만화 속 초인 캐릭터 아키라처럼 오토모 감독의 가슴에서 불타고 있었던 시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키라>에 참여했던 많은 애니메이터들은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이끄는 감독으로 성장했다. 애니메이션 감독을 맡았던 나카무라 다카시는 <파름의 나무>(2001)를 연출했고, 스튜디오 4도씨의 공동 창립자이기도 한 모리모토 고지는 <메모리즈-그녀의 추억>(1995), <애니 매트릭스-비욘드>(2003) 등을 만들었다. 오키우라 히로유키는 <인랑>(1999)과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2012)을 연출하는 감독으로 성장했고 기타쿠보 히로유키는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2000)를, 우메쓰 야스오미는 폭력과 섹스에 관한 문제작 <카이트>(1998)를 연출했다.
완벽을 추구한 작업 방식
운명이었던 걸까, 한창 인기리에 연재되던 <아키라>는 일본영화계가 처한 현실 앞에서 또 한번 변화의 물살을 맞는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일본영화계가 안정적인 성공을 보장하는 흥행 만화에서 영화의 소재를 찾기 시작하면서 <아키라>는 제작 1순위에 올랐다. 1980년대에 비디오가 보급되자 극장 관객이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영화계로서는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어린이용 만화 제작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시기에 <아키라>는 당대 최고 수준인 10억엔을 제작비로 유치했다. 그리고 제작자의 별다른 간섭 없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제작비를 마음껏 쏟아부었다. <아키라>의 영화화는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제작 노하우를 쌓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당시로서는 애니메이션 한편에 들이는 노력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던 15만장에 달하는 원화를 그리려고 수많은 애니메이터가 동원됐다. 그들은 완벽주의에 가까운 오토모 가쓰히로 감독의 지휘를 받으며 밤낮없이 일했다. 오토모 감독이 영화화를 위해 혼자 그려낸 콘티는 무려 78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었다. 모든 컷을 70mm 필름 크기에 맞춰 그렸고 쓰인 색깔 수만 327색에 달했다. 애니메이터들은 매 장면 기본 5단계의 채색 단계를 거쳤으며 비싼 제작비 때문에 쓰지 않았던 프레스코 방식, 즉 대사를 먼저 녹음하고 목소리에 맞춰 작화를 그리는 매우 복잡한 방식을 도입했다. 그 덕분에 그림의 입 모양이 대사와 정확한 싱크를 이뤘다. 필름 촬영을 일일이 하지 않아도 컴퓨터를 통해 완성된 작화를 그리는 즉시 대사가 맞는지 체크할 수 있는 기기도 도입했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이었던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은 업계의 훌륭한 유산으로 남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흥행 성적은 저조했다. 북미를 비롯한 해외 관객의 뜨거운 반응 덕분에 <아키라>는 개봉 이후 시간이 한참 지나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었다.
모든 창작자를 사로잡은 이야기
오토모 감독이 <아키라>에 담아낸 주제와 제작 방식은 실은 같은 방향의 고민에 따른 결과다. 그가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SF의 설정을 그린 이유는 천편일률적으로 양산되던 몇몇 인기 만화의 흐름에 반기를 들고자 선택한 것이었다. 자본의 힘을 업고 과감하게 도입했던 최첨단 제작 방식도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려 했던 애니메이터로서의 태도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오토모 감독은 “무언가를 그리고 싶었다기보다 내 개인적인 여러 생각이 담겨 있는 영화다. 예를 들면 밤 장면을 그릴 때 당연히 블루톤으로 그려야 할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에서 오렌지톤 컬러를 써보는 것, 이것이 <아키라>를 통해 그려보고 싶었던 내 생각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아마도 <아키라>라는 도전이 없었다면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신세기 에반게리온> 시리즈,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1995), 린타로 감독의 <메트로폴리스>(2001)와 같은 새로운 시도 역시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할리우드는 어떤가. 항상 <아키라>를 영감의 원천으로 꼽는 제임스 카메론, 워쇼스키 자매를 비롯해 지금까지도 수많은 SF영화들이 <아키라>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초월적인 힘을 지닌 10대들의 방황을 묘사하는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2010)와 조시 트랭크 감독의 <크로니클>(2012) 혹은 초인적 능력을 지닌 소년의 로드무비인 제프 니콜스 감독의 <미드나잇 스페셜>(2016) 등은 <아키라>의 후예임을 노골적으로 밝히는 영화들이다. 암흑의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시간여행 킬러가 주인공인 SF영화 <루퍼>(2012)의 라이언 존슨 감독은 “내 영화에 범위를 매긴다면 그건 <터미네이터>에서 <아키라>까지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앞으로도 또 어떤 감독이 초인적 존재에 관한 혹은 사이버펑크 장르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면 <아키라>를 성서처럼 옆에 두고 보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최근 가장 뚜렷하게 <아키라>의 흔적을 흩뿌리고 있는 작품은 1980년대 서브컬처 요소를 대거 차용해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일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실험체 일레븐(밀리 바비 브라운)은 캐릭터 자체가 <아키라>의 오마주다. <아키라>의 북미 개봉에 큰 힘을 썼다고 알려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자신의 신작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예고편에 <아키라>의 카네다 바이크를 공공연히 등장시켰다. 이 영화는 1980년대 대중문화 요소를 뿌리 삼아 만들어지는 작품인 만큼 <아키라>가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여기 언급한 모든 작품이 <아키라>와 주제의식을 공유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프랑스의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이 20세기 만화 역사에 <아키라>가 남긴 족적을 기리며 지난 42회 최우수상을 수여한 이유 역시 인간의 미래 혹은 과학의 도전과 같은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담아냈고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그것이 무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할리우드의 <아키라> 실사화가 언제 이뤄질지는 알 수 없지만 성사 여부를 떠나 앞으로도 수많은 SF만화와 영화 역사에서 <아키라>의 흔적은 뚜렷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