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은 이상호 기자가 찍은 두 번째 다큐멘터리다. 굳이 ‘기자’라고 한 것은 이상호 감독이 지향하는 바가 어디까지나 탐사 보도에 가깝기 때문이다. 1인 미디어는 물론 영화를 찍을 때도 그의 정체성은 당연히 기자다. 그래서 이상호 기자가 할 만한 탐사, 보도, 고발 다큐멘터리를 예상하고 <김광석>을 본 관객이라면 다소 당황할 수도 있다. 영화는 예상보다 훨씬 내밀하게 개인적인 기억과 체험을 따라간다. 김광석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파고드는 부분만큼 기자 이상호와 가수 김광석의 관계를 더듬는, 일종의 사적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두 번째 영화 만에 기자 이상호는 감독 이상호라는 또 다른 자의식에 눈뜬 것 같다. 그럼에도 이 다큐멘터리는 김광석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잊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변화를 촉구하는 쐐기가 되려 한다. 관객과의 만남을 위해 지방으로 내려가기 직전 이상호 감독을 만났다. 그는 개봉을 앞둔 지금도 여전히 김광석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으며 취재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상호 감독에게 김광석의 자살은 후일담이 아니다. 현재진행형의 사건이자 의혹 속에 묻힌 수많은 의문사들에 대한 문제제기다.
-두 번째 다큐멘터리다. 김광석을 스크린에 다시 불러오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광석의 죽음을 취재하기 시작한 게 어느덧 21년이다. MBC 취재기자로 으레 갔던 현장 중 하나였는데 그가 자살로 처리되는 과정에 의문을 품었다. 기자로 경험을 쌓는다는 건 그렇게 의혹을 가진 사건들이 수첩에 쌓여가는 일이라 봐도 된다. 당시엔 소송 등의 문제로 여러차례 좌절을 겼었다. 하지만 자료는 꾸준히 모아왔다. 탐사 취재라는 게 원래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것도 이렇게 예민한 죽음에 대한 문제는 몇년이 지난 후에야 제보가 시작되기도 한다. 사실 김광석 추모 20주년인 지난해에 공개하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올해 개봉하게 됐다.
-대부분의 사건은 의혹이 있다고 해도 타이밍을 놓치면 묻어두기 십상인데 김광석의 죽음은 무엇이 달랐나.
=취재를 막 배우기 시작할 무렵 알게 된 어린 소녀의 변사사건이 기억난다. 의혹이 가득한데 단순 자살로 마무리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검안을 하는 의사가 정밀하게 접근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그 무렵 김광석을 만났다. 변사자 수는 갈수록 늘어서 지금은 한해에 3만명 정도다. 변사라는 게 죽음의 원인이 불분명한 건데, 자살로 처리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최근에도 자살 당했다고 주장하는 국정원 마티스 사건이 있었고. 그런 사례 하나하나가 지구의 무게만큼 중요한데 우리는 그런 죽음에 무관심하다. 전국적으로 검안의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묻히고 잊히는 죽음들이 매일 수십건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김광석의 노래가 들려왔고 그 일이 계속 말을 거는 것 같아 묻어둘 수가 없었다. 나 역시 시대를 대변하는 노래를 통해 그에게 빚을 진 사람 중 하나다. 기자로서 할 수 있는 몫이 사실을 밝히는 거라면 그걸 꼭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왔다.
-김광석 죽음의 의혹을 파헤치는 지점이 있지만 영화의 절반 가까이는 이상호 기자 본인의 취재 경험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거의 사적 다큐멘터리라고 봐도 무방한데.
=<다이빙벨>(2014)을 만들고 난 뒤 생각이 많았다. 시의성과 속도가 중요한 사안이라 급하게 개봉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있었다. 거칠게 접근한 것 같기도 했고. 나는 적어도 극장에 돈을 내고 오는 사람들에게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메시지나 의미가 중요하지만 보는 즐거움도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어렵지 않게 잘 보여야 한다. 취재의 결과만큼 과정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과정에서만 알 수 있는 1인치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두 번째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자주 했다.
-‘김광석을 취재하는 나’의 모습이 자주 비치는 만큼 취재원과 관계에 대한 감상들이 다수 언급된다. 그게 음악을 중심으로 녹아 있다는 게 흥미롭다.
=허진호 감독님 등 주변에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분들에게 배우고 조언을 얻기도 했다. 많은 분들이 ‘네가 이걸 왜 이렇게 취재하려고 하는지 궁금하다’고 되물었다. ‘너에게 김광석이 어떤 의미인지 감출 필요가 없고, 그걸 스스로 검열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사실 그게 가장 잘 안 되는 부분이다. 탐사 보도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김광석>은 20년 동안 이어져온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가 핵심 중 하나다. 솔직해지려고 최대한 노력했고 영화적인 연출도 나름 시도했다. 처음 구상할 땐 <원스> 같은 음악영화를 염두에 뒀다. 김광석의 노래들을 이어듣다 보면 곧 그게 그의 삶이자 그가 전하는 말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시도는 했으되 현실적인 한계를 절감했다. 결과적으로는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와 음악영화, 사적 다큐멘터리 등이 섞여 있는 것 같다.
-<먼지가 되어> <사랑했지만> <서른 즈음에> 등 김광석 노래를 적재적소에 넣었는데.
=훨씬 더 영화적으로 가고 싶었고 음악영화의 외피를 제대로 두르고 싶었지만 거기까진 못한 것 같다. 크고 작은 이유가 있지만 정말 쓰고 싶은 노래들을 쓰지 못한 게 아쉽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나 <일어나>가 정말 중요한 노래인데 김광석의 부인이 저작권을 가지고 있어 사용이 불가능했다. 어쨌든 김광석의 노래가 김광석의 부재를 훨씬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봤다. 가령 <나의 노래>로 창신동 언덕을 표현한 건 그런 의도에서 연출된 장면이다. 언론에는 대구의 김광석 거리가 자주 부각되지만 거기는 5살 때 떠난 곳이고 실제로 김광석의 음악이 태어나고 묻어 있는 곳은 창신동이라고 생각한다.
-물에 젖은 취재노트들을 하나씩 던지는 오프닝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김광석의 일기를 읽으며 걸어가는 장면은 누가 봐도 영화처럼 연출된 장면들이다.
=편집에만 1년이 넘게 걸렸다. 수해를 입어 취재자료들이 날아간 것은 취재과정에서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을 보여주고 싶어 오프닝으로 결정했다. 지워져가는 기억이라는 수사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스트레이트하고 건조하게 찍은 장면이 아니라 개인적인 감성이 들어갔다는 의미에서 보면 영화적일 수도 있겠다. 운동장 장면도 마찬가지다. 여러 각도에서 촬영했는데 그중 우연히 운동장의 소녀와 내가 다른 방향으로 엇갈려 지나가는 장면을 발견했고, 그게 당시 일기에 쓰인 김광석의 심정과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사용했다.
-김광석의 노래에 이상호의 기억을 얹어 따라가는 만큼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반면 타살을 증명하는 팩트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원래 사적인 관계나 인상들이 더 기억에 남기도 하고, 죽음에 얽힌 팩트들은 이야기 속에 다 녹여놓아서 도드라져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목에 줄이 감긴 상흔에 대한 부분이나 혈중 알코올 농도에 대한 부분들을 지적하는데 일부러 자극적으로 부각시키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증거들이 실은 취재하고 추론해내는 데 몇년씩 걸리는 자료들이다. 82분 전편에 쭉 흐트러져 있어서 팩트가 부족해 보일 수는 있지만 영화가 제시하는 의혹들 하나하나가 따로 기사화해도 좋을 만큼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찬찬히 여러 번 보면 저래서 자살이 아니고 타살이구나 하는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은 김광석 죽음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 영화로 자살이 아닌 건 분명해졌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제 수사가 필요한데 공소시효가 걸려 있다. 일부 완화되었지만 99년 이전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살인사건 중 재수사에 착수할 만한 단서가 발견되어 진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을 때 해당 사건에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소위 ‘김광석법’에 대한 온·오프라인의 서명을 받고 있다. 김광석 한 사람을 위한 법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법이다. 죽은 사람의 인권은 산 사람 인권의 바로미터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우리가 대신 주목하고 이야기해줘야 한다. 그게 굳이 지금 다시 김광석의 이름과 노래를 불러야 하는 진정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