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작가, "세대간의 적의... 이 영화가 소구력을 갖는다면 바로 그 부분일 것이다"
2017-09-06
글 : 이화정| 사진 : 손홍주|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작가, "세대간의 적의... 이 영화가 소구력을 갖는다면 바로 그 부분일 것이다"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의 김영하 작가는 요즘 행사, 강연, 방송, CF 섭외 영순위다. 자신을 향한 갑작스러운 관심을 그는 우디 앨런 영화에 빗댄다. “딱 <로마 위드 러브>(2012)에서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유명인이 된 로베르토 베니니가 된 기분이다.” 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알아보고 선물도 주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그래서 요즘 그는 나름대로 변장술을 쓴다고 한다. “안경 벗고 등산 모자 큰 거 쓰고 다닌다. (웃음)” 방송은 끝났지만 이번엔 <살인자의 기억법>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까지 개봉하면서 김영하 작가의 ‘바깥 활동’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지지난해 겨울, 산문집 <보다> <읽다> <말하다>의 출간을 계기로 만남을 청했으니 근 2년 만에 성사된 인터뷰다. 부산 생활을 접고 서울 연희동에 터를 잡았던 그때 그가 ‘개나리언덕’의 신축빌라 결정에 반대하는 ‘주민 투쟁’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면, 이제 그는 동네의 작은 책방을 다니며 여는 소소한 이벤트로 또 한번 ‘작가로서 할 일’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그가 자주 찾는다는 연희동 한 카페에서 김영하 작가를 만났다.



-‘방송으로 알려진’ 작가 김영하의 대중적 인지도가 ‘작가 김영하’와 비교가 안 될 정도다. 최근 행사 섭외 요청 영순위라는 점이나 높은 신간 판매 부수(5월 25일에 출간한 <오직 두 사람>은 출간 세달이 채 안 된 지금까지 무려 13쇄를 찍었다)가 인기를 실감케 한다.



=<오직 두 사람>이 5월에 나왔는데 방송이 6월 초에 시작했다. 방송 전에도 판매 순위는 높았는데 방송을 하니 1위 하는 기간이 길어지더라. 꽤 오래갔다. TV의 힘이 그만큼 크더라. 마침 <살인자의 기억법>이 개봉하면서 다시 순위권에 진입하고. 이렇게 아귀가 맞으니 사람들이 내가 큰 그림을 그리고 활동했다며 ‘빅 픽처’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알쓸신잡> 나머지 출연자들은 그 무렵에 신간이 없었다. (웃음) 나도 우연인 것이 앞뒤로 무라카미 하루키, 김애란 작가의 신간 출간에 대선까지 겹쳐 있어 출판사로서는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알쓸신잡>은 시즌2로 ‘해외편’을 기다리게 만드는데, 일전에 만났을 때 방송은 이제 그만하겠다며 손사래를 쳤던 게 기억난다. 작가로서 방송 출연과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데서 오는 불편함도 있었을 것 같은데, 프로그램 내부에서 경험한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의 메커니즘은 어떤 것이었나.



=관심이 불편하긴 하지만 불쾌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방송은 이 정도면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 든다.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비싼 거고 소중한 거다. 리얼리티 예능 프로의 세계는 카프카적 세계 같다. 촬영장에 가면 ‘거치팀’이 있다. 말 그대로 카메라를 눈에 잘 띄지 않게 거치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차에도 화장실에도 촬영장 안팎에도 어디든 카메라를 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카메라가 배치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가운데 열심히 움직인다. ‘어떻게 나올 것 같으냐’고 물어보면 나영석 PD도 ‘잘 모르겠다, 테이프를 봐야 안다’고 한다. (웃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응수다. 작가도 과학자도 대부분 어느 정도 결과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작업하지 않나. 수십대의 카메라가 일주일간 찍은 분량만 수백 시간에 해당한다. 담당자가 보고, 올리고, 보고, 올리고. 그렇게 추린 걸 메인 PD가 본다. 올리지 않은 것은 영원히 못 보는 거다. 그 와중에도 방송은 계속 진행되고, 1회가 방송되면 시청자 반응 나오고 그걸 반영해 2회가 나온다. 카프카의 성처럼 그 세계에 있지만 그것이 어떤 세계인지 모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화장실까지 따라오는 카메라의 관찰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방에 카메라가 있다는 점에서는 조지 오웰적 빅 브러더스의 개념도 있더라. 남의 일상을 아주 깊숙한 데까지 들어가 보는데, 보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그에 대한 거부감이 점점 옅어진다. 나영석 PD가 오래전에 했던 TV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2일>에서 연예인 방에 카메라를 설치할 때 이 정도까지 봐도 되나 하는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 연극이나 일본의 가부키 공연 등에서 무대에 오른 연기자는 준비된 모습만을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자다가 막 일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잠꼬대하는 모습까지 찍으니 충격인 거다. 그때 시청률이 상승했다. 지금은 아이유 자는 방에도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디바가 자는 방인데 말이다. 설계부터 편집까지, 내가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는 소설과 달리 그 반대 극단에 있는 게 리얼리티 예능의 세계더라.



-박학다식한 데다 유머를 겸비한 호감형의 캐릭터를 구축했다. 인기가 올라갈 수 밖에 없다.



=리얼리티 예능의 세계에서는 누구라도 재밌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대본도 없고, 어떻게 편집되어 나올지도 모른다. 제작진이 단걸 권할 때 ‘안 먹어요, 작가는 헝그리해야 돼요’ 하고 말하는 장면과 그로부터 두시간 후에 내가 열심히 짬뽕 먹는 장면, 이렇게 두 장면을 붙여 편집하면 나는 엄청 웃긴 사람이 되는 거다. 나영석 PD 예능 프로의 특징이 즐겁고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편집하는 것이니 재밌는 사람쪽으로 굳어지는 거다. 괴벨스식으로 말하면 ‘너를 국가의 반역자로 만들 수’ 있는 거다. 그런데 방송으로 나를 알게 된 사람이 이번에 처음 내 소설을 사서 읽었는데 그게 <오직 두 사람>이나 <살인자의 기억법>이면 갑자기 혼란이 오는 거다. <오직 두 사람>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오직 두 사람>은 가족이 두 사람으로 제한적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고, 두 번째 에피소드인 <아이를 찾습니다>는 잘못으로 비극에 처한 가족의 파국을 그린다. 한국 사회가 가진 단란한 가족주의가 아니라 그 환상을 깨는 소설이니 불편한 거다. 방송에서는 그렇게 재밌고 밝은 사람이 이렇게 어둡고 지독한 세계를 그리는구나 이렇게 인식하게 된다. 이를테면 박찬욱 감독처럼 그의 작품을 먼저 보고 어느 정도 그의 캐릭터를 아는 상태에서 게임 광고를 하더라도 어둡고 무게감 있는 광고를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라지는 거다.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상적인 면모’로 소비된 작가 김영하가 있다면 <옥수수와 나> <슈트> <아이를 찾습니다> <신의 장난> <오직 두 사람> 등 7편의 중·단편을 묶은 신간 <오직 두 사람>에는 작가 김영하가 지난 7년간 이 사회에서 살아가며 겪은 사고의 변화가 담겨 있다.



=7년 동안 쓴 소설을 묶은 작품이고, 그래서 그동안 겪은 여러 일이 소설에 반영된 면이 있다. 게다가 이 작품을 묶어서 내려고 준비하는 기간 동안 우리 모두가 아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격변이 있었다. 시기적으로 7편 중 중간에 쓴 <아이를 찾습니다>는 구상하고 서두를 써두었다가 세월호 이후에 본격적으로 썼고 그때의 심정이 반영되었다. 전반부에 쓴 작품과 달리 2014년 기점으로 ‘그 후’의 내 소설도 그래서 어둡고 암울하다. 일부의 사람들이 국가를 조정해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걸 봤고, 세월호 유족 앞에서 피자를 먹는 악마 같은 모습도 보게 됐다. 물론 촛불시위 국면에서 희망도 많이 봤다. 각종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와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그걸 직접 듣고 반응하는 장이 열렸다. 인터넷의 댓글들만 보면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다. 이렇게 직접 모이는 건 굉장히 중요한 거였구나 싶었다. 그런 힘이 앞으로 문화예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살인자의 기억법>은 2013년 출간한 작품이다. 원신연 감독이 연출한 영화가 개봉하면서 원작자로서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을 텐데, 소설을 집필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벌써 4년이 된 작품이다. 뉴욕에 살 때였는데 연극을 많이 보러 다녔다. 오프브로드웨이 작품 중에 티켓이 싼 작품이 많다. 그런데 내 영어 리스닝 실력 때문에 스토리의 3분의 1 정도는 잘못 이해했다. 작품 보고 나와서 이야기하다 보니 나는 처남으로 알았는데 아내는 친구라고 하더라. 아내 말이 100% 맞았다. ‘작가는 그렇게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잘못 이해하려고 하는 동안 창작과 관련된 뇌가 활성화된다’며 궤변을 늘어놓았다. (웃음) 연극의 스토리를 따라가다가 그렇게 어느 순간 포기하는 때가 오면 혼자 앉아서 나대로 의견을 전개했다. 당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노인이 작곡을 하는, 기억에 관한 연극을 봤는데 이걸 살인자 이야기로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 생활을 접고 부산에 와 살 때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70대 노인 연쇄살인범 김병수. 그 연쇄살인범이 시를 쓰고 <반야심경>과 니체를 읽는 순간 예측이 어려운, 장르에서 벗어난 이야기로 귀결된다. 결말의 반전을 떠나, 모든 요소가 기대를 깨고 벗어나는 묘미가 있는 소설이다.



=출판사에서 ‘뭐 쓰고 계세요’라고 묻기에 70대 노인 나오는 거 쓴다고 하니 40대로 낮추라고 하더라. (웃음) 알츠하이머병도 안 된다고 하더라. 이 소설의 모든 설정이 ‘시장성’으로 보면 안 된다였다. (웃음)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내 작품 중 제일 많이 팔린 소설이 됐다. 사실 아이디어는 있어도 완성하려면 적절한 문제와 캐릭터가 붙어야 한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한두 페이지 썼을 때 ‘되겠다’ 생각했다. 이 사람이 문화센터 가서 시를 배우면서 시의 메타포를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실제 살인자들의 세계에서는 문학의 메타포에는 관심이 없다. 김병수가 읽는 책 <반야심경>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옆에 쌓아 놓고 같이 읽으면서 소설을 썼다. 그간 지능형 살인범은 많았지만 이 사람이 문학이라는 매우 나약한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내가 이야기를 전개할 때도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김병수가 일인칭으로, 서서히 소멸해가는 기억을 붙잡아두려 한다. 불현듯 떠올랐다 끊어지는 기억, 빠른 스토리 전개 등 김병수의 사고가 소설의 문체나 구성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원래 기억에 관심이 많다. 늘 하던 이야기지만 10살 때 연탄가스를 마신 뒤 그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이후 내 작품 세계에 영향을 준 것 같다. <검은꽃>도 멕시코 농장으로 팔려가 잊힌 조선인들의 이야기고 <빛의 제국>도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보냈지만 북한에서 잊힌 스파이의 이야기다. 어릴 때 아버지가 군인이었던 터라 광주에서 진해, 양평에서 충주로 학교를 대여섯곳 옮겨 다녔다. 이사를 가면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한다. 하다못해 딱지치기 하는 법도 지방마다 다 다르다. 예전에 배운 건 잊어버려야 하고, 잊히고 그런 것들이 나에겐 아주 많았다. 그래서 기억에 관한 소재가 떠오르면 재밌고, 그걸 가지고 뭐든 써보고 싶어진다.



-사고로 기억을 잃어 살인을 할 수 없게 됐지만 그는 30년간 꾸준히 살인을 해온, 소위 살인 분야의 전문가다. 그는 “시 말고도 남에게 배울 수 있는 게 있다”며 살인을 자신이 가진 ‘기술’로 정의하고, “세상의 모든 전문가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말할 때까지 전문가로 보였다”라며 전문 영역에 대해 정의한다. 그간 묻어 두었던 기술을 다시 꺼내, 젊은 연쇄살인범 박주태(영화에서는 박태주)를 죽이려는 목표에는, 딸을 지키려는 부성을 넘어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자신의 영역에 위협을 느끼는 공포심이 깔려 있다.



=이 살인자의 원형이 있다. 바로 오이디푸스다. 그는 한때 살인을 했지만 그 사실을 잊고, 테베의 왕으로 선정을 베풀면서 살아간다. 오이디푸스가 정치에 능했다면 김병수는 살인에 능했다. 둘 다 한 분야에서 능력을 보이다가 늙어가는 전문가다. 젊은 세대를 상정하고 적의를 드러낸다. 소설에 세대간의 적의가 숨어 있다면 영화에는 이 관계가 더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이 영화가 소구력을 갖는다면 바로 그 부분일 것이다. 연쇄살인범을 소재로 한 영화도 많고, 기억을 잃은 사람의 이야기도 많다. 영화 속 박태주(김남길)를 대하는 김병수(설경구)의 태도를 보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세대간의 적의와 공포, 두려움, 부러움이 복합적으로 보인다.



-영화화 판권 경쟁이 치열한 작품이었다. 막상 김병수의 망상 속 이야기라는 점에서 <살인자의 기억법>은 영화화할 때 그림이 잘 떠오르지 않는 어려운 원작이기도 하다.



=무슨 착각이 있다고 생각한다. (웃음) 내 소설은 잘 읽힌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긴장, 그 사이의 예기치 못한 충돌이 있어서 읽으면서 재밌다고 느껴지고 보게 된다. 끊지 않고 읽을 수 있다. 한편의 영화를 두시간 남짓한 시간에 볼 수 있는 경험에 비추어볼 때, 그래서 내 소설이 영화적일 거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난 소설을 쓸 때 장르적인 걸 가지고 와서 쓰는 걸 좋아한다. 스파이물, 스릴러물을 가지고 와서 거기에 있는 규칙을 다르게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다시 영화로 가져가면 ‘아, 스파이 소설이었지’ 이렇게 해석이 된다. <검은꽃>도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전형적인 역사극이 됐을 거다.



-영화를 연출한 원신연 감독은 장르적 문법 안에서 나름의 해결책을 강구한다. 김병수에게 뚜렷한 적대자가 생겼다.



=나도 예전에 내 소설을 영화화하려고 각색하면서 느꼈는데, 소설은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갈등이 중요하다. 딱히 클라이맥스가 없어도 전개가 가능하다. 오디세우스가 모험을 겪기만 해도 사람들이 그 모험을 같이 겪으면서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강력한 클라이맥스 없이도 즐길 수 있는데, 영화는 그게 없으면 힘들다. 전수일 감독이 2003년에 영화화 했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보면 앞서 말한 그런 지점이 없다. 그런데 영화로 만들려면 그런 지점을 넣어야 한다. <빛의 제국>을 연극으로 만들 때도 비극에만 중점을 두니 낭독 연극 비슷해졌다. 이번 <살인자의 기억법>도 김병수라는 사람이 나와서 이야기하는, 혼자만의 독백일 수 있었는데 그걸 명확히 해결하고 갔다. 소설과 달라졌지만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자기 자신이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 기억상실이 모든 걸 무화할 때 윤리적 기준은 어디에 있는지에 집중한다면 영화는 아까 말했듯이, 두 세대간의 갈등에 보다 더 집중한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원작자인 줄리언 반스가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 리테시 바트라 감독에게 “날 배신해봐라”라고 했다고 한다. 원작자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꺼리는 걸로 알고 있다.



=시나리오가 오긴 왔는데 의견을 주지는 않았다. 잘 봤다, 잘하시라고 했다. 난 그런 상상력이 없는 거 같다. 1990년대 후반에 작가니까 시나리오 좀 봐달라고 해서 본 적이 있다. 두 남녀가 영화 내내 만나지도 않고 PC통신 아이디로 대화를 나누고 그랬다. 이게 뭐냐, 외국이냐 말도 안 된다 했는데, 그 영화가 <접속>(1997)이었다. (웃음) 그러니 나는 글만 보고 어떤 영화가 될지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주문이 하나도 없다. 잘 알아서 하겠거니. 내 소설의 어떤 부분을 잘 간직하길 바랐으면, 계약서 조항에 고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니 어떤 형태로든 개입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몇편의 작품을 하면서 감독이나 제작자들이, 영화의 언어를 모르는 원작자가 조율할까봐 개입하는 걸 두려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안 하게 됐는데, 그러다보니 원작과 아주 멀리 갈 때도 있다. 난 내 책의 번역도 마찬가지지만 번역이 잘되기를, 운이 좋아서 오역이라도 잘되기를 바란다. (웃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그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전수일 감독을 통해 동명의 영화로, <거울에 대한 명상> <사진관 살인 사건>이 변혁 감독의 <주홍글씨>(2004)로, 또 <비상구>가 옴니버스영화 <숏! 숏! 숏! 2013>(2013) 중 한편인 이상우 감독의 <비상구>로 만들어졌다. ‘원작보다 멀리 간다’고 했는데, 본인의 소설이 영화화될 경우 대체로 원작의 묘사보다 훨씬 더 적나라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영화는 대체로 소설보다 적나라하다. 예를 들어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트렁크에서 노루의 피가 배어나왔다’고 할 때, 문장으로 쓸 때는 그렇게 세밀하게 상상하지는 않았다. 진짜 피를 생각지 않는다. 그건 추상적인 거다. 영화는 그게 직접 보여지기도 하고 더한 장면들도 표현된다. 뭐라고 할까. 내가 꾼 꿈이 있는데, 그걸 ‘이거였지’ 하고 보여준다는 기분이 든다. 그런 면에서 원작자가 자기 작품을 영화로 볼 때 이상한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영화의 표현 수위가 대체로 너무 높다는 생각은 든다. <나르코스>나 <소프라노스> 같은 미국 드라마의 잔인한 장면들은 잘 보는데, 이상하게 한국영화의 잔인함은 잘 못 견딘다. 이렇게 말하면 오해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일부 한국영화에서 폭력이나 신체 훼손을 다루는 방식이 좀 불편하다는 얘기다. 비극처럼 그리지만 비극은 그렇게 잔혹하게 다룰 필요가 없다. 비극은 훨씬 더 우아한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건 몰라도, 원작자 크레딧을 넣는 조건은 고수한다고 말했었다.



=<주홍글씨> 크레딧에 내 이름이 제대로 안 나온다. 코닥 마크 나오기 전에 나오는데, 그땐 진짜 시사회에도 안 불러줘서 동네 극장 가서 봤다. 자막 확인하려고 청소하는 분이 발 들라고 할 때까지 계속 앉아 있었다. (웃음) 그래서 지금은 계약서에 다 넣는다. 감독 이름 앞 혹은 뒤에, 폰트 사이즈도 확인하고, 이번엔 잘 나왔다.




-지지난해 인터뷰 때 연희동 개나리언덕 투쟁에 앞장섰고, 지금은 작은 책방의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연희동에 살다 보니 작은 서점이 많이 보이더라. 유어 마인드, 연희책방, 밤의 서점 등. 작은 서점에 가면 언제나 독서모임 공지가 붙어 있어 자유롭게 읽고 와서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들한테 ‘이 서점 뭐가 좋아요’ 하면 서점 주인들과 사소한 이야기 나누고 추천받고 이런 것들을 장점으로 꼽는다. 스몰 토크가 사람을 명량하게 한다고 하지 않나. ‘밤의 서점’에는 서점 주인이 선택한 ‘블라인드 패키지’를 판매하는데 서점 주인만 믿고 사간다. 소설들이 살아가는 어떤 생태계가 있고 그것이 유지되려면 지역의 동네 서점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뉴욕 살 때 브루클린에 가면 신인 작가들과 만나는 공간이 많았다. 이런 아날로그적 접근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거다. 작가 역시 독자가 있다는 걸 실감하는 게 활동하는 데 중요하다. 인터넷만 보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열심히 쓴 책에 ‘배송 느려서 별 하나’ 이런 댓글 보면 힘이 빠진다. 신진 작가들이 독자와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사인도 하면서 독자를 실감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 책의 장소성이라는 문제에서도 중요하다. 영화도 예전에는 어느 작품은 피카디리, 단성사에서 봤는지 기억했는데 지금은 그런 기억이 없다. 시작은 내가 했지만 다른 작가들도 많이 할 것 같다.



-뉴욕에서 연극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면, 최근 가장 영향을 받고 관심을 가지는 것은 무엇인가.



=최근 가장 시간을 많이 들여서 보는 것이 TV시리즈물이다. 영상 문화의 중심이 이제 시리즈물로 많이 기운 것 같다. <비밀의 숲>도 잘 봤고 미국 드라마는 <왕좌의 게임> <나르코스> <오렌지 이즈 뉴 블랙> 등 챙겨 보는 것들이 많다. 미국 드라마가 다루는 시대는 긴 기간 동안 발전시키는 서사시의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미드가 구축하는 것은 에피소드별 캐릭터고, 서사시적 영향 아래 전개된다. 영화는 그렇게 전개하기에는 너무 빨리 끝난다. 캐릭터보다 플롯이 중요한 거다. 본격 문학소설은 그다지 플롯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미드의 영향이 거꾸로 작가들에게도 올 거라고 생각한다. 마침 일전엔 아는 작가가 <로스트>를 연상시키는 글을 썼기에 “<로스트> 봤구나” 했더니 만날 밤새워 보고 있다고 하더라. (웃음)



-장편 집필 계획도 궁금하다.



=11월부터 내년 상반기까지는 외부 활동을 접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