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제작한 박은경 더램프 대표, "나의 가치관이 뚜렷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2017-09-07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택시운전사> 제작한 박은경 더램프 대표, "나의 가치관이 뚜렷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택시운전사>가 관객 1100만명을 돌파했다(8월 30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올해 첫 천만 영화이자 제작자 박은경 더램프 대표의 첫 천만영화다. <도둑들> <암살>을 제작한 케이퍼필름의 안수현 대표, <베테랑>을 제작한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와 더불어 천만영화를 탄생시킨 또 한명의 여성 제작자가 된 박은경 대표는 쇼박스에서 마케팅과 투자 업무를 하다 2012년 제작사 더램프를 차려 그동안 <동창생>(2013), <쓰리 썸머 나잇>(2014), <해어화>(2015)를 만들었다. 네 번째 영화 <택시운전사>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그는 영화 자체의 힘을 믿는 제작자다. 좋은 영화라면, 좋은 시나리오라면 영화가 스스로 힘을 키워가고 스스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기에 천만 관객이란 성공도 쉽게 자신의 몫으로 돌리지 않는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제작자는 그저 영화를 낳은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가 서울의 평범한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을 통해 광주의 비극을 보여주었듯, 박은경 대표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와 시선에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제작사는 특정한 색을 지니기보다 “무색무취하길 바란다”고 했다. 무색무취라고는 하나 거기엔 분명 사람 냄새가 배어 있을 것이다. 사람을 믿고, 영화를 믿고 여기까지 달려왔으니 말이다.



-축하한다. <택시운전사>가 올해 첫 천만영화가 됐다. 제작자에게 ‘천만’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천만이라는 건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숫자 같다. 사실 아직도 이 숫자의 크기가 체감되지 않는다. 영화를 혼자서 만든게 아니기 때문에 개인이 축하받을 일은 아닌 것 같다. 영화를 함께한 사람들이 서로 축하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오히려 더 좋더라. 시작은 제작사에서 했지만 감독과 배우와 스탭이 확정되면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영화가 점점 커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이즈는 물론이고 영화 내외적인 의미도 커졌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재조사 같은 건 기획 당시 생각지도 못한 일이니까. 영화가 스스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송강호 선배가 천만 관객 돌파 기념 무대인사에서 “영화를 안아줘서 고맙다”고 말했는데 그 표현이 적합한 것 같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온기로 안아주고 다독여주는 느낌을 받았다.



-천만영화는 하늘이 점지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택시운전사>가 시국의 덕을 봤다고 생각하나. 후반작업을 하는 동안에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를 지켜봤는데.



=하늘이 정해준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제작 초기에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종이로 출력된 80페이지짜리 시나리오에서 영화가 시작되는데, 그 시나리오를 믿고 장훈 감독이 연출자로 들어오고 송강호 선배가 합류하고 투자사도 확정되면서 이것이야말로 천운이라 생각했다. 물론 스코어가 나오는 과정에서도 예상치 못한 운이 따랐다. 정권이 바뀌면서 ‘사람들이 좀더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겠다’는 정도의 생각은 했다.



-투자를 받는 과정은 수월했나. 광주민주화운동이란 소재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던가.



=<화려한 휴가>(2007), <26년>(2012) 같은 용기 있는 영화가 먼저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같은 소재의 영화가 반복되는 것 같다는 얘기를 좀 들었다. 그런데 나는 앞으로도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영화는 계속 나올 거라 믿고, 새로운 시선의 영화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택시운전사>를 준비할 때는 ‘시나리오가 좋으면’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시나리오가 좋으면 소재에 대한 부담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이 동의해줄 거라 믿었다. 실제로 쇼박스에선 초고가 나오고 장훈 감독이 연출자로 확정되자 ‘어서 내놓으셔야죠’ 하면서 강탈하다시피 시나리오를 가져갔다. (웃음) 쇼박스에서 일을 했던 터라 투자팀 사람들이 다 친정 식구 같은 동료들인데 시나리오 얼른 내놓으라는 그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이야기의 최초 모티브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송건호 언론상 수상 소감이 실린 기사였다. 그 기사의 어떤 지점에 끌렸나.



=기사를 보고 과거의 경험 하나가 떠올랐다. 쇼박스에서 일할 때 <맨발의 꿈>(2010) 동티모르 촬영장에 간 적이 있다. 그때 현장에 칼을 든 괴한이 나타났다. 괴한을 본 스탭과 배우들이 미친 듯이 도망쳤고, 모니터를 보고 있던 나도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도망갔다. 급히 민가에 숨었는데 거기 먼저 도착해 숨은 스탭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너무 창피했다. (웃음) 그 상황에서 누구는 괴한을 제압하려 했고 누구는 멀리 도망을 갔으며 심지어 도망가서 그날 현장에 안 나타난 사람도 있었다. 나도 나름대로 정의로운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한동안 그 일이 트라우마처럼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그러다 힌츠페터의 기사를 보게 됐고 서울의 택시기사 김사복(극중 만섭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의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다. 만섭이 광주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결국 서울로 가던 길에 광주로 유턴하지 않나. 나 역시 괴한이 나타난 촬영장에서 비록 도망쳤지만 실은 유턴해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그 마음이 만섭을 통해 시나리오에 반영됐다고 할까. (웃음) 1980년 5월, 그날의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광주의 상황을 몰랐던 외부인이자 일상의 밥벌이가 소중한 소시민 만섭 캐릭터에 사람들이 쉽게 마음을 열더라. 만섭의 여정과 감정을 찬찬히 따라가면 되는 쉬운 구조와 화법이 결국 흥행으로 연결된 것 같다.



=이제까지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는 당시 광주 안에 있었던 분들의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면 새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송강호 선배가 큰 역할을 했다. 시나리오에서 만섭은 지금보다 더 보수적인 꼰대 같은 아저씨였다. 비포와 애프터가 지금보다 명확한 캐릭터였는데, 송강호 선배가 시나리오에 묘사된 것보다 훨씬 귀엽고 사랑스럽게 만섭을 표현했다. 만섭이 왠지 아빠 같고 삼촌 같아서 사람들이 편하게 이 인물을 받아준 것 같다. 더불어 평범한 사람의 영웅적 면모에 더 크게 공감한 측면도 있는 것 같고.



-소재의 비극성에 매몰되지 않고 비장미를 걷어내려 한 점도 주효했다.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고, 실패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성공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래서 처음부터 영화의 톤이 어둡지 않았다.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하기 전 어떤 사전 작업을 했나.



=이야기의 방향을 잡는 것도 중요했고, 힌츠페터 기자를 만나서 동의를 구하는 과정도 필요했으며, 김사복씨를 찾고 광주도 여러 번 오갔다. 장훈 감독과 함께 독일에 힌츠페터 기자를 만나러 갔는데 우리는 그 뒤로도 여러 번 뵙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건강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결국 첫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돼버렸다. 힌츠페터 기자는 독일의 아름다운 호수 마을에 살고 계셨는데 집 앞에 태극기를 걸어놓으셨더라. 멀리서 태극기가 보이는데 그 모습에 먼저 감동받았다. (웃음)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힌츠페터의 실제 인터뷰 영상도 그날 찍었다. 영화에 쓰기 위해 의도하고 찍은 영상은 아니다. 그와 나눈 대화를 기록으로 남기는 게 좋을 것 같았고 녹취보다는 영상이 낫겠다 싶어 카메라를 돌렸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 많이 놀랐고 마음이 아팠다. 엔딩에 힌츠페터의 인터뷰 영상을 쓴 건 그 영상이 영화와 현실, 사람과 사람을 매개하는 역할을 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택시운전사>가 신파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신파성 장면이 없다고 하며 반응이 갈린다.



=언론배급 시사가 끝난 뒤에 영화 관계자들한테 신파가 약한 것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아마 관객을 확 울리는 지점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일반인 모니터링을 할 때 관객마다 울컥하는 포인트가 다 달랐다는 거다. 나 역시 영화를 볼 때마다 울컥하는 지점이 달랐다. 그게 오히려 이 영화의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신파는 이 정도 선인 것 같다.



-송강호 배우와 전부터 인연이 있었나.



=쇼박스에서 <괴물>(2006) 마케팅 총괄과 <의형제>(2010) 투자 총괄을 맡으면서 잠깐씩 뵌 적이 있다. 그땐 그냥 알고만 지낸 사이였고 길게 작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택시운전사>는 사실 송강호라는 배우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던 작품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애초 주인공 이름이 광호였다. (웃음) 시나리오를 본 사람들이 다들 송강호 배우의 음성지원이 되는 것 같다, 송강호 배우가 거절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얘기할 정도였다. 아무튼 차마 광호라는 이름으로 시나리오를 전달하지는 못할 것 같아서 만섭으로 캐릭터 이름을 바꿔서 시나리오를 전했다. 이번에 함께 작업하면서도 많은 호사를 누렸다. 영화에 쓰이지 않은, 관객은 볼 수 없는 송강호 배우의 매번 새롭고 놀라운 연기가 담긴 테이크들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현장에선 후배는 물론 스탭까지 너무 잘 챙기셔서 가끔은 제작자인 내가 머쓱할 때도 있었다. (웃음)



-제작사 더램프를 차리기 전엔 쇼박스에서 마케팅 총괄, 투자 총괄로 일했다.



=그전엔 제일기획과 IBM을 다녔다. 영화 일은 처음이지만 포스터와 예고편을 만들고 배우들을 만나서 영화 얘기를 나누는 일이 무척 재밌었다. 입사해서 마케팅 담당한 첫 영화가 <태극기 휘날리며>(2003)였고, 투자팀으로 옮겨서 맡은 첫 투자작이 <추격자>(2008)였으니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마케팅하다가 투자하고 제작까지 하니 굉장히 계획적으로 움직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영화제작에 대해 더 고민하고 회사를 나왔으면 그동안 고생을 좀 덜 했을 텐데 싶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뭔지, 내가 잘할 수 있는 영화가 뭔지 깊이 고민하지 않고 제작사를 차렸는데 이제야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할 수 있는지 조금 알 것 같다. 회사에 있을 때는 회사의 판단을 대행하는 일을 열심히 수행하면 됐지만 제작사를 차리고 개인 사업자가 되니 나의 가치관이 뚜렷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은 아무도 나에게 열심히 일하라는 말을 하지 않지만 오늘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2년 후에 만들 영화가 없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살게 된다. (웃음)



-준비 중인 차기작은.



=<택시운전사>의 시나리오를 쓴 엄유나 작가의 연출 데뷔작인데,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준비 중이다. 시나리오는 나온 상태고 내년에 촬영 들어가는 게 목표다. 지금으로선 <택시운전사>가 끝까지 제 길을 잘 갔으면 하는 마음이 크고, <택시운전사>의 흥행에 너무 빠져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 또한 든다. ‘내가 맞다’는 태도를 경계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영화는 적어도 3~4년을 내다보고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니까 관객이 좋아하더라’ 하는 것도 과거의 데이터다. 그래서 과거가 될 수 있는 현재에 매몰되지 말고 사람들의 얘기를 잘 들어야 하는 것 같다.



-어떤 제작자가 되고 싶나.



=이 질문은 개인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 같다. 1년 뒤에 같은 질문을 하면 멋있는 답을 준비하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