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는 오늘도>에는 서술어가 생략되어 있다. 생략된 곳에 들어갈 적당한 서술어는 많다. 여배우는 오늘도 등산을 하고, 막걸리를 마시고, 좋은 작품을 기다린다(1막). 여배우는 오늘도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는 딸을 어르고, 시어머니의 병문안을 가고, 특별출연을 거절하며 술을 마신다(2막). 여배우는 오늘도 장례식장에 가고, 영화 한편을 남기고 세상을 뜬 감독에 대한 씁쓸했던 기억을 상기하고, 동료 배우들과 술을 마신다(3막). <여배우는 오늘도>는 감독 문소리가 ‘여배우 문소리’를 소재로 만든 극영화다. 물론 ‘여배우 문소리’는 문소리가 연기한다. “나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는 맞지만 나로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다”라는 문소리 감독의 설명처럼, 이 영화에는 문소리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여배우의 이야기가 창조되어 있다.
문소리는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면서 세편의 단편 <여배우> <여배우는 오늘도> <최고의 감독>을 만들었다. 그 세편이 하나로 묶여 <여배우는 오늘도>로 탄생했다. 영화의 3막 ‘최고의 감독’ 편에서 ‘신인배우’ 역으로 출연해 능청스런 연기를 선보여 문소리를 웃긴 배우 전여빈과 감독 문소리를 만났다. 영화라는 신비한 세계에 매혹된 두 사람이 감독 대 배우로, 배우 대 배우로 마주 앉았다.
1막_ 여배우
-전여빈 배우가 사전에 오늘의 인터뷰 자리가 무척 떨린다고 했다. 존경하는 선배이자 감독님과 함께하는 자리라서.
=전여빈_ 부담스러우면서도 영광스럽다. 지금도 선배님을 보면 눈에서 하트가 나온다.
=문소리_ 지난해 초 <씨네21>에 여빈씨가 라이징 스타로 소개된 기사를 봤다(<씨네21> 1040호). 우리 영화 찍고 난 다음이었을 텐데, 그때 전여빈이 어떤 배우라고 코멘트도 해줬다. 나랑 작업한 배우가 라이징 스타로 인터뷰를 하니 뿌듯하기도 하고 신인 때 생각도 나더라. 신인시절 영화 오디션에 합격했을 땐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는데 <씨네21>에 처음으로 표지 촬영하러 갈 때는 그제야 내가 배우가 된 것 같은 실감이 들면서 가슴이 떨렸다. 그땐 사진 촬영을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서 이러고만 있었다. (의자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팔로 다리를 감싸는 포즈를 취한다.) 재밌는 건, 그때 날 기자로서 인터뷰한 친구(메타플레이 황혜림 이사)가 지금은 <여배우는 오늘도>의 배급을 하고 있고, <박하사탕>(1999)을 좋아해서 알게 된 친구(필앤플랜 조계영 대표)가 이 영화 홍보를 하고 있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만난 친구(구정아 PD)가 이 영화 프로듀서를 하고 있다. 다들 10여년 전 문소리가 빅 픽처를 설계한 거라고 했는데 그 반대다. 내가 그들의 빅 픽처에 휘말린 것 같다.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면서 만든 세편의 단편이 극장 개봉으로까지 이어졌다.
문소리_ 인생의 일이란 게 계획대로, 의지대로, 예상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내 발로 <박하사탕> 오디션을 보러 가긴 했지만 배우로 데뷔하리라는 생각은 못했던 것처럼. 이 작품도 ‘그래, 영화라고 만들어놨으니 관객에게 보여주라는 건가보다’ 싶은 생각이 든다.
전여빈_ 데뷔작이나 마찬가지인 단편이 이렇게 개봉할 줄은 나 역시 상상도 못했다. 문소리 선배님이 졸업작품으로 단편을 찍는데 한번 만나고 싶다고 오전 9시30분에 전화를 하셨는데 그 전화를 받은 일도 내겐 기적 같았다.
문소리_ 영화인들한테 내가 너무 일찍 전화를 했어. (웃음) 애가 오전 7시에 일어나니까 나는 그때부터 일어나서 사람들에게 언제 전화하지, 그래도 9시는 넘어서 전화해야겠지 싶어서 9시 반에 전화한 건데, 그때 전화하면 다들 자다가 화들짝 놀라서 전화를 받는다.
전여빈_ 자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가 떠서 ‘택배 시킨 거 없는데’ 하면서 받을까 말까 하다가 받았다. (웃음) 그런데 수화기 저편에서 ‘저 문소립니다’ 하는 거다. 이게 뭔 소리지 싶었는데 금세 정신차리고 ‘제가 아는 그 문소리 선배님이십니까’ 하며 자세를 고치고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출연한 영화가 개봉까지 하니 꿈만 같다.
문소리_ 그전에 여빈씨가 SNS에 나에 대해 뭘 올렸다고 들었다.
전여빈_ 선배님이 찍은 첫 단편 <여배우>를 보고 한 장면을 캡처해서 ‘문소리 감독님, 저와 함께 작업해주십시오’ 하고 SNS에 올렸다. 올리고 나니 좀 창피한 생각이 들어서 2주 뒤에 글을 내렸는데, 내리고 나서 얼마 있다가 미팅하자는 전화가 온 거다.
문소리_ SNS에 올린 글을 보고 연락한 건 아니었고, 영화에 출연할 신인배우를 찾는다고 했더니 구정아 PD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2015년) 트레일러에 나오는 배우가 있다면서 한번 보라더라. 트레일러에 나온 여빈씨의 얼굴만 보고 미팅을 제안했다. 만나서 평양냉면 한 그릇 먹고 카페에 가서 대뜸 대본을 주고 읽어보자 했는데, 내가 큰 소리로 읽기 시작하니까 따라 읽더라. 전혀 위축감이나 긴장감도 없이.
전여빈_ 나도 기억한다. 종로에서 선배님을 뵀는데, ‘배 고프지 않으세요?’하셔서 처음엔 거짓말을 했던 것 같다. 밥 먹었다고. 그래도 한입 해볼까요, 하고 평양냉면집에 갔는데 한 그릇을 다 먹었다. (웃음) 어려서부터 아이돌 그룹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배우들, 특히 멋진 여배우 선배님들에 대한 환상이 컸다. 그날도 아이돌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속으론 엄청 들떴는데 혹여 선배님이 불편해할까봐 티내지 않으려 했다.
문소리_ 영화 개봉하는 게 부담스럽고 부끄럽기도 한데 배우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래도 일 벌이기를 잘했구나 싶다. 매니저 역할로 세편 모두 출연한 윤영균 배우도 곗돈 부어놓고 잊고 있다가 한꺼번에 계 탄 느낌이라더라. (웃음) 이런 필모그래피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그래, 배우들한테는 영화 한편 개봉하는 게 큰일이지 싶더라.
-이번엔 감독으로서 캐스팅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감독 입장에 서서 배우들을 만나니 어떻던가.
문소리_ 우선 좀 미안했다. 내가 연출만 하는 게 아니었고 배우들이 나랑 마주 보고 연기를 해야 했으니까. 자신들보다 경력도 많은 배우가 감독이랍시고 만나자고 하는데 또 같이 연기도 해야 했으니 얼마나 부담스럽겠나. 그 부담감과 중압감이 연기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그걸 최대한 덜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어떨 땐 내가 그들의 상대배우로서 리액션만 열심히 하면 되는데, 감독의 눈빛을 하고서 연기를 똑바로 하는지 안 하는지 지켜보고 있는 거지. (웃음) 내가 연출만 했다면 배우들의 연기에 더 집중하면서 잘한다, 잘한다 했을 텐데 배우와 감독 역할을 오가느라 신경을 많이 못 써준 건 아닌가 싶다.
전여빈_ 감독님이 배우라는 게 특별히 부담으로 작용하진 않았다. 잘하고 싶은 욕심은 있었지만 그보다는 선배님에 대한 믿음이 더 컸다. 인물의 사소한 동작이나 특징까지 설명을 해주셔서 캐릭터가 쉽게 그려졌다. 그건 감독님이 배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소리_ 두 테이크 찍고 나선가, 3막에서 같이 연기한 윤상화 선배가 슬쩍 옆으로 오더니 놀랍다는 듯이 귓속말로 ‘쟤 뭐야?’ 그러더라. ‘쟤 전여빈이요’ 했더니 ‘저렇게 웃긴 애인 줄 알고 캐스팅한 거야?’ 하셨다. (웃음) 슛 들어가기 전에는 ‘독특한 분위기의 배우일세’ 요 정도였는데, 촬영을 시작하니까 다들 여빈씨의 연기를 보고 폭소가 터졌다. 실제로 내가 무슨 얘길 하면 바로바로 이해를 한다. 머리도 좋지만 마음도 활짝 열려 있다. 머리가 좋아도 마음이 닫혀 있으면 몸으로 표현하기 힘들 수 있는데 여빈씨는 굉장히 유연하더라.
전여빈_ 선배님한테 이런 칭찬을 들으니 정말 행복하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문소리_ 아닙니다, 이게 다 홍보하자고 하는 건데 뭐. (일동 폭소)
2막_ 여배우는 오늘도
-<여배우는 오늘도>는 픽션이지만 관객 입장에선 문소리와 ‘문소리를 연기하는 문소리’를 하나의 인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소리_ 그건 이 직업의 업보 같은 거다. 오해받고, 의도치 않은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그 이미지를 이용하기도 하고, 이미지와 싸우기도 하고, 아닌 척도 했다가 그런 척도 했다가. 데뷔 때부터 18년 동안 그러고 있고 앞으로도 쭉 이어질 거다. 오히려 그걸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용하기도 해야 하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진짜인 나, 나의 진심을 지켜가는 게 중요하다. 영화라는 게 가짜지만 진짜가 담겨 있는 것처럼. 연기 역시 진짜를 전하기 위해 온갖 가짜를 동원하는 거잖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세상에 널려 있는 문소리에 대한 오해들, 가짜들, 소문들, 판타지들이 있겠지만 그냥 짊어지고 가는 거다.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걸어가면 단단해질 수 있다. <여배우는 오늘도>를 만드는 과정이 내겐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했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나를 바라보는 내가 많이 흔들리지 않게 된 것 같다. 물론 단단해지기가 참 어렵다. 그래서 시작하는 배우들을 보면 안쓰럽다. 마음이 산으로 갔다가 바다로 갔다가, 늪에 빠졌다가 동굴에 들어갔다가 그럴 텐데. 나 역시 어마어마하게 탐험하고 도전하고 상처받고 힘들었다.
전여빈_ 아직은 유명하지 않아서 오해를 받거나 상처받은 경험이 적다. 그런데 최근에 악플을 경험했다. 생각보다 마음이 굉장히 아프더라.
문소리_ 크게 보면 상처를 덜 받는다. 크게 보려면 공부를 해야 하고.
-연기에 대한 대중의 평,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찾아보는 편인가.
문소리_ 예전에 <바람난 가족>(2003) 개봉했을 때 인터넷을 끊었다. 그땐 댓글뿐만 아니라 기사의 제목조차 볼 수 없었다. 아침에 메이크업을 받으러 가면 한 시간씩 펑펑 울다가 진정이 되면 메이크업을 받고 영화를 홍보하러 갔다. 그냥 영화 하나 찍었을 뿐인데 나한테 왜 그러지 싶더라. 드라마 <태왕사신기>(2007) 때도 힘들어서 결국 108배 하면서 마음을 다스렸고.
전여빈_ 나는 사실 검색해도 잘 안 나온다. (웃음) 스스로 내 출연작들을 정리할 겸 검색을 하는데 그러다보면 가끔 나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본다. 선배님 말씀처럼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에도 공감하고, 거리를 두고 이 일을 볼 필요도 있는 것 같다.
-1막에서 배우 문소리가 매니저에게 ‘니가 보기에 내가 예뻐 안 예뻐’ 물어보는 장면이 있는데, 배우들은 외모에 대한 평과도 싸워야 할 때가 많다. 한국은 특히 외모에 대한 지적과 관심이 노골적인 편이기도 하고.
문소리_ 한민족이라 다들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가, 외모의 다양성을 정말 인정하지 않는다. 남자가 머리 길면 자르라 그러고, 수염 기르면 왜 기르냐 그러고. 다양해야 건강한 건데. 그런데 또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많이 개입하는 게 정의라지 않나. (웃음) 여기서 40년 넘게 살다보니 어떨땐 ‘남의 인생에 왜 그러세요, 제발 쿨하게 거리 좀 유지하세요’ 싶다가도 어떨 땐 또 남의 삶에 관심 갖는 게 중요하지 싶다. 영화에 그 대사를 집어넣은 건, 얼굴이 예쁘니 안 예쁘니 해도 사람의 매력을 보고 작품을 제안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 좋은 작품이라면 자식이 대학교 4학년인 여성 캐릭터인들 어떠냐, 내 인생에서 중요한 건 좋은 작품이다, 그런 얘기를 하려 했던 거다. 그런데 괜히 이 영화로 외모 논란을 일으킨 것 같아 부끄럽다. (웃음)
전여빈_ 다행히 나는 시대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미의 기준이 획일화되었을 때가 아니라 미의 다양성이 조금씩 허용되기 시작할 때 연기를 시작한 거라. 함께 작업했던 감독님 중엔 그런 얘길 해준 적도 있다. 내 얼굴은 호불호가 있을 거라고. 혹여 그런 말들에 상처받지 말라고.
문소리_ 데뷔했을 때 이창동 감독님도 나한테 그랬다. 한국영화계가 환영하며 너를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과 싸워야 한다고. 그땐 그게 뭔 말인지도 모르고 제가 왜 싸워요, 그랬는데. (웃음)
3막_ 최고의 감독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감독님’이다. 감독님이란 말이 특히 배우의 입에서 발화될 때 권력자를 대하는 언어처럼 느껴진다. 감독과 배우 양쪽에 대한 풍자 같기도 했고.
문소리_ 실제로 현장에서 감독이 최고의 권력자인 건 맞다. 우리 엄마도 그런 말을 했다. 세상 그 누구의 말도 안 듣던 애였는데 감독 말은 잘 듣는다고. 감독님이 뭐라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렇게 했으니까. 물론 감독을 따르는 태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이톤의 비음으로) “감독님~” 이럴 수도 있고, (저음의 건조한 말투로) “감독님~” 그럴수도 있고. 그런데 왜 여배우는 한 가지 태도로만 감독님을 따라야 하는 건지. 가끔 어떤 감독들은 여배우들에게 다른 태도를 바라기도 하고. 근데 참 (장준환) 감독이랑 살면서 감독에 대해 뭐라 말하기가 퍽 난처하네. (웃음) 나에겐 감독님이란 단어가 워낙 입에 익은 일상의 언어다. 집에서도 남편을 ‘감독님’이라 부를 때가 많다. 누가 ‘감독님은 잘 계셔?’ 그러면 어느 감독 얘기하는 건지 헷갈리고. 장률 감독님이랑 작업할 때 누가 ‘장 감독님’이라고 하면 어떤 장 감독님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고. 아무튼 감독이 내게 첫사랑이자 끝사랑이다. 끝사랑이길 원해야지. (웃음)
-3막의 제목이 ‘최고의 감독’이기도 한데, 여기선 감독과 배우의 애증 관계를 보여준다.
문소리_ 3막의 시놉시스가 나오고 제목 회의를 했는데 우리 PD가 던진 제목이 ‘감독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였다. (일동 폭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가 흥행하던 때였다. 한참 제목으로 고민하다가 ‘최고의 감독’이 좋겠다 했더니 그거 너무 조롱하는 거 아니냐 그러더라. 조롱이 아니라 진심이라 했더니 그 마음으로 영화를 찍어야 영화 속 감독을 최고의 감독으로 대우하는 게 보일 거라고 했다. 영화 한편 찍고 망해서 14년 동안 영화를 못 만들다 세상을 뜬 감독에 대한 얘길 하는 거였으니까. 그런데 또 어떤 영화인은 마지막 묘지 장면을 보고 문소리 무섭다, 영화 못 만든 감독들은 다 묻어버리겠다는 거 아니냐 그러더라. (웃음)
전여빈_ 나도 감독이란 존재는 현장에서 가장 믿고 따라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의견 충돌이 있더라도 잘 싸우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한번은 또래 감독의 졸업작품을 찍을 때였는데, 감독이 요구하는 인물의 감정이 납득이 안 되더라. 그래서 의견을 좁히려고 현장에서 한 시간을 얘기했다. 결국 감독이 원하는 대로 연기를 했는데, 나중에 영화 전체를 보니 감독의 말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소리_ 삶에 있어서 맞고 틀리고는 없는 것 같다. 나를 아무리 잘 알고 있는 사람도 그 순간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럴 때 배우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 같다. 감정이 막 터져나올 것 같은데 감독은 담담하게 하래. 그러면 담담하게 하되 그 터질 것 같은 감정이 느껴지게 연기를 해보는 거다. 그걸 본 감독이 뭔가 느껴지면 배우의 의견대로 다시 찍자고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내가 배우로서 굉장히 주장이 강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배우가 소신이 있어야지, 자기가 납득이 안 될 땐 못하는 거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지!’ 그러는 줄 아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연기를 가르칠 때도 이렇게 말한다.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내 생각과 달라도 우선 감독의 말을 들어. 근데 내 생각과 감독의 생각이 만나서 더 멋있는 길을 만들 순 있겠지. 내가 가려는 길과 그가 가려는 길이 다르지 않아야 해.’ 그러면 학생들이 의외라는 듯 쳐다본다. (웃음)
-배우로서, 영화인으로서 요즘의 고민이 있다면.
문소리_ 초저예산 독립영화를 개봉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독립영화, 예술영화 배급시장이 발 디딜틈 없이 좁다는 걸 체감한다. 내 영화 좀 틀어달라고 말하기가 무안할 정도다. 다들 처지가 빤하고, <더 테이블>과 <시인의 사랑>도 다들 아는 친구들이 만든 영화고. 다양한 영화가 안정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전여빈_ 상업영화 오디션을 보러 가면 연기할 수 있는 여성 캐릭터의 폭이 정말 좁다. 오디션을 보러갈 때마다 조감독들이 그런 얘길 한다. ‘(여성) 역할이 많이 없죠.’ 그 얘기를 2년째 들은 것 같다. 좀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면 좋겠다.
-멋있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상업영화 연출 계획은 없나.
문소리_ 전혀. 그런 작품의 출연 제안이 있었으면 좋겠다. (웃음) 아직 상업영화 연출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후의 작품 계획은 어떻게 되나.
전여빈_ 최근 생애 첫 드라마 <구해줘>를 찍었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죄 많은 소녀>가 상영하게 됐고, 연말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라는 작품이 개봉할 것 같다. 선배님도 작품이 많은 걸로 안다. 참, 특별출연이었지만 <아가씨>(2016)에서도 정말 압도적으로 아름다우셨다. 그때 선배님 인터뷰를 찾아 읽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기자가 미모의 비결을 물었는데 선배님 대답이 ‘<아가씨>에선 벽지도 뭐도 아름답지 않은 게 없어요’였다.
문소리_ 박찬욱 감독님이 다음 작품 뭐 하시는지 모르겠네. (웃음) 엊그저께 꿈에 박 감독님이 나왔는데, 국가보안법으로 연행되셨다. 연행되면서도 세단을 타고 정장 입으시고 레드카펫 입장하듯 우아하게 걸어가셨다. 나는 슬퍼 울면서도 감독님이 연행되는 이 신에 누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인사를 했다. 이게 뭔 꿈이냐 싶어서 박 감독님한테 문자를 보냈다. (웃음) 이야기가 샜는데, 아무튼 11월에는 연극 <빛의 제국>으로 프랑스 세개 도시에서 공연할 예정이고, 하반기에는 JTBC에서 새로 준비하는 영화 관련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에 출연하게 됐다. <리틀 포레스트>에도 잠깐 나오고,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에도 짧게 나온다. 요즘은 왜 이렇게 특별출연이 많은지 모르겠다. (웃음).
문소리에 대한 오해
“문소리는 진지하다? 사람들이 날 진지한 사람으로 본다. 그런데 나 진지한 거 맞는데, 음, 오해가 아닌가? 말을 해보면 진지한 면도 있는데 생각보다 웃기다. 매니저는 나 때문에 매일 빵빵 터진다. ‘이런 모습 저만 알기 아깝습니다’ 하면서. 또 다들 나를 어려워하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내가 의외로 마음이 약하다. (웃음)”
전여빈에 대한 오해
“전여빈은 밝다? 발랄한 역할이나 이미지가 많이 노출되다 보니 실제로도 엄청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더라. 최근에 굉장히 어두운 캐릭터를 맡았는데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더라. 실은 그렇게 밝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하는 신인배우로서, 어떤 오해나 편견에 부딪히더라도 유연하고 강한 모습을 지켜나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