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 린치를 위한 영화.”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는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영화의 문을 연다. 이것은 수많은 동시대 영화감독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준 위대한 아티스트, 데이비드 린치가 어린 딸 룰라를 위해 들려주는 자신의 성장담이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작업실에 설치한 빈티지 마이크 앞에 앉아 과거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 백발의 예술가를 보고 있자면 얼핏 인자한 동네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떠올릴 법도 하지만 오해하기 전에 잠깐, 그가 <이레이저 헤드>(1977)와 <트윈 픽스>(1992)의 감독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린치적 다큐멘터리’라는 이 작품의 홍보 문구대로,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는 평범하게 진행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밝고 다정한 느낌의 가족사진과 기록영상 사이로 그로테스크한 그림(물론 데이비드 린치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과 불길한 효과음이 끼어든다. 이 작품을 통해 내레이터로서도 훌륭한 재능이 있음을 입증한 데이비드 린치는 오로지 목소리를 통해 감정의 고조를 효과적으로 재단하는데, 당장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만 같은 긴장감 가득한 순간이 영화 곳곳에 포진해 있다.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가 특히 주목하는 시기는 몬태나와 아이다호, 워싱턴 등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며 미술학도로서의 꿈을 키워나가던 데이비드 린치가 아메리칸 필름 인스티튜트(AFI)의 후원으로 첫 장편영화 <이레이저 헤드>를 완성하기까지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영화감독 이전의 데이비드 린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아티스트로서의 꿈을 꾸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아버지와의 불화, 유년 시절 겪은 악몽 같은 일화, 로버트 헨리의 책 <예술의 정신>으로부터 받은 영향과 죽은 존재들에 대한 매혹 등 린치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좇다보면 어느 예술가의 초상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려질 것이다. 데이비드 린치와 함께 <인랜드 엠파이어>(2006)의 제작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린치>(2007)를 만든 바 있는 존 구옌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린치의 보다 사적인 순간들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