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윈드 리버> 고립을 벗어나려는 시도, 그리고 좌절
2017-09-26
글 : 홍은애 (영화평론가)
문(門)을 두드린다는 것

<윈드 리버>는 현재진행형의 내러티브 구조를 취하고 있다. 영화 속 장면들은 모두 현재 발생하고 있는 상황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단 한신만은 예외다. FBI 요원 제인(엘리자베스 올슨)은 윈드 리버 산맥의 설원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나탈리의 사건을 수사하다 그녀가 사귀었던 남자친구 맷(그 또한 설원에서 시체로 발견됐다)이 일했던 공사장의 경비원들이 묵는 숙소를 찾는다. 이곳에서 제인이 지휘하는 경찰들과 공사장 경비원들 사이에 주거침입 논란으로 서로 총을 겨누는 한 차례의 기싸움이 벌어진다. 이 상황을 제압하고 제인은 맷이 묵었던 컨테이너 숙소의 문을 두드린다. 다음 숏은 어두운 실내에서 세면대 앞에 서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희미하게 보여준다.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남자는 문쪽으로 걸어가서 문을 연다. 당연히 문 앞에 제인이 서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는 어긋난다. 문 앞에 서 있는 여자는 나탈리다. 이어지는 신은 3일 전 그녀가 죽기 전에 겪은 상황들을 마치 현재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보여준다. 범인을 추적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감독은 왜 곧바로 총격전 신으로 긴장감을 몰고 가지 않고 숙소의 내부 신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전환했는가? 그리고 여기서 문을 두드리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내부와 외부를 구분 짓다

먼저 제인이 맷의 숙소 문을 두드리는 첫 번째 숏을 살펴보자. 이 장면에서 감독은 문을 두드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롱숏으로 보여준다. 이때 그녀를 중심으로 왼쪽엔 공사장 경비원들이, 오른쪽엔 경찰들이 있고 이 두 그룹은 서로 대치 중이다. 이어서 그녀가 문을 두드리는 모습을 롱숏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뒷모습이 정중앙의 오른쪽에 위치하며 나머지 왼쪽은 멀리 눈으로 덮인 윈드 리버 산맥을 보여준다. 여기서 감독은 왜 이 산맥을 보여주는가? 이는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환기시켜주려는 것이 아닐까. 다음으로 이어지는 숏이 바로 문제의 내부 장면이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남자는 양치질을 멈추고 문쪽을 바라본다. 우리는 그 남자가 피트(맷과 같은 방을 썼던 공사장 경비원)일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경비대장이 그가 야간근무를 선 뒤 자고 있을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순간 긴장감이 흐른다. 하지만 그가 문을 열자 제인이 아니라 긴 생머리의 여자가 미소 지으며 서 있다. 어찌된 일인지 감독은 이 상황에서 우리의 예상을 뒤집고 뜻밖의 인물인 나탈리를 보여준다. 그녀가 백마 탄 왕자님을 찾으러 왔다고 말하는 순간 그 남자가 죽은 그녀의 남자친구 맷이란 사실이 드러난다. 우리는 지금부터 죽은 이 두 남녀가 겪게 될 참혹한 상황을 목격자가 되어서 지켜보게 될 것이다. 이 신의 마지막 장면은 그녀가 엎어져서 침대 모서리에 걸쳐져 있고 맷의 동료들은 맷과 치고받고 싸우다 그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이어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비틀거리며 서서 나탈리의 엉덩이를 바라보는 모습(굶주린 짐승 같은)에서 끝난다. 감독은 그 이후 상황은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이미 성폭행을 당했고 도망치다 설원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후 상황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녀는 외지에서 온 애인을 통해서 그녀가 살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길 원했지만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애인의 직장 동료들인 외지인들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희생을 필요로 하는 이동

이제 카메라는 내부 세계에서 외부 세계로 옮겨간다. 여기서 문을 중심으로 나눠진 내부와 외부가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살펴보자. <윈드 리버>에는 문을 두드리는 장면이 네번 등장한다. 하지만 제인이 문을 두드리는 장면은 다르게 구성되었다. 그래서 이 장면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선 다른 장면들의 예를 들어보자. 첫 번째는 영화의 초반 주인공 코리(제레미 레너)가 전 부인 집을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녀가 문을 열어줄 때까지 먼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녀의 허락(“커피 마실래?”)하에 그와 카메라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코리가 다시 그녀의 집 문을 두드렸을 때다. 이 숏에서 카메라는 그가 문을 두드리는 장면을 멀리서 부감숏으로 보여준다. 이 숏은 앞에서 설명한 제인이 숙소의 문을 두드리는 롱숏의 장면과 닮아 보인다. 이어지는 숏에서 그녀가 문을 두드린 사람을 확인한 후에야 문을 열면 그가 문 앞에 서 있다. 하지만 그는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녀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이 닫히고 문 앞에 서 있는 그의 뒷모습을 다시 동일하게 부감숏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제인과 인디언 경찰서장이 나탈리의 오빠가 살고 있는 샘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이다. 서장이 철판으로 만들어진 허술한 집의 문을 두드릴 때 문 여는 소리가 나면 카메라는 안에서 서장과 제인이 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고 나서 문을 연 남자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은 문을 통과하지 못한다. 그가 호신용 스프레이를 그들의 눈에 뿌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문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며 주저앉는다. 상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후 제인은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실내에서 남자와 총격전을 벌이고 남자는 죽는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번의 문 두드리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자유롭게 문을 통과할 수 있지만 등장인물들이 무리하게 그 문을 통과하려면 어떤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원주민들이 고립되고 척박한 땅인 이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간다는 게 어렵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 있다.

목격자의 시선

다시 제인이 문을 두드리는 두 번째 숏을 떠올려보자. 이 숏은 숙소의 내부 장면을 보여주기 이전 외부 장면의 숏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번에는 첫 번째 숏보다 그녀가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다. 이 때문에 그녀와 문의 거리는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녀는 문을 열라고 명령하지만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다. 문 앞에 서 있는 제인, 그녀는 문의 손잡이를 돌린다. 그때 코리로부터 무전이 오고 서장은 제인에게 문에서 떨어지라고 소리친다. 그 순간 안에서 문을 뚫고 총알이 날아온다.

이전 장면에서 감독은 주인공 코리를 통해 3년 전에 그의 딸 에밀리가 죽던 날의 상황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탈리가 죽게 된 상황을 목격자 중 한 사람의 플래시백(회상)을 통해서 보여주는 대신에 우리 모두가 목격자가 되어서 이 상황을 바라보게 했다. 이것은 영화의 긴장감을 이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범인이 한명이 아니라 지금 제인의 옆에 있는 경비원들 모두가 공범이란 것을 그 장면을 통해서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코리가 스노모빌 자국이 산에서부터 경비원 숙소까지 이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그 사실을 무전으로 서장에게 알리려고 하는 장면을 제인이 숙소의 문을 두드리는 장면 이전에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문을 중심으로 영화의 공간을 윈드 리버 지역인 외부와 내부로 나눴다. 반복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등장인물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고립된 지역인 인디언 보호구역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이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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