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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우리> 문창용 감독 - 눈빛을 잊을 수 없어 다시 만나러 갔다
2017-09-28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인도 라다크 지역에 사는 9살 소년 앙뚜는 티베트에서의 전생을 기억하는 린포체다. 린포체는 티베트 고승이 환생한 존재로, 살아 있는 부처로 불린다. 티베트 사원의 제자들이 찾아와야지만 제 사원을 갖고 앙뚜가 린포체로 살아갈 수 있는데 중국의 티베트 탄압이 거세지면서 티베트로 향하는 길도, 나오는 길도 막혀버렸다. 린포체로 인정받았지만 린포체로 살아가지 못하는 앙뚜를 헌신적으로 모시는 건 노승 우르갼이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이 두 사람, 앙뚜와 우르갼의 특별한 관계를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아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됐다는 문창용 감독은 오랫동안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들다 운명처럼 앙뚜와 우르갼을 만나 첫 영화를 찍게 된다. 종교적, 문화적 주석을 다는 대신 앙뚜와 우르갼의 인간적 모습에 집중하는 문창용 감독의 시선은 가혹한 운명 속에서도 오롯이 피어나는 휴머니즘을 놓치지 않는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부문 대상 등 해외 영화제에서의 성과가 좋았는데, 티베트 불교가 낯선 유럽이나 영미권 국가에서의 반응은 어땠나.

=2014년 프랑스 서니 사이드 오브 더 독(Sunny Side of the Doc)의 센트럴 피칭에서 작품을 소개했는데, 당시 <BBC> 관계자가 질의응답 시간에 그러더라. “왜 이런 아이를 찍고 있냐. 엄마는 왜 아이를 방치하느냐. 정신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니냐.” 환생을 믿든 안 믿든 1400년 동안 이어져온 라다크 고유의 문화가 있고, 그걸 현대의학으로 접근해 얘기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얘기했지만 사실 그런 냉담한 반응에 충격이 꽤 컸다. 그러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갔을 땐 신기한 경험을 했다. 독일 사람들은 차갑고 합리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면서 웃고 울더라. 어떤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면서 영화를 보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며 우르갼과 앙뚜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고 그들을 제발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웃음) 영화를 만드는 동안, 불자도 아닌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이 왜 라다크의 이야기를 하려느냐는 얘기를 종종 들었는데, 내가 보여주고자 했던 마음이 관객에게 전해진 것 같아 뿌듯했다.

-린포체라는 소재가 주는 특별함이 큰데도 종교적 접근과 설명은 배제한 채 앙뚜와 우르갼의 관계에 집중한다.

=2009년 처음 라다크에 갔을 때 하늘과 설산, 그곳 사람들의 표정이 정말 좋았다. 해발 3500m에 위치한 라다크에선 산소가 부족해서 그런지 몰라도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그런데 어쩌면 그 판타지 같은 공간과 불교라는 배경이 두 사람의 관계를 특별한 공간과 특별한 종교 속에서만 가능한 관계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데 그 특별한 배경이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될 것 같았다.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라다크에 갔다가 노승 우르갼과 동자승 앙뚜를 처음 만난 것으로 안다.

=당시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송될 ‘동양의학기행’에 관한 다큐멘터리 중 2부작을 제작하고 있었다. 인도 다람살라를 거쳐 라다크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다람살라 촬영을 마치고 현지 코디네이터가 빠져버렸다. 어쩔 수 없이 라다크에는 통역만 동행했고, 현지에서 라다크의 전통의술을 펼치는 스님을 찾는다고 수소문을 했다. 그렇게 해서 만난 사람이 우르갼이다. 그런데 그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꼬마애가 있었고, 그 아이가 앙뚜였다. 서로를 마주보는 눈빛이 특별했다. 그 눈빛을 잊을 수 없어 이곳에 꼭 다시 와서 두 사람을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개인적으로 많이 지쳐 있을 때 이들을 만났다. 일주일 혹은 보름 만에 휴먼 다큐멘터리 하나를 만들어야 하는 현실, 혹은 하루 만에 1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하는 현실이 버겁더라.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다큐멘터리를 시작했는데 사람을 제대로 알고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건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때 만난 우르갼과 앙뚜는 내게 일종의 해방구 같은 존재였다. 밤샘 작업하느라 힘들고 지칠 때 ‘이것만 끝내면 라다크에 갈 수 있어, 라다크에서 그들을 찍을 거야’ 했으니까. 그런데 첫 만남 이후 몇년 뒤 앙뚜가 린포체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웃음)

-우르갼 스승의 헌신적 태도가 둘의 관계를 더욱 뭉클하게 만드는데, 마지막 이별 장면에서 우르갼이 보여준 눈물은 특히 울림이 컸다. 눈도 없는 풀밭에서 마지막으로 눈싸움을 하자던 우르갼은 결국 무너지듯 주저앉아 울고 만다. 굉장히 드라마틱한 순간이었다.

=그동안 힘든 상황도 많았는데 우르갼 스승은 한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슬픔은 있었지만 눈물이 나진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앙뚜와 이별하던 날 촬영 중 오디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흑흑거리는 소리가 나서 보니 우르갼 스승이 울고 있었다. 옆을 보니 코디네이터도 소리내 울고 프로듀서도 울고 있었다. 나까지 울고만 있을 순 없어 눈물을 훔치고 열심히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녔는데, 그 뒤로 프로듀서가 나보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이라 그러더라. 물론 오해다. (웃음) 우르갼이 왜 울었는지 묻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8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하며 앙뚜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준 우르갼은 결국 앙뚜를 불안한 상태로 홀로서기시켜야만 했다. 그러한 현실에 대한 자책감도 컸을 것이고 더불어 홀로 남게 될 앙뚜뿐만 아니라 홀로 남게 될 본인에 대한 생각도 밀려왔을 것이다. 우르갼이 앙뚜를 한없이 사랑했다는 걸 매 순간 느낄 수 있었고,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앙뚜가 한없이 좋았기 때문에 모든 걸 주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앙뚜를 떠나보낸 우르갼은 라다크로 돌아가 묵언수행을 7개월 했다.

-라다크를 떠나 티베트로 향하는 긴 여정이 앙뚜가 린포체로서의 정체성에 확신을 가지는 계기가 된 것 같나.

=그것까진 모르겠지만, 단 하나 확인한 건 그거다. 촬영하는 동안 린포체란 무엇인가에 대해 두 사람에게 질문도 많이 했고 다른 린포체들도 많이 만나봤다. 근사한 사원에 머무는 어린 린포체도 만났는데 마치 새장에 갇힌 예쁜 새 같았다. 또 다른 20대의 린포체는 얼굴에 기름기가 번지르르했다. 좋은 차를 끌고 다니고 수행비서들이 우르르 따라붙었는데, 자신에게 허리 숙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빛이나 손길 그 어디에도 연민이나 복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걸 보면서 정신적 지도자라는 린포체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생각해봤다. 연민하는 마음과 나눌 줄 아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싶었다. 환생이란 복잡한 과정은 생각지 않더라도 그런 마음을 가진 존재가 있다면 그 또한 린포체가 아닐까. 앙뚜는 티베트로 향하는 여정에서 그 연민의 마음을 보여줬다. 린포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람들의 의심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가진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걸하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주는 앙뚜의 모습을 보면서 우르갼 스승의 가르침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나.

=3년 전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쓰레기 마을’에 사는 나디아라는 11살 소녀를 찍고 있다. 거대한 쓰레기더미에서 밤새 플라스틱을 주우며 살아가지만, 매일 무너지는 꿈인데도 매일 새로운 꿈을 꾸는 소녀다. 아동학대, 노동착취에 대한 얘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태어나도 우리>처럼 사람에 집중하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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