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박희아의 <프랑켄위니> 상실의 기억
2017-10-11
글 : 박희아 (<아이즈> 기자)

감독 팀 버튼 / 목소리 출연 위노나 라이더, 캐서린 오하라, 찰리 타한 / 제작연도 2012년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하셨다. 고향인 속초에 가면 그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작은 방이 있는데, 어릴 때는 한참씩 그 안에서 명패나 방송국 이름이 금박으로 박힌 티스푼 세트 같은 것들을 만져보고는 했다. 기자가 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나는 우리 할아버지를 좋아했다. 자주색 베레모와 낡은 가죽점퍼,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나무로 만들었다는 고급스런 바둑판도 있었다. 모두가 할아버지의 것이었고, 이제는 대부분의 물건이 남아 있지 않다. 장례식 이후에 태워지거나 버려졌다.

<프랑켄위니>의 첫 장면에서는 초등학생 빅터가 자신의 개 스파키를 데리고 찍은 영화를 온 가족이 둘러앉아 관람한다. 엄마가 어릴 때부터 나를 영화관과 공연장에 데리고 다니셨지만, 사실 나에게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는 ‘영화 관람’의 기억은 따로 있다. 할아버지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서부영화를 보던 순간. 할아버지와 나는 종종 나란히 앉아 비디오를 틀었다. 느긋하게 소파에 기대앉아서 영화를 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은퇴한 노인만이 지닐 수 있는 특유의 멋이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노인네가 돌아가신 순간에 내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들으면 다들 웃는다. 초등학생 손녀는 이모네 집에서 SBS <인기가요>를 보며 인기 걸그룹 베이비복스의 춤을 따라하고 있었다.

밤이 내려 을씨년스럽던 청초호의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실감했다.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갈까. 다시 살아날 수는 없을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흑백으로 만들어진 이 진지한 애니메이션은 아이돌 그룹의 무대를 보며 신나게 놀고 있던 나의 어린 시절과, 몇 시간 뒤에 마주한 차가운 밤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저절로 눈물이 줄줄 났던 그 밤의 풍경이 어두운 영화 속 장면들과 저절로 겹쳐진다. 그날 나는 스파키를 보고 혼란스러워하던 빅터처럼 할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SBS 인기가요>의 한 장면과 슬픔이 정신없이 교차하는 순간을 겪었다. 그러고는 신기할 정도로 며칠을 아무렇지 않게 보내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제 할아버지와 내가 더이상 영화를 같이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걸.

빅터는 교통사고로 갈가리 찢긴 스파키의 몸을 꿰매고 이어 붙인 뒤, 전기충격을 가한다. 이 똑똑한 소년은 집 안에 있는 모든 전열 기구를 끌어모아 번개의 기운을 받아 죽은 친구를 살려낸다. 팀 버튼의 세계에서 그것은 일단, 현실이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애정을 담아 살려낸 것은 온전히 새 생명을 얻고 내 곁에 함께할 수 있다. 그러나 애정이 없는 부활 기도에는 오히려 생과 사의 순리를 거스른 데 대한 벌이 따른다. 그러니까, 그 방에 있던 물건들을 버리기 전에 모두 모아 간절히 빌어보기라도 할걸 그랬다. 나는 할아버지를 사랑했으니까 벌은 안 받았을 텐데. 어차피 늦었으니 아쉬운 대로 스파키의 영생을 빈다. 진담이 반 이상 섞인 농담이다.

박희아 <아이즈> 기자. 한국 아이돌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며, 최근에는 아이돌 산업 크리에이터들의 인터뷰를 담은 단행본 <아이돌 메이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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