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웅원의 영화와 건축]
[영화와 건축] <택시운전사>의 자동차 추격 신과 검문소 장면의 표현방식을 생각하다
2017-10-19
글 : 윤웅원 (건축가)
우연의 문제 의지의 문제
영화 <택시운전사>.

건축을 설계할 때 사용하는 표현기법 중에 투시도와 엑소노메트릭이 있다. 투시도가 관찰자의 시점으로 건물을 표현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면, 엑소노메트릭은 시점을 벗어난 전체 체계를 보여주는 데 사용된다. 이 두 표현기법은 건축가가 어느 것을 주로 선호하느냐에 따라 설계의 결과물을 달라지게 하기도 한다. 엑소노메트릭이 기계처럼 각 요소 사이의 체계를 갖고 있는 건물을 만든다면 투시도는 좀더 개별적인 상황에 반응하는 건축을 나오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 둘은 표현기법이면서 동시에 서로 다른 설계방법론이다.

나는 <택시운전사>를 보고 나서 조금 의아했다. 개인과 역사가 조우하는 방식을 훌륭하게 조율하던 영화가 왜 생경한 자동차 추격장면을 포함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쉽게 상업적인 영화의 관습으로 이해하기에는 <택시운전사>는 지나치게 잘 만든 영화다.

<택시운전사>를 만드는 과정은 투시도보다는 엑소노메트릭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대부분의 창작 작업은 두 가지 태도가 섞여 있으므로 가깝다는 의미가 투시도적인 특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택시운전사>를 우선 공간의 구조와 이야기의 구조로 나누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어쩌면 이 과정을 통해 자동차 추격 장면을 이해하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택시운전사>는 이야기와 공간이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간의 구조가 보이는 영화가 좋은 이유는 우리의 삶이 공간과 분리할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에서 공간의 구조는 이야기 자체다.

다이어그램을 그려서 <택시운전사>의 공간을 설명한다면, 작은 원 A가 큰 원 B 안에 들어 있는, 두개의 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외부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내부의 작은 원 A라면 대한민국과 외부세계는 큰 원 B로 경계지어진다. 국가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지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국경을 통해서 국가를 관리하는 것은 1970, 80년대 군사독재시대의 흔한 모습이다.

스티븐 홀 도서관 투시도.

공간을 이동한다는 것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치만)는 두개의 관문을 지나 광주로 들어간다. 첫 번째 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가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조성된 시설이라면, 두 번째 관문은 군인들에 의해 광주 외곽에 설치된 임시 바리케이드와 검문소다.

국경이란 국가간에 존재하는 문화·경제·정치적 차이가 물리적인 형태로 구현된 것이다. 외부에 배타적인 국경의 존재는 내부에 다른 경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다양한 형태의 ‘관리’다. 군인을 동원해서 국가 안에 한 지역을 봉쇄시키려고 했던 이유는, 원 안으로부터 퍼져나올 어떤 것이 원 밖의 세계를 위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관리된 세상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던 택시운전사가 봉쇄된 원 안으로 들어갔을 때, 외국에서 온 기자와 달리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겪는다.

영화에서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이 광주로 가는 것은 ‘우연’의 문제다. 그는 광주에 가려는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손님으로 만났을 뿐이다. 하지만 택시운전사가 광주에서 나오는 것도 ‘우연’의 연장으로 다룰 수는 없다. 광주에 들어가는 행위를 통해 택시운전사가 변화되기 때문이다. 이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택시운전사가 자신의 의지로 다시 광주에 들어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택시운전사가 광주의 진실을 목격한 후, 홀로 도망치듯 광주에서 나왔다 돌아가는 인상적인 장면 이후 택시운전사는 더이상 손님을 태우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로 다시 들어감으로써 택시운전사는 손님인 기자와 동등해진다.

<택시운전사>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 중요한 영화다. 나는 처음 영화 제작에 관한 기사를 보았을 때, 제목에도 불구하고, 택시운전사보다는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주인공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정보 자체가 정보의 이동보다는 더 중요할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진짜 택시운전이 상징하는 것, 이동을 통해서 서사를 설명하는 특별한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택시운전사>를 이야기의 구조로 바라보면 크게 세개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세개의 이야기가 수렴하는 곳은 1980년 5월 광주다. 우리가 잘 모르는 택시운전사 김만섭은 밀린 월세 10만원을 벌기 위해 손님을 태우고 광주로 향한다.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기사를 쓰기 위해 광주로 간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광주’는 봉쇄된 상태로 거기에 있다. 세 이야기 중 영화를 실질적으로 끌고 가는 것은 창작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우리가 모르는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다.

<택시운전사>는 특정한 영화가 생각나지 않음에도 원형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 영화 장르가 있다면 아마도 ‘제3세계 종군기자 영화’ 정도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분쟁지역에 들어가, 현지인의 도움을 받으며 취재한 결과를 어렵게 갖고 나오는 영화다. 그런데 <택시운전사>가 흥미로운 점은, 기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관습적인 설정과 달리 취재현장에 기자를 데려다주는 택시운전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라는 것에 있다. <택시운전사>에서 자동차 추격 장면 때문에 가려졌지만 더 낯선 것은 검문소 장면이다. 기자와 택시운전사가 가짜 번호판을 이용해 광주를 빠져나오는 장면에서, 검문소의 한 군인이 택시 트렁크 속에 숨겨진 서울 번호판을 발견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군인은 이들을 그대로 통과시켜준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 이 장면은 나에게 낯설게 느껴졌다. 개연성이 없어서 낯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설명하던 영화가 갑자기 설명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잘 정돈된 엑소노메트릭의 세계에 이물질처럼 투시도의 세계가 느닷없이 들어와서 부딪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장면이, 갑자기 나타난 사복형사들의 지프차와 광주 택시들의 자동차 추격 장면이다. 감독은 ‘선한 군인’의 존재를 설명하는 대신 혹은 설명을 피하기 위해서 빠르게 장면을 바꿔버렸다.

램 쿨하스 도서관 엑소노메트릭.

자동차라는 중요한 요소

사실 상업적인 영화의 관습으로 본다면, 더 자연스러운 것은 ‘선한 군인’을 빼는 것이다. 기자와 택시운전사가 검문소에 도착하고, 군인들이 트렁크에 숨겨놓은 서울 번호판을 발견한 후, 위험에 처한 이들이 검문소를 빠져나올 수 있도록 광주 택시운전사들이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나타난 사복형사들의 추격과 택시운전사들의 희생을 통한 탈출이 연결될 수 있다.

광주 택시운전사들의 희생과 연대를 통해 기자와 택시운전사를 탈출하게 하고 싶은 의도를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선한 군인이라는 ‘우연’과 자신을 희생하는 택시운전사들의 ‘의지’는 서로 충돌하는 요소로 보인다. 추격 장면의 문제는 개연성에 있지 않고 영화 전체의 일관성을 유지하느냐 하는 것에 있다. 게다가 자동차 추격 액션 장면이 갖고 있는 장르의 특성은 바로 전 검문소의 긴장감과 비교되어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하지만 여전히 구조적인 측면으로 보면 <택시운전사> 이야기에서 ‘광주’와 ‘위르겐 힌츠페터’ 대신 ‘택시운전사 김만섭’이 허구의 창작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과 공간적으로 광주가 나오는 행위가 이야기의 정점을 요구한다는 사실 그리고 거기에 택시(자동차)가 영화의 중요한 기본 요소라는 것이 더해지면 자동차 추격 장면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누군가의 말처럼 “세상을 구조로 읽으려는 시도는 자주 실패한다. 피와 살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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