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남연우 감독, 배우 안성민·한명수·이승찬·홍정호가 참석한 <분장> GV 현장
2017-10-23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
<분장>의 감독과 배우들이 10월13일 롯데시네마 부천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남연우 감독의 <분장>(2016)은 주인공 송준(남연우)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들까지 입체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전사가 궁금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지난 10월 13일 롯데시네마 부천에서 <씨네21> 김성훈 기자의 진행으로 열린 <분장>(경기도 다양성영화 지원사업 ‘G-시네마’ 배급지원사업 최우수작) 관객과의 대화(GV)에서 남연우 감독을 포함해 배우 안성민(송혁 역), 한명수(우재 역), 이승찬(지훈 역), 홍정호(이나 역) 등 다섯 배우가 참석해 각자가 연기한 캐릭터를 작업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서로 어떤 인연으로 함께 작업하게 됐나.

=남연우_ 이나 역을 맡은 홍정호는 고등학생 시절 배우의 꿈을 함께 꾸었던 친구다. 그때 만났던 친구들이 지금은 배우가 아닌 다른 길로 갔는데 (홍)정호는 대학로에서 꿋꿋하게 버텨서 너무 멋있었다. <분장>을 처음 준비할 때 함께 제작을 진행했던 PD님이 투자를 받기 위해 이나 역을 인지도가 있는 선배 배우에게 제안하자고 했다. 하지만 투자를 받지 못하고, 혼자서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한 뒤 정호에게 시나리오를 주었고, 결국 함께 작업하게 됐다.

=홍정호_ 우여곡절 끝에 캐스팅이 됐는데 이나 역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한달 정도밖에 없었다. 이나를 아름다운 여성으로 표현하기 위해 매일 고구마 한개 반만 먹으며 10kg을 감량했다. 근육도 빼야 했던 까닭에 하던 운동을 멈췄다. 털을 밀었는데 너무 아파서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다짐한 기억도 난다. (웃음) 트랜스젠더 친구도 소개받았다. 그 친구와 붙어다니면서 목소리 톤도, 걸음걸이도, 제스처도 모두 바꿨다. 감독님과 상의해 대사도 트랜스젠더들이 주로 사용하는 은어로 대체했다. 그 친구가 촬영장을 찾아와 코치를 해주었다.

남연우_ 홍정호의 실제 모습에서 180도 변신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나를 포함해 배우들은 변화할 때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정호와 함께 이나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과장된 모습이 아닌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할 줄 몰랐다. 트랜스젠더 친구와 동거하다시피 붙어다녀서 너무 감동받았다.

홍정호_ 감독님과 함께 <가시꽃>(2012)에 출연해 거친 이미지를 보여준 적 있다. 변신이 힘들었는데 감독님이 거의 터치를 안 하셨다. 현장에서 카메라가 돌아갈 때 트랜스젠더 친구에게 가서 ‘지금 한 거 괜찮았어?’라고 묻곤 했다.

남연우_ 나한테 안 오더라. (웃음) 지훈 역할을 맡은 이승찬씨는 단역으로 출연했던 상업영화 현장에서 만난 형이다. 옛날에 살았던 아파트의 앞집에 살고 있어 너무 신기했다. 이건 정말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1년 반 정도 연기 스터디를 함께하다가 <분장>을 작업하게 됐다.

=이승찬_ 감독님과 동네 술친구인데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전에 지훈 역할의 연기를 시키더라. 감독님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래?’라고 물으면 ‘난 이런 대답을 할 거야’라고 대답했는데 그렇게 나눈 대화가 당구장 시퀀스에 반영됐다(송준과 지훈이 연극 <다크라이프>의 오디션을 본 뒤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다가 송준이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는 장면이다.-편집자).

남연우_ 송준의 친구이자 송혁과 연애를 하는 우재 역은 한명수씨가 맡았는데 <가시꽃>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 영화에 출연했을 때 명수씨는 붐 오퍼레이터로 참여했다. 배우를 꿈꾸는 친구인 걸 알고 있었다. 배우가 카메라 뒤에서 작업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는데 명수씨가 ‘좋은 영화에 참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얘기하더라. 그 말이 인상적이어서 시나리오를 주게 됐다.

=한명수_ 남연우 감독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었는데 막상 출연 제안을 받으니 너무 감동적이었고 기뻤다.

-우재의 단발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역할 때문에 그렇게 설정한 건가.

한명수_ 어릴 때부터 항상 짧은 헤어스타일을 고수했다. 죽기 전에 머리를 한번 길러보자 싶어 기르고 있었는데 마침 우재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남연우_ 다른 배우들의 머리 길이가 거의 비슷해 우재가 긴 헤어스타일이면 괜찮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송준의 동생 송혁을 연기한 안성민씨는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한 친구다. 무대에서 춤을 추다가 말을 하고 싶어 연기를 배우려고 동네 연기학원에 등록했다. 내가 강사로 일하고 있었던 학원으로, 스승과 제자로 처음 만났다.

=안성민_ 제자로서 질문만 하다가 감독님이 ‘내 영화에 출연하지 않을래?’, ‘형이라고 불러’라고 하시니까 진짜 잘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군대 갔다온 뒤 오랫동안 쉬었던 무용을 송혁 역할 때문에 다시 시작했다. 전공은 발레인데 극중에서 현대무용을 하는 설정이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안무를 짜서 반복 연습했다.

남연우_ 정말 준비를 많이 하더라. 성민이가 예전에 무용했던 영상들을 봤는데 날아 다녔더라. 군대를 다녀와 몸이 굳어 있던 성민이에게 ‘이렇게만 해줘’라고 부탁했는데 불평불만 하나 없이 밤새워 무용 연습을 하고, 다시 날아다니게 됐다.

<씨네21> 김성훈 기자, 남연우 감독, 배우 안성민·한명수·이승찬·홍정호(왼쪽부터).

-<분장>은 캐릭터들이 입체적으로 묘사돼 인상적이었다. 남연우 감독이 배우이기도 해서 나올 수 있었던 시나리오가 아닌가 싶다. 감독이 배우이기에 <분장>이 다른 상업영화와 달랐던 점이 있나.

이승찬_ 얘기한 대로 감독님이 배우이기도 해서 배우들이 가진 여러 면모를 최대한 끄집어내려고 하셨다. 송준의 입장에서 지훈이 꽉 막힌 사람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더라면 그저 나쁜 사람처럼 보이도록 연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연우 감독은 지훈은 지훈대로 표현하려고 연출하셨다.

-관객_ 학생 대상의 성교육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 영화 속 몇 장면은 교육에 활용하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감독님은 <분장>을 찍고 난 뒤 어떤 변화가 생겼나.

남연우_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영화는 스스로 ‘남연우의 성장영화’라고도 생각한다.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낯선 것이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얼마 전, 초등학생들이 야외에서 미술수업을 하는 모습을 봤는데 선생님이 아이들의 그림을 보고 “땡” 하는 거다. 억압적인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그림에는 정답이 없는데 말이다.

한명수_ ‘이해한다’는 말을 할 때 좀더 조심스러워진 것 같다. 나 자신의 행동도 이해가 안 되는데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건가 싶다. 영화를 찍으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했는데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성소수자인 걸 아는게 아니잖나. 사회가 그걸 두고 ‘나쁜 거야, 잘못 성장한 거야’라고 규정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