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유]
<폭력의 씨앗> 이가섭 - 내면의 불안이 드러나는 얼굴
2017-10-27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한국영화의 새로운 얼굴이 궁금하다면 이가섭을 주목하라. 첫 주연작인 임태규 감독의 <폭력의 씨앗>에서 이가섭은 한국 군대 문화의 폭력에 노출된 군인 주용을 연기한다. 강압적인 선임들과 말 안 듣는 후임 사이에서 하루 동안 주어진 주용의 외박은 악몽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폭력은 군대뿐만 아니라 주용의 가정에까지 드리워져 있다. 롱테이크로 주용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카메라에 노출된 채, 이가섭은 이 사회의 폭력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 표현해낸다. 안정된 연기와 신선한 마스크로 영화의 톤을 잡아준 배우 이가섭을 만났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의 호평과 수상(한국경쟁부문 대상, CGV아트하우스상) 이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첫 주연작인데 지금 심경은.

=<폭력의 씨앗>이 스페인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감독님과 다녀왔다. 나로서는 모든 게 처음이다. 주연도 처음, 영화제 초청도 처음, 해외에 간 것도 처음, 너무 좋아하던 <씨네21> 인터뷰도 처음이다. 처음이 너무 좋아서 불안하기는 하다. 그래도 무척 행복하다.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의 호응은 어땠나. 한국의 특수한 군대 문화를 다루었는데.

=영화 끝나고 300명이 넘는 관객이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는데 정말 울컥하더라. 막 라이브 공연을 마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관객이 한국 군대가 그렇게 폭력적이냐는 질문을 많이 했다.

-임태규 감독이 주용은 ‘정보가 별로 없어서 선한지 악한지 헷갈리는 배우에게 맡기고 싶었다’며 캐스팅한 이유를 들었다.

=<양치기들>(2015, 이가섭은 이 영화에서 누명을 쓰고 살인사건 용의자가 된 준호를 연기했다)에서의 모습을 워낙 잘 봐주신 것 같다. 한 2분 정도 출연했는데. 장편 주인공으로 나를 캐스팅한 게 잘된 일일까 싶더라. (웃음) 감독님과 만나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연기자로는 어떻게 지냈는지 한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었다. 영화 전체를 끌어나가야 하는 역할이라 불안하기는 했지만 고심은 안 했다. 무조건 해야 했다.

-주용은 폭력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답습해가는 인물이다.

=주용이라는 인물이 매우 내성적인데, 나와 어딘가 좀 닮은 구석이 있더라. 그가 어떻게 자라왔을지, 인물의 전사에 대해 감독님과 많이 대화를 나눴다. 주용이지만, 나 가섭으로 연기한 부분이 많았다.

-카메라가 주인공 주용의 뒤를 시종 뒤쫓는 방식이 라슬로 네메시의 <사울의 아들>(2015)을 보는 듯했다. 핸드헬드, 롱테이크로 주용의 뒤를 밟는 카메라에 어떻게 적응해나갔나.

=5분짜리 테이크를 찍다가 4분30초에서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가야 했다. 전체가 16회차였는데 리허설을 많이 했다. 슛 들어가면 연극 무대에선 기분이었다. 식당 장면이 긴데, 선임들에게 술을 따르는 장면도, 계급에 맞게 순서를 외워서 틀리지 않게 했다.

-183cm의 큰 키, 마른 몸이 흔들리는 카메라에 노출되면서 주용의 불안한 심리를 배가시킨다.

=작은 키의 선임이 큰 키의 후임을 올려다본다. 그런데 그게 묘하게 더 공포감을 주더라. 주용의 불안함을 표면적으로는 너무 드러내지 말자고 생각했다. 가만히 있는 와중에도 내면의 불안함이 더 표현될 수 있다고 봤다. 그 표현을 완급 조절하는 것이 어려웠다. 필립(정재윤)과 싸우는 장면에서도 너무 잘하지 말자, 액션스쿨 액션처럼은 하지 말자 했다. 처음 쓰는 폭력이니 좀 어색하게 가자고 했다.

-출연작을 돌아볼 때, 아직 관객에게 노출이 많이 안 된 편인데 큰 역할을 맡았다.

=그간은 배역을 맡기 위해 많이 노력한 시간이었다. 영화인들끼리 구인정보를 나누는 ‘필름메이커스’(www.filmmakers.co.kr)가 ‘즐겨찾기’돼 있는데, 정말 하루에 한번씩 들어갔다. 20대 남자배우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면 뭐든 다 참여할 각오였다. 그렇게 몇 작품 하다보니, 노출이 되고 그렇게 또 찾아주고 하더라.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에서 연기를 공부했다. 연기는 언제부터 시작하게 된 건가.

=원래는 프로 바둑기사를 꿈꾸며 10년 정도 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충동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연기는 바둑기사와는 정반대 성향의 일이라 관심이 갔다. 바둑으로 노력한 시간이 있으니, 부모님이 화를 내셨지만 ‘한달 하다 말겠지’ 하는 심정으로 연기학원에 보내주셨다. 그렇게 대학에 진학하고 고향 부산을 떠나 서울에 왔다.

-얼마 전 소속사(사람엔터테인먼트)가 생겼다. <폭력의 씨앗>의 호평도 이어지고 있고, 활동에도 변화가 왔을 것 같다.

=아직 캐스팅 제안은 별로 없다. (웃음) 영화를 보시고 사람엔터테인먼트에서 고맙게도 연락해와 소속사가 생겼다. 엄청나게 달라진 건 없는데 연기를 향한 마음가짐이 더 확고해진 것 같다. <파수꾼>(2010)의 이제훈 선배님처럼 내적으로 깊은 고민이 있는 역할을 연기해보고 싶다.

영화 장편 2017년 <폭력의 씨앗> 2015년 <양치기들> 단편 2016년 <오래된 아이> 2011년 <복무태만> 2011년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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