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딱히 기분 좋은 일도 없고, 한동안 한국과 미국의 야구에 빠져 지냈기에 야구 얘기나 해보려 한다. 먼저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창단 55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전해지지 않을 축하인사부터 보낸다. 애스트로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보이후드>(2014)를 보면서였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고향이 휴스턴이고 또한 애스트로스의 팬이었기에, 영화 속 아버지(에단 호크) 또한 자식들과 경기장을 찾은 장면에서 거의 PPL을 하듯 애스트로스를 찬양했다. 실제 링클레이터는 야구선수가 꿈이었지만 부상을 당하면서 더이상 야구를 하지 못한 개인적인 기억이 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리처드 링클레이터: 꿈의 연대기>(2016)나 자신이 직접 연출한 <에브리바디 원츠 썸!!>(2016)에 잘 담겨 있다.
아무튼 과거 실제 현장에서 촬영한 <보이후드>에서 그들은 ‘로켓맨’ 로저 클레멘스가 마운드에 섰던 경기를 지켜본다. “멋지지? 저 선수 공은 아무도 못 쳐. 우린 역사의 현장을 보고 있는 거야. 43살 선수가 아들뻘 되는 선수를 삼진으로 돌려세웠어. 방어율이 1.47이야. 믿어져?” 방어율로 유추해보건대, 영화 속 그 장면은 2005년에 촬영됐을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경기처럼 보이는 그 장면은 영화에서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은퇴를 선언했던 로저 클레멘스가 고향팀인 애스트로스로 돌아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던 때였지만, 그로부터 몇년 뒤 그는 약물복용 의혹 속에 과거 화려했던 경력마저 의심받게 된다. <보이후드>가 얘기하는 시간과 삶의 가변성이라는 점에서 보면, 바로 2005년 그 빛나는 순간의 로저 클레멘스는 은퇴 번복과 경력 추락 사이에서 의미심장한 영화 속 등장이라 할 수 있다.
월드시리즈에서 아쉽게 애스트로스에 패한 LA다저스에도 역시 전해지지 않을 위로인사를 보낸다. LA다저스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바로 아벨 페라라의 <악질경찰>(1992)이다. <악질경찰>에서 마약에도 손대는 비리형사(하비 카이텔)는 동료 형사들과 꽤 큰 판돈을 걸고, 뉴욕 메츠와 다저스간에 벌어진 7전 4선승제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내기 도박에 빠져든다. 그리고 매번 지면서도 다저스에 베팅한다. 차 안에서도 오직 야구 중계만 듣는데, 중요한 순간 병살타를 치자마자 자동차 오디오 시스템에 총을 갈겨버릴 정도다. 범죄조직으로부터 빌린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불구하고 내기 도박에서는 계속 지게 되는 끔찍한 상황, 영화 내내 들려오는 야구 중계는 그야말로 주인공의 어깨를 짓누른다. 게다가 당시 다저스에 새로이 합류한 강타자였지만 ‘먹튀’나 다름없던 대릴 스트로베리는 삼진을 밥먹듯이 당하며 그의 심기를 극도로 자극한다. 실제 스트로베리도 마약에 손댄 적 있으니 브라운관의 안과 밖에서 그 둘은 묘한 대구를 이루는 셈이다. 마치 이번 월드시리즈처럼 7차전까지 이어진 그 시리즈에서 다저스의 패배와 함께 그 자신도 삶의 패배를 겪게 된다.
다시 우승팀 애스트로스 얘기로 돌아오자면, 애스트로스는 1965년 세계야구 역사상 최초로 돔구장인 애스트로돔을 지어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건설 당시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불린 말 그대로 ‘꿈의 구장’의 탄생이었다. 2005년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피해를 본 루이지애나주 이재민의 임시 거처로 이용되기도 했고, 바로 이번호 기획기사(44∼48쪽 참조)로 다룬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에서 바로 그 1973년 세기의 성 대결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 경기장에서 여러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