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이 세상의 한구석에> 이 세상의 한구석에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2017-11-15
글 : 곽민해 (객원기자)

히로시마 출신의 스즈(노넨 레나)는 18살 되던 해 군항 도시 쿠레의 슈사쿠(호소야 요시마사)에게 시집을 간다. 스즈가 쿠레로 거처를 옮기는 1944년을 시작으로, 패전 이후인 1946년까지 그가 겪는 전쟁사가 드러난다. 이들에게 전쟁은 열강 사이의 세력전이나 제국주의 같은 객관화된 사실로 명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밥상에서 흰 쌀밥이 사라지고, 기모노 대신 천이 적게 들고 활동이 편한 몸빼를 지어 입고, 매일 아침 군함이 즐비한 앞바다를 보며, 폭격이 있을 때마다 방공호로 대피해야 하는 일상의 변화에서 ‘체감’하는 것이다. 수채화의 서정적인 색채, 일기장을 옮긴 것 같은 스즈 시점의 섬세한 대사는 전쟁을 겪은 평범한 이들의 삶에 공감대를 자아낸다. 동시에 영화는 스즈가 미처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관객의 적극적 읽기를 요한다. 스즈는 암시장에 갔다가 길을 잃고 유곽에서 일하는 린의 도움을 받는다. 그에 눈에 비친 유곽은 좋은 향기가 나는 여성들이 모인 곳으로 등장할 뿐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사실을 상상하며 전쟁 당시의 상황을 폭넓게 상상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화자의 눈으로 그리는 전쟁영화는 전쟁을 미화한다는 오명을 쓰기 쉽다. 이 작품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물 건너온 음식과 옷을 입고 있음을, 어느새 전쟁의 산물을 누리고 있음을 깨달은 스즈의 ‘자각’으로부터 보다 나은 태도를 견지하려 한다. 2017년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애니메이션. 주변 인물의 사연이 더 자세하게 드러나는 원작 만화와 함께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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