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우디 앨런 / 출연 우디 앨런, 다이앤 키튼 / 제작연도 1979년
지금이야 영화를 찾아보는 일이 방 안에서 해결되지만, 1990년대 초반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전설같이 들려오는 영화를 보려고 해외에서 레이저 디스크를 가져온 분들에게 무릎을 꿇는 것 정도는 자존심에 아무런 상처가 되지 않았다. 그때 <맨하탄>을 보기 위해 신촌 어딘가로 새벽같이 달려갔다. 누군가의 레이저 디스크를 보기 위해 10여명의 덕후들이 마치 지하교회 신자들처럼 모여들었다. 도심 속 새벽 시간에 작은 불빛 하나를 들고 금지된 율법서를 읽듯이 스크린에 몰두했었다.
흑백 화면의 뉴욕 풍광은 10여명의 신자들을 금세 매료시켰다. 훌륭한 연기자들이 뱉어내는 자기 합리화와 조롱의 대사들에 20대 초반 신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멘’을 외쳤다. 아직 세상에 나가지 않은 20대 신자들은 그래, 삶은 역시 부조리하고, 얄팍한 자기 욕망을 이런저런 태도로 숨기는 기성세대들로 가득한 곳이야, 라고 외치며 영화에 나오는 뉴욕의 카페와 클럽과 센트럴파크를 동경했다.
42살에 그 영화를 다시 꺼내서 봤다. 다시 꺼내보고 알았다. 그때 그 형님(우디 앨런)이 42살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 42살의 남자는 당당하고 자신 있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며 얼마든지 영화적 형식으로 유머를 날릴 수 있구나, 싶어서 동경했지만, 42살의 남자는 진심으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불안에 떨 수도 있다는 것을.
영화에서 우디 앨런 형님은 아이삭이라는 방송작가로 나온다. 아이삭은 가짜 웃음을 파는 방송에 괴로워하며 미성년자 여자친구를 만나고, 유부남인 친구의 내연녀를 사랑하고, 내연녀는 유부남 친구에게 다시 돌아가고, 그는 미성년자 여자친구에게 다시 돌아간다. 42살의 남자는 끊임없이 사회와 관계의 연약함으로 인해 불안 증세를 보인다. 상황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욕망의 형태는 그가 어디 한곳 마음을 두기가 어렵게 만든다. 표리부동한 세상 이치에 닳고 닳은 42살의 남자는 가장 연약하고 불안정해 보이는 17살 여자친구에게 끊임없이 세상에 나가라, 더 많은 남자를 만나라, 더 많은 변화를 겪어봐라, 당연히 일어날 변화와 변덕을 준비하라고 설파한다. 다른 여자를 만나기 위해, 죄의식을 덜기 위한 위선의 수단으로.
영화의 엔딩에는 17살 여자친구의 답변이 나온다. 세상엔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걸, 모든 관계와 감정이 불안정하지만은 않다는 걸. 그리고 42살의 남자가 그 답변을 듣는 오묘한 표정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42살에 그 표정을 다시 보니 그의 ‘불안’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그저 웃기려고 불안한 정서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불안했던 것처럼 보였다. 20대 초반에 본 42살은 42살이 되어 다시 보니 생각보다 탄탄하거나 여유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불안을 느낄 근거는 더 많아지고, 견딜 수 있는 체력은 더 약해지는 나이였다. 그는 가장 불안정한 나이라 할 수 있는 17살 여자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맨하탄>은 <애니홀>과 함께 아직도 우디 앨런 형님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자기 고백적이고 내적 고통과 갈등이 시대와 영화적 형식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작품들이다. 사실 이후의 작품들도 훌륭하지 않다고 말할 작품은 드물긴 하지만 여전히 이 전성기 때 작품들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다. 그 이유는 나 역시 더 살아봐야 알 것 같다. 자신의 내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어느 정도 솔직한 영화적 태도를 보였던 시절을 넘어 관조와 연륜과 통찰의 지점으로 작품의 방향이 흘러간 것인지, 아니면 그저 육체적 쇠퇴와 함께 고통과 번민에 무감각해져버린 것인지.
신연식 제작자·배급업자·감독·작가.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목표인 영화인. <페어러브> <조류인간> <프랑스 영화처럼> <로마서 8:37> 등을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