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지아장커 / 출연 한산밍, 자오타오 / 제작연도 2006년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을 시작으로 해 정성일 선생님의 <키노>를 보며 고교 시절을 보냈고 트뤼포의 영화를 사랑하는 3단계를 몸소 실천하며 20대를 보냈다. 지금은 스틸사진을 찍으며 살고 있지만 사진을 전공한 적도 배운 적도 없다. 20대 내내 10개의 단편을 만들어 여러 영화제에 출품해봤지만 기별이 없는 걸 보고 내가 영화를 만드는 데 재능이 없음을 느꼈다.
그 후에 류승완 감독님 작품의 현장편집으로 시작해서 충무로에서 연출부 생활을 하게 됐다. 그것도 내 뜻대로 되는 건 없었다. 아무리 애써봐도 내가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 늘 내 앞에 기다리고 있었고 그런 현실과 실랑이를 하다 연출부를 관뒀다. 당시에는 내가 뭘 할 것이라곤 생각해본 적 없었고 나이 서른이 되기 전에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진로는 사진을 찍는 일로 흐르기 시작했고 남들이 몇년을 고생해서 시작할 스틸작가를 불과 몇년 사이에 입봉하게 됐다. 그렇게 어렵사리 잡은 기회가 <부당거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 그릇에 벅찬 영화였다.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버티고 악을 쓰면서 작업했다. 그렇게 발버둥을 치며 버티는 수밖에 없었던 시절에 보고 참 많이 울었던 영화가 지아장커 감독의 <스틸 라이프>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공간이다. 산샤라는 수몰지역으로 돌아와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남자와, 역시 잃어버린 남편을 찾는 여자가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사람들의 욕망에 대해 자비가 없다. 사람이 가진 감정은 결핍과 갈망뿐이다. 삶은 잔인하게도 참 묵묵히 전진하고 삶은 그렇게 발맞추지 못한다. 그리고 그 공간에 희망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찾아가는 공간에는 파괴밖에 없다. <스틸 라이프>는 무언가 끊임없이 운동을 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있는 것을 사라지게 하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먹먹하게 관조하고 체험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체험을 강요당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영화는 건조하다. 그 당시의 나에겐 현실이 그렇게도 감당하기가 힘든 일이었나보다. 온전함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상황과 온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자아가 충돌했던 그 시절에 만난 <스틸 라이프>는 온전히 거울을 보는 것 같은 영화였다. 그리고 그런 현실과는 반대로 영화는 너무나 시적이다. 그 공백에 끊임없이 나의 삶이 끼어든다. 내가 느꼈던 삶의 조각난 파편들이 이 영화에 깨진 유리처럼 바닥에 깔려 딱딱한 발바닥을 잘게 잘라내는 영화였다. 수몰지역에서 삶의 의지를 온전히 세워보고자 했던 모든 이들이 절망을 겪는 결말을 다시금 보면서 삶이란 참 무겁고 여전하다는 생각을 했다. 온전히 삶이란 단어가 참 무섭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희망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굉장히 서투르고 모가 났지만 흘러가는 삶은 멈추지 않을 테니.
10년이 지나 이 영화를 보고 그 당시 서러웠던 내 인생에 잘 버텼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은 없었지만 나는 버텨냈으니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보며 버텨내야 하는 내일의 두려움과 셀렘에 대한 망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오늘이 아무리 힘들어도 내일 콜타임에 현장은 시작될 테니까. 문득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지아장커 감독이 일촬표(일일촬영계획표)를 짜면서 영화의 영감을 얻은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만… 자야지. 내일 촬영이니까. 이 영화로 인해 굉장한 영감을 받았고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부당거래> 작업 당시에 오마주를 하게 된 한컷을 공유한다.
김설우 스틸작가. <베테랑> <내부자들> <브이아이피> 등 범죄영화 촬영현장만을 가득 찍다가 현재 <안시성> 스틸을 찍고 있다. 글을 써보니 <씨네21> 기자들의 노고에 존경을 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