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잠들다>는 장 자크 베넥스가 1986년에 만든 <베티블루>의 설정을 그대로 따온 영화다. 두 남녀의 사랑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은 물론이고 조연들의 역할까지 원본에 따라 충실하게 ‘배분’했다. 집주인이 여주인공의 속옷을 들어올리며 희롱하는 장면까지 빼놓지 않은 걸 보면 감독의 꼼꼼함(?)은 도가 지나친 감이 있다. 내친 김에 베티의 상실감까지 훔쳤으면 좋으련만. 영화는 <베티블루>를 완벽하게 흉내내지 못한다. “운명은 내가 바라는 것을 들어주지 않아”라고 울며 말하던 베티, 비정한 욕망의 신에게 자신의 한쪽 눈을 버리면서 복수하는 베티가 여간해서 수빈과 겹쳐지지 않는다. 수빈 역시 가슴을 도려내지만 말이다.
힘들이지 않고 본뜬 탓에 괴로움은 보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베티블루>를 기억한다면 변주없는 반복의 지루함에, 보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힘든 스토리의 비약 때문에 그렇다. 더구나 신파를 끼워넣은 결말 부분은 보기 민망할 정도다. 정신병원에 감금된 수빈에게 “내가 언니 것을 다 빼앗았다”며 과거사를 들먹이며 용서를 구하는 수빈의 동생이나 넋을 놓아버린 연인을 눕힌 뒤 라면을 먹으며 엉엉 울어대는 재모에게 처연한 시선을 주기란 쉽지 않다. 그 탓에 정박중이던 폐선에 몸을 싣고, 죽음이라는 극단의 도피를 행하는 상황마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광고와 사진작업을 해오다 데뷔한 박성일 감독은 “연인들의 소통과 정체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싶었다”고 했지만, 두 남녀의 감정을 끈질기게 따라가야 할 대목에서 카메라는 멈춰선다. 자해한 뒤 뛰쳐나가는 수빈과 그녀를 뒤쫓는 재모를 단 몇컷으로 처리하는 장면이 대표적. 실루엣으로 처리한 섹스 장면이나 악기를 바꾸어 반복적으로 내보내는 선율만으로 어설픈 드라마의 이음새를 메우려 했다면 욕심이 너무 과했던 듯 보인다.
이영진 기자 ant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