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주성철 편집장] 메이드 인 홍콩, 메이드 인 차이나
2017-12-08
글 : 주성철

장만옥을 좋아했던 엄마는 급기야 아들 이름을 장만육이라 지었다. 옴니버스영화 <콰트로 홍콩>(2010)에 실려 있는 프루트 챈의 단편 <13분 만에 마스터하는 홍콩영화사>(원제는 ‘노란 슬리퍼’라는 뜻의 ‘黄色拖鞋’)에서 바로 그 주인공 소년 장만육은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던 어머니 손에 이끌려 거의 극장에서 살다시피했다. 이소룡과 진관태의 영화를 비롯해 <연지구>의 장국영과 매염방, <우견아랑> <정전자> <첩혈속집>의 주윤발, <폴리스 스토리>의 성룡, <황비홍>의 이연걸, <무간도>의 유덕화와 양조위까지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하나둘 등장한다. 무명배우였던 어머니가 가장 좋아한 영화가 바로 <아비정전>이다. 홍콩의 명물 트램이 지나가는 길 위로 장만옥과 유덕화가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그 유명한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하면서, 바로 그 장만옥의 자리에 엄마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그때 엄마가 신고 있던 게 바로 이 영화의 원제이기도 한 노란 슬리퍼다. 유덕화는 프루트 챈의 초딩 친구이자 그의 데뷔작 <메이드 인 홍콩> 제작자이기도 했으니, 그는 홍콩영화에 대한 자신의 깊은 애정을 장만옥과 유덕화를 빌려 그렇게 드러냈다.

홍콩영화에 대한 애정은 ‘홍콩 사람’ 프루트 챈뿐만 아니라 ‘중국 사람’ 서쟁도 만만찮다. 언제나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를 들었다 놨다 했던 <인재경도>(2010)와 <로스트 인 타일랜드>(2012)로부터 이어지는 <인재경도>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인 <로스트 인 홍콩>(2015)에서 서래(서쟁)는 오래전 헤어졌던 연인 양이(두견)가 홍콩에서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에 홍콩으로 향한다.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민머리로 유명한, 이른바 서쟁의 ‘로스트 3부작’이라 부를 수 있는 이 시리즈는(주연만 맡은 <인재경도>를 제외하면 서쟁이 언제나 연출과 주연을 겸하고 있다) 늘 낯선 여행지에서 벌어지는 모험담을 그리고 있는데, <가을날의 동화> <아비정전> <첨밀밀> <유리의 성> <연지구> 등이 영화 홍보 벽화와 극장 상영 영화 등으로 등장하며 옛 홍콩영화의 향수를 자극한다. 심지어 서래가 <폴리스 스토리>의 성룡처럼 우산 하나에 의지해 이층버스에 매달려가는 재기 넘치는 장면 연출로도 이어진다. 그렇게 옛 홍콩영화의 정서가 홍콩은 물론, 딱히 공식적인 교류가 없던 시절에도 그를 몰래 향유했던 중국 본토 모두에서 추억 속으로 침잠해가며, 중화권 상업영화는 <인재경도> 시리즈를 대표로 하여 해외 로케이션에 기반한 대작 위주로 나아가고 있다. 그 경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번호 특집 중 54∼57쪽 김성훈 기자가 쓴 ‘중국판 애국영화 <특수부대 전랑2>의 엄청난 흥행이 말하는 것’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도 ‘메이드 인 차이나’ 영화들의 속을 채운 것은 여전히 ‘메이드 인 홍콩’ 영화들이다. 여러 의미에서 ‘중국의 <쉬리>’라는 표현이 적합한 <특수부대 전랑2>의 일등공신은 성룡이 이끄는 무술팀 ‘성가반’이며, 감독 겸 주연을 맡은 우징 또한 원화평이 공동연출한 <태극권2>(1996)를 시작으로 <살파랑>(2005) 등을 통해 선배 이연걸이 그랬던 것처럼 홍콩영화계에서 단련한 인물이다. 그리고 진가신이 제작을 맡은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주동우와 마사순을 보며 떠오른 영화도 바로 홍콩 욘판 감독이 연출한 <유금세월>(1988)의 종초홍과 장만옥이었다. 뭐랄까, 갈수록 ‘메이드 인 차이나’와 ‘메이드 인 홍콩’ 사이의 이질감이 희석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중국 블록버스터의 거대 예산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불과 2년의 시간 동안 <전랑> 1편과 2편 사이의 거리감은 또 어떤가. 그야말로 확 달라졌다. 그처럼 중국영화는 계속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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