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그렇게 극적으로 도착하지 않는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한 인간에게 닥친 비극을, 실제의 체감으로 기술하는 영화다. 시골 이발사 모금산(기주봉)은 의사의 갑작스런 암선고에도 ‘드라마처럼’ 절규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젊은 시절 꿈꿨던 배우의 꿈을 실행하려 한다. 서울로 영화공부하러 간 아들 스데반(오정환)을 불러앉혀 ‘계획’을 설명하지만 아버지의 의중을 알 길 없는 아들에게는 이 모든 요구가 무리해 보인다. 흑백의 화면 속에서 일상, 계획, 여행, 작별, 성탄절로 이루어진 총 5개의 챕터는 생의 마지막, 모금산이 아들의 협조로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그는 마침내 찰리 채플린이 되어 무성영화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를 완성한다.
모금산이 일하는 낡은 시골 이발소, 동네 수영장, 그가 매일 저녁 한잔의 술을 마시는 치킨캐슬의 벽쪽 자리, 가끔 들러 마시는 여로다방의 쌍화차 등 모금산이 마주하는 풍경은 느리고 더디다. 암선고와 출생의 비밀 등 제법 센 설정들이 그의 삶에 진입해 있지만 비극적 소재가 이 풍경과 조우하는 순간, 드라마틱한 속도와는 사뭇 멀어진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영화 속 블랙코미디를 염두에 둔 듯, 영화는 덤덤한 반응과 엇박자의 웃음으로 가득하다. 흑백화면, 인물과 공간, 풍경을 부지런히 오가는 촬영 기술, 빈티지한 것들을 적재적소에 담아낸 미술까지 이 정서에 사이좋게 일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풍경을 사실처럼 완성하는 것은 설명이 필요없는 배우 기주봉의 연기다. 단단하고 사려깊고, 그래서 쓸쓸하지만 애정어린 모금산이 그렇게 탄생했다. 단편 <만일의 세계>로 주목받은 임대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