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은 다 다루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비념>(2012)으로 제주 4·3 사건을, <위로공단>(2014)으로 한국 여성 노동자들의 역사를, <려행>(2016)으로 탈북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임흥순 감독이 개인전 <MMCA 현대차 시리즈 2017: 임흥순-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7년 11월 30일~2018년 4월 8일)에서 다루는 것은 ‘분단’과 ‘전쟁’이다. 이번 전시에선 40여분짜리 3채널 영상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20여분짜리 2채널 영상 <환생>, 연관 아카이빙 작품 등이 공개된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란-이라크전쟁을 모두 경험한 이정숙 할머니, 중국으로 망명한 항일 독립운동가 정정화 할머니, 지리산에서 가족을 잃은 빨치산 출신 고계연 할머니, 제주 4·3 사건을 겪고 일본으로 밀항한 김동일 할머니가 전시에 영감을 준 주인공들이다. 역사 속 이름 없는 누군가가 아닌 구체적 개인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임흥순 감독은 예술로서의 역사 쓰기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는 작가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자로서, 미술과 영화를 오가는 예술가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임흥순 감독을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났다.
-<위로공단> 이후 <려행> <환생>을 완성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고 이번에 전시까지 열었다. 쉼 없이 작업 중이다.
=자의 반 타의 반 그렇게 됐다. <환생>은 <위로공단>을 만들 때 촬영하고 있던 작품인데, 아랍에미리트 샤르자비엔날레에서 먼저 선보였다. 국내에서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려행>은 <위로공단> 이후 프로젝트를 의뢰받아서 시작했던 작품이다. 나는 좀 쉬고 싶은데 내 의지대로만 움직여지지 않더라. 전시 의뢰가 들어오고, 또 관심을 갖고 작업에 착수하게 되고, 그런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것 같다.
-‘MMCA 현대차 시리즈’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개인전을 열게 됐다. <위로공단> 땐 변방의 아티스트로 소개됐는데 그사이 대형 전시의 주인공인 주류 아티스트가 됐다. 그 차이를 실감하나.
=<위로공단>으로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받은 지 2년이 됐고, MMCA 현대차 시리즈 전시 작가로 선정된 게 2016년 1월의 일이다. 그동안 MMCA 현대차 시리즈는 사전 피칭 과정 없이 작가 한명을 선정하는 연례 전시였는데 이번엔 피칭, 일종의 경쟁과정을 거쳐서 선정됐다. 개인적으로는 주류 작가니, 비주류 작가니 그런 차이를 느끼거나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주류 작가라는 포지셔닝이 부담스러운가.
=변방에 있는 게 마음 편한데 공식적인 자리에 서야 할 때가 있으니 부담스럽다. 한편으론 변방의 이야기를 밖에서만 할 수 없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거니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비념> 때도, <위로공단> 때도 그런 개인들을 많이 생각했다. <위로공단>을 만들 때는 한진중공업의 고 김주익 열사를, <비념> 때는 이덕구 제주 인민유격대 사령관 생각을 많이 했다. 그분들도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야 했기 때문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그런 비슷한 느낌이다.
-역사에서 소외된 여성, 이름 없이 스러져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작가를 주류 미술계가 적극 소환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노동자의 이야기를 노동자가 하고 비주류의 이야기를 비주류가 하는, 그런 목소리가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주류의 학자와 지식인들이 대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이야기하는 게 중요해졌다. 아는 것을 얘기하는 것과 체험하고 느낀 것을 얘기하는 것은 다르다. 당사자의 이야기가 좀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가진다. 나 역시 노동자 부모 밑에서 자랐고, 내 삶에서 출발한 이야기들이 작업으로 이어져왔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조금은 다르게 다가간 면이 있는 것 같다.
-전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의 주제는 어떻게 잡은 건가.
=전시를 기획하면서 내 이전 작품들을 돌아봤는데, 장편만 보더라도 <비념> <위로공단> <려행>이 분단 문제를 공유하고 있더라. 제주 4·3, 노동 문제, 탈북 여성이야기 모두 과거와 현재를 연결짓다보면 해결될 수 없는 근원적 문제가 분단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건 현재를 다시 보기 위해서인데, 그렇다면 분단 당시의 상황은 어땠을까, 우리 사회를 갈라놓은 게 뭘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이라는 제목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분단 전후 시대를 산 분들이 떠올랐다. 전시의 주인공인 네 할머니(이정숙, 고계연, 김동일, 정정화)는 그동안 작업하면서 만난 분들이다. 할머니들을 통해서 해방 이후 사라진 진보 진영의 역사를 다시 써보고 싶었다. 독립운동과 빨치산과 제주 4·3을 연결하는 작업이 의미 있을 것 같았다.
-한국 현대사에서 희생되고 소외된 여성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이 어떤 의미를 지니나.
=특히 이번 작업을 하면서 좀더 과거로 들어가게 된 것 같다. 역사의 중요한 시기를 통과한 할머니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데, 실제로 그들을 만나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제주 4·3을 겪고 일본으로 밀항했던 김동일 할머니와는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할머니의 얘기를 듣는데, 과거가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 감정을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었다.
-영상작품 <환생>은 베트남전쟁과 이란-이라크전쟁을 경험한 아시아 여성의 이야기다. 어떻게 베트남전쟁, 아시아 여성의 삶으로까지 관심 주제가 확대됐나.
=회화를 할 때부터 가족과 개인사에 초점을 맞춘 작업들을 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건설현장과 방직공장에서 일한 노동자 계급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노동문제,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또 아버지 세대에 대한 작업을 하다보니 베트남전쟁과 연결이 되더라. 작업을 하는 과정에선 나와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시도하는 편이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69년에 참전 군인들이 많이 희생됐는데 내가 혹시나 죽은 참전 군인의 환생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임흥순 감독은 1969년생이다). 베트남전쟁 참전 부대 중 전투에 앞장섰던 부대가 해병대 소속 청룡부대였는데 내가 또 청룡부대 출신이다. 그런 식의 연결고리를 스스로 발견하면서, 아버지 세대를 대신해 미안함과 반성을 담은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또 2012년에 우연히 이란을 방문했다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란-이라크전쟁을 모두 겪은 이정숙 할머니를 만났다. 그러면서 전쟁과 아시아에 대한 주제로 관심이 확장됐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과 <환생> 모두 과거와 현실을 매개하는 형식으로 재연극을 적극 활용한다. <환생>에선 이란 배우들의 과장된 재연극이 낯선 감흥을 주더라.
=우선 베트남과 이란에서는 촬영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관계자 인터뷰를 시도하려 해도, 촬영을 하면 국가기관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지켜본다. 그런 상황에서 할머니들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여러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인터뷰를 대신할 수 있는 방식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그러다 우연치 않게 이란의 연극학원 같은 곳에 가게 됐다. 전사자의 어머니를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다고 했고, 연기경험이 없는 젊은 배우들이 전사자 어머니를 연기하는 모습을 봤다. 그런데 그 상황 자체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실제 할머니들이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황을 그들의 손녀뻘 되는 젊은 친구들이 극적으로 표현하니 말이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에 출연한 배우들도 실제 지리산 빨치산이었던 할아버지, 북한이 고향인 친구들,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배우 등 맥락을 가진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처음부터 과거를 그대로 재연하는 것엔 흥미가 없었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환생> 모두 친절한 내러티브가 있는 영상은 아니다. 서사와 설명이 생략된 상징적 이미지들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3채널인 동시에 2채널이라고 생각하는데, 스크린 반대편 벽에는 할머니들의 삶의 주요 행적을 기록한 ‘시나리오 그래프’가 있다. 영상과 시나리오 그래프가 등을 맞대고 있는 구조다. 시나리오 그래프를 꼼꼼히 봐야 하긴 하지만, 영상과 연대기표를 함께 보면 상징적 이미지들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설명하지 못한 나의 능력 부족 탓도 있겠지만 굳이 영상을 통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이 상징적 이미지와 시나리오 그래프, 설치물을 보면서 그 모든 것을 짜깁기해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게 전시의 매력인 것 같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와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영상의 차이인가.
=우리에겐 여러 감각이 있다. 그런데 서사 중심으로, 이성적으로 작품을 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미술관이라는 낯선 공간에선 이성이 아닌 감각을 깨우는 게 중요하다. 다채널 영상의 경우 앞면, 옆면, 뒷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시각과 사고를 확장시켜준다. 내가 보는 것 이상의 세상을 경험하고 사고할 수 있게 해준달까. 그것은 극장에서는 하기 힘든 경험이다. 물론 관람자 입장에선 미술이 영화보다 불친절하고 불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오감으로 체감한 것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고 생각한다. 어렵기 때문에 한번 더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니까.
-<환생> 같은 경우 스크린 두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게 아니라 스크린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2채널 방식이다. 한쪽 스크린에선 이란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맞은편 스크린에선 베트남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스크린과 스크린 사이, 이란과 베트남 사이, 전쟁과 전쟁 사이에 ‘나’가 서 있는 구조인데, 그런 연결을 강조한 공간감을 부여하려 했다. TV나 영화를 보듯이 지켜보는 게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게 함으로써 작품과 바깥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었다.
-전시가 전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전시와 현실이 계속해서 관계맺기를 바라는 마음은 영상 이외의 아카이빙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영상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을 보고 나오는 길목에 할머니들의 의상과 소품으로 의상실과 소품실을 차렸다. 곧장 할머니들의 삶에 들어선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얘기한 그대로다. 사실 내 작업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웃음) <과거라는 시를 써보자>의 경우 전시 공간을 세트장처럼 꾸미고 싶었다. 미학적인 설치작업 형태 말고 할머니의 옷과 유품으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3천점이 넘는 할머니의 옷이 빼곡하게 걸려 있는 의상실을 만들면 재밌을 것 같았다. 굳이 미학적인 작품으로 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관객이 이 공간에서 옷을 스치고, 만져보고, 냄새라도 맡았으면 했다. 전시가 끝나면 옷과 유품들을 사람들에게 나누는 방식도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할머니들이 겪었던 일들이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 과거의 역사로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 곳곳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미술과 영화 두 장르를 자유롭게 오가며 작업할 계획인가.
=미술은 펼쳐놓고 작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영화는 실물이 아닌 이미지를 편집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미와 용이함이 있다. 그렇게 전시장에서 펼쳐서도 보고 영화를 통해 흩어진 것들을 모아서도 보는 과정에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작업하지 않을까 싶다.
-내년에는 <환생>과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을 영화로도 만날 수 있나.
=그럴 계획이다. 전시가 4월 8일에 끝나는데, 3월까지 장편으로 완성해서 선보여야 하는 일정이다. 그러고 나면 좀 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