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의 경사기도권]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나는 그렇게 <스타워즈>에 매료되었다
2017-12-18
글 : 허지웅 (작가)
일러스트레이션 : 김지은 (일러스트레이션)
<스타워즈> 시리즈의 프리퀄 삼부작의 세계관과 끝내주는 신작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아주 먼 옛날 은하계 저편의 사막 행성에 노예 소년이 살았다. 소년은 영특했고 기계를 잘 다루었다. 소년은 아버지가 없었다. 어머니는 남자 없이 홀로 소년을 잉태했다. 소년은 마음속 깊이 어머니를 사랑했다.

때는 바야흐로 혼란의 시기였다. 공화국의 질서는 몰락하고 있었고 덕분에 지역에 기반을 둔 조직 범죄가 기승을 부렸으며 무역을 통해 부를 쌓은 자들을 중심으로 반란의 조짐이 싹텄다. 공화국을 수호하는 신비주의 결사대의 현자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자와 함께 여행 중이었다. 그가 우연히 소년을 만났다. 그는 소년의 재능과 가능성에 매료되었다. 현자는 소년이 우주의 질서에 균형을 가져다주리라 확신했다. 불행히도 현자는 오래 살지 못했다. 그러나 현자와 함께 동행했던 제자가 스승을 대신하여 소년을 수습하고 멘토가 되어주었다. 소년은 멘토와 함께 우주의 중심으로 떠났다. 그리고 멘토의 도움으로 신비주의 결사대의 일원이 되었다.

소년은 무섭게 성장했다. 소년의 능력은 독보적이었다. 소년의 직관과 영적 능력은 신비주의 결사대의 어느 누구보다 뛰어났다. 그러나 이 결사대의 원로들은 소년을 믿지 않았다. 소년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이들은 소년을 억눌렀다. 공로를 인정하지 않고 능력을 상찬해주지도 않았으며 때가 아니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원로들은 사실 소년을 두려워했다. 원로들은 소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어두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어두움이 소년의 마음 속에 원래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인정하지 않고 찍어 누르고 무시하는 방식으로 그들이 소년의 마음속에 심어버린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소년의 성장과 제국의 탄생

그런 소년의 곁에 정치꾼이 나타났다. 정치꾼은 소년을 끊임없이 칭찬하고 그 유일무이한 우주적 재능을 알아봐주었다. 소년은 정치꾼에게서 인정욕구를 채울 수 있었다. 그래서 그와 곧잘 어울리며 그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나 정치꾼에게는 소년에게 털어놓지 않은 야심이 있었다. 애초에 무역업자들을 현혹해 반란의 씨앗을 심은 게 그였다. 정치꾼은 전쟁이 필요했다. 외부의 위협을 조장해 전쟁을 일으키고, 이를 빌미로 의회의 승인을 얻어 훗날 군사독재의 토대가 될 대규모 군대를 양성하며, 자신이 일으킨 전쟁을 자신이 해결한 뒤 의회를 무력화하고 궁극적으로 우주를 장악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 계획을 실행하는 데 유일한 위협 요소는 공화국을 지키는 신비주의 결사대였다. 이 신비주의 결사대를 내부로부터 붕괴시키고자 정치꾼은 소년을 활용했다.

옳고 그름의 경계가 흔들리는 가운데 소년은 결국 자신이 속한 결사대를 뒤로하고 정치꾼의 야심에 동참하게 되었다. 소년은 형제와 같았던 결사대를 베어버렸다. 이제 소년의 곁에는 사랑하는 연인도, 늘 함께했던 멘토 형도, 소년의 이름 앞에 꼬박꼬박 ‘어린’을 붙여 부르며 찍어 누르기 바빴던 원로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철저히 홀로 된 소년은 정치꾼에게서 새로운 이름과 기계로 된 몸을 받았다. 정치꾼은 의회를 해산하고 공화국의 종말과 제국의 탄생을 선언했다. 정치꾼은 황제가 되었다. 소년은 황제의 오른팔이 되었다.

소년은 자신에게 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쌍둥이였다. 쌍둥이 자매는 각기 다른 가정에 맡겨져 길러지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쌍둥이 가운데 남자아이는 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랐던 사막 행성에 자리를 잡았다. 평범한 시골 소년에 불과했던 이 아이가 자기 아버지, 즉 소년의 여정을 고스란히 밟아나가며 제국에 대항하는 저항군의 유력한 영웅으로 성장하고, 어느덧 자신이 증오했던 꼰대들과 다를 게 없이 늙고 뒤틀려버린 소년과 대결하여 쓰러뜨리기까지는, 그 후로 오랜 시간이 더 필요했다.

스타워즈가 내포한 우화의 결

<스타워즈>의 앞선 이야기를 프리퀄 삼부작 중심으로 재구성한 이유는 이 시리즈의 우화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스타워즈>는 의외로 진입 장벽이 높은 시리즈다. 마음먹고 에피소드 4편부터 보려고 해도 유치하고 산만하다고 느끼기 일쑤다. 무엇보다 이제는 시리즈가 너무 길어져버렸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우화적 결을 찾아낼 수 있다면, 당신이 <스타워즈>의 열정적인 팬으로 돌변하는 걸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첫 번째로 <스타워즈>는 메시아 이야기다. 사막의 소년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동정녀에게서 잉태되었고 제다이 마스터 콰이곤에 의해 ‘포스에 균형을 가져올’ 자로 예언되었다. 그러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타락한다. 대를 이어 루크 스카이워커에 이르러서야 이 예언은 실현된다.

두 번째로 <스타워즈>는 세대 갈등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다. 아버지를 증오했던 조지 루카스는 할리우드에 와서도 자신을 천둥벌거숭이 취급하는 구세대와 끊임없이 대립했다.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인 그는 싸우기보다 홀로되기를 택했고 전통적인 스튜디오 권력을 경멸했으며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관계 안에서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는 누군가를 갈구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창작 집단 조트로프를 결성하면서 루카스는 잠시나마 안정을 찾았다. 그에게 코폴라는 형이나 동료이기 이전에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코폴라가 스튜디오와 루카스 사이를 조율하고 제어하는 과정에서 오해와 갈등이 쌓였다. 조트로프는 깨졌고 루카스는 다시 홀로 남았다. 코폴라가 <대부>를 만드는 동안 루카스는 우주 서사시를 썼다. <스타워즈>는 그때 탄생했다. 루카스는 스카이워커였고 오비완은 코폴라였으며 어둠의 군주와 다스 베이더로 대변되는 악의 제국은 스튜디오 시스템이었다.

이와 같은 자전적 성격은 프리퀄에 이르러 더욱 강력해진다. 오리저널 시리즈에서 루크 스카이워커에 스스로를 투영했던 루카스는 프리퀄에서 아나킨 스카이워커로 옮겨간다. 재능 있는 젊은이가 꼰대들에게 무시당하고 억눌리면서 그에 대한 불만과 증오를 발판 삼아 악의 화신으로 각성해버리는 과정은, 한때 전통적인 스튜디오 권력에 싸워 이겼으나 그 중심으로 걸어들어가 결국 할리우드 시스템을 제국과 다름없는 규모로 키워내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자기 고백에 가깝다. 더불어 혁명 세대를 대변하는 한숨 섞인 변명이기도 하다.

세 번째로 <스타워즈>는 민주주의와 독재에 관한 이야기다. 다스 시디어스가 공화국 권력을 장악하고 의회를 해산하며 제국을 만들기까지 과정은 로마 공화정이 무너지는 모습이나 나치 독일의 탄생, 혹은 한국의 독재 정권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이 반복되었던 역사적 귀결이다. 우리는 <스타워즈>안에서 통합과 질서를 지상 과제로 강조하는 권력에의 열망이 독재로 옮겨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과거 인류가 왜 매번 그렇게 똑같은 방식으로 실수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는지 확인하게 된다. 실제 공화국 시절보다 제국 치하의 우주가 더 나은 치안 상황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스타워즈>는 ‘데스 스타’라는 상징적 장치를 활용해 왜 우리가 독재에 저항해야 하는지 강조한다.

이 오래된 이야기는 여전히 젊다

이제 새 시리즈 이야기를 해보자. 루카스의 손을 떠난 <스타워즈>의 새로운 여정은 선명해 보이지 않았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준수하고 재미있는 영화였다. 그러나 이 시리즈가 이전 시리즈의 끝말잇기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문단의 첫 문장이라는 걸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체 왜 이 시리즈가 한 솔로를 죽여야 하는지, 우주에서 가장 멋진 영웅이 왜 퇴장해야만 하는지, 그 서사적 필연성을 나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단지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면 그건 범죄였다.

반가운 소식은 이제 우리 앞에 도착한 속편이 앞선 전편과는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빼어나고 흥미롭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기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다루지 않았으며 이대로 글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여러분이 극장에서 이 기가 막히게 끝내주는 영화를 온전한 새것 그대로 즐기길 바라기 때문이다. 다만 이 정도는 밝힐 수 있겠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왜 이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고, 어떤 주제를 다룰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뒤늦게) 선언한다. 관객을 압도할 풍광이 이어지고 올드팬이 기겁할 장면이 두개 이상 있으며 모두가 깜짝 놀랄 대목이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토록 의미심장한 엔딩이 이 시리즈에 있었던가 싶은 마지막 장면이 준비되어 있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단숨에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과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를 잇는 나의 베스트 <스타워즈> 영화가 되었다. 아주 먼 옛날 은하계 저편의 사막에서 시작된 이 오래된 이야기는 어느새 관객보다 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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