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스토리>는 갑작스런 죽음 뒤에 사랑하는 사람과 살던 집으로 돌아온 남자 C(케이시 애플렉)의 이야기다. 놀랍게도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이 택한 유령의 형상은, 유년기에 우리가 떠올리곤 했던 유령의 원초적이고 약간 코믹하기까지 한 이미지, 즉 두개의 눈구멍이 뚫린 흰 시트다. <고스트 스토리>의 지극한 아름다움 가운데 큰 몫이 이 과감한 디자인에서 나온다. C의 유령은 대사도 손동작도 없이 어깨와 고개의 각도, 실루엣만으로 생각과 감정을 드러낸다. 바닥에 끌리고 접히고 퍼지는 천의 모양새와 주름, 빛과 조명에 따라 변하는 흰 천의 색, 시트가 사각사각 끌리는 소리가 관객이 자율적으로 정서를 만들어내도록 유도한다. 귀신같은 한수다.
12/02
지나 데이비스, 톰 행크스, 마돈나가 출연하고 페니 마셜이 감독한 <그들만의 리그>(1992)는 1943년부터 10여년간 미국에 실존했던 여성 프로야구 리그의 역사를 극화한 드라마였다. 전미 여성 프로야구 리그는 2차대전으로 위기에 처한 메이저리그의 구단주들이 흥행 돌파구로 내놓은 기획이었다. 한편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에 등장하는 여성테니스협회 WTA(Women’s Tennis Association)는 동일 성적을 올리고도 남성 선수의 1/12에 불과한 보수를 받았던 여성선수들이 주체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이 경우, ‘게토’의 느낌이 들어 있는 ‘그들만의 리그’보다는, ‘그들 자신의 리그’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영화에 등장하는 마거릿 코트는 1970년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도 1만5천달러의 보너스에 만족해야 했지만 같은 경우 남성 선수들은 최고 100만달러까지 벌었다고 한다.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이 재현하듯, 당시 테니스계 실권을 쥔 남성들은 실제 경기 티켓 판매가 남녀간 큰 차이가 없음에도 남성 테니스가 훨씬 파워풀하고 역동적이라 ‘우월’하며 십여배의 보수가 정당하다고 믿었다. 나아가 이에 항의하는 여성선수들이 탐욕스럽고 분수를 모른다고 여겼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그들이 절대적 가치로 여겼던 힘과 빠르기는 선수들의 역량이 경쟁적으로 강화되면서 뒷날 남성 테니스를 여성 테니스에 비해 재미없게 만들었다. 강력한 에이스로 치고받기가 끝나버리니 드라마가 부족해져서다. 여성테니스협회가 설립된 1973년은 임신중단권이 합법화되고 연방 세금으로 운영되는 (체육을 포함한) 교육에서 성차별이 금지된 해였다고 연표는 말한다. 그리고 임금 성평등은 2017년에도, 심지어 여신 소리 듣는 할리우드 스타에게도 이슈다.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의 중심은, 카메라 앞에서 ‘남성 우월주의자 돼지’(male chauvinist pig)라고 자칭하는 보비 리그스(스티브 카렐)의 도전으로 열린 빌리 진 킹(에마 스톤)과의 세기의 성대결이다. 당연히 스크린 안팎의 관중은 클라이맥스에서 승부에 모든 것이 걸린 것처럼 손에 땀을 쥐고 킹을 응원한다. 하지만 이 경기의 승부는 사실 임금 불평등의 정당성과 아무 관계가 없다. 설령 빌리 진 킹이 졌다고 해도, 남성 선수들이 여성 동료보다 많은 돈을 받는 근거가 될 수 없으니까. 본질적으로 리그스와 킹의 게임은, 도박중독증과 쇼맨십이 있는 왕년의 남성 챔피언이 은퇴 후 밋밋한 생활에 진력이 나서 기획한 ‘서커스’에 가까웠다. 리그스가 쏟아내는 과격한 표현과 여성비하적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진지한 분노는 일지 않는 까닭이다. 오랫동안 드라마 <오피스>에서 재수없지만 미워하기 힘든 캐릭터를 훌륭히 연기한 스티브 카렐의 캐스팅은 전형적이지만 그래서 효과적이다. 진짜 악역은 불평등한 상금을 제도화한 프로모터 잭 크레이머(빌 풀먼) 같은 인물이었다(빌리 진은 독대한 자리에서 잭 크레이머에게 “당신은 보비와 달리 여성이 열등하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다. 당신 같은 사람들은 자기가 소유한 것의 작은 조각도 여자가 원할 때 용납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빌리 진 킹은 쇼에 말려들기를 처음 거부했다가 당시 랭킹 1위였던 마거릿 코트가 리그스에게 패배하자 코트에 오른다. 리그스와의 시범경기가 페미니즘의 정당성과 무관하지만 여성 선수가 한번 이 떠버리를 꺾지 않으면 대중의 뇌리에서 여성테니스는 영원히 2부 리그로 각인될 궁지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제목의 ‘세기의 대결’이 결정적이지 않았다는 사실과 별개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는 것 같다. 과거의 성공과 부유한 아내 덕에 이미 윤택한 삶을 살고 있던 보비 리그스가 이 게임을 통해 얻으려 했던 것은 더 많은 돈과 스릴이었다. 즉 보비 리그스의 목표는 ‘더 많은 것’이었고 빌리 진 킹이 원한 바는 정당한 제 몫이었다. 나는 이 영화의 에마 스톤 연기가 <라라랜드>의 퍼포먼스보다 인상적이었다. 빌리 진 킹을 연기하는 스톤에겐, 그가 대다수 작품에서 두르고 다녔던 ‘커다란 눈동자의 사랑스런 아가씨’라는 너울이 벗겨져 있다. 에마 스톤은 프로페셔널 테니스 선수에 어울리는 피지컬을 갖춘 배우가 아니고 경기 장면도 대역에 빚진 바가 크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느껴온 이 배우의 다른 속성, 목표 앞에서 똑 부러지게 단호하고 근면한 면모가 그의 빌리 진 킹을 믿을 만하게 만든다.
12/12
미국 뉴저지 패터슨시에 사는 노선버스 기사 패터슨(애덤 드라이버)의 일상은 대다수 노동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대동소이하다. 다만 그는 시를 쓴다. 패터슨은 매일 아침 6시에서 6시 반사이에 자명종 없이 일어나 잠들어 있는 사랑하는 아내 로라(골시프테 파라하니)의 어깨에 입 맞추고 간밤에 미리 꺼내둔 옷을 입고 걸어서 출근한다. 차고지까지 걷는 동안 머릿속에 떠올린 시상을 차계부를 관리하는 동료가 올 때까지 운전석에서 끄적거린다. 23번 버스를 모는 동안 귀에 흘러드는 승객들의 대화와 거리 풍경이 그의 마음에 언어로 쌓이고 점심시간이면 폭포 앞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시를 쓴다. 퇴근해서 어쩐 일인지 매일 기울어져 있는 집 앞 우편함을 바로잡고 거실로 들어서면 로라가 하루 종일 한 일을 들려주고 당신의 시를 꼭 책으로 묶어야 한다고 재촉하며 저녁을 내준다. 요리를 포함해 로라는 항상 창의적 취미활동으로 바쁘기 때문에 패터슨은 주로 듣는 쪽이다. 어둠이 내리면 반려견 마빈과 산책을 나가 동네 바에서 맥주잔을 내려다보며 하루를 마감한다.
짐 자무시 감독은 통상 영화가 못 되는 시간들을 아주 사랑한다. 옴니버스영화 <커피와 담배>(2003)에서는 별 화제도 없이 커피를 홀짝이는 사람들의 시간 죽이기를 찍었고 <지상의 밤>(1991)에서는 흔히 브리지로나 쓰일 법한 택시 안 풍경으로 영화를 채웠다. <천국보다 낯선>(1984)에는 흥뚱항뚱 지내다가 특별한 목적 없이 멀리 떠나는 젊은이들이 있었고 서부극 <데드맨>(1995)의 본론은, 총알이 몸에 박힌 다음 이승의 끝으로 느릿느릿 다가가는 여정이었다. <패터슨>도 사건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짐 자무시가 편애하는 예술 형식인 변주의 향연이다. <패터슨>의 관객은 주말을 제외하면 어슷비슷한 일과를 다섯 차례 지켜본다. 그러다 토요일에 이례적 사건이 한 가지 일어나고 일요일의 패터슨은 사건의 여파 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조용히 회복한다. 그리고 월요일, 다시 궤도가 시작된다. <패터슨>은 굳이 분석할 것도 없이 영화 자체가 7연(혹은 다음 월요일까지 8연)으로 이루어진 시다. 우선 기상, 산책, 식사 같은 정해진 일과가 기본적 압운을 이룬다. 세부적으로는 반복되며 조금씩 달라지는 숏과 인물의 행위가 크고 작은 패턴을- 로라가 그리는 그림처럼- 아로새긴다. 화요일 아침 꿈에서 쌍둥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패터슨에게 들려주는데, 그다음부터 여러 쌍둥이들이 잊을 만하면 패터슨의 시야에 들어온다. 마법은 아니다. 이야기가 예술가의 촉을 건드린 결과 열어젖혀진 감각이 세계에 잠재돼 있는 패턴을 예민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짐 자무시는 반복되는 노동 안에 존재하는 예술적 영감에 주목한다. 만약 소재가 시가 아니라 음악이나 영화, 아니 회화였대도 <패터슨>과 같은 아마추어리즘의 예찬이 가능했을까 상상해본다.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는데, <패터슨>에는 행장 가벼운 시의 상태를 동경하는 영화감독이 얼핏 보인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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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불도그
<패터슨>의 잉글리시 불도그 마빈으로 분한 넬리는 리액션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어 2016년 칸국제영화제에서 팜도그상을 수상한 동물 배우다. 안타깝게도 영화제 두달 전 향년 8살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패터슨과 로라 부부의 반려견 마빈은 단조롭고 고요한 패터슨의 일상에 리듬을 주는 존재다. 커플이 자기보다 서로를 좋아하는 제스처를 보이면, 어김없이 으르렁거리며 항의하는 집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현장에서는 애덤 드라이버 바라기였다고 전해진다). 짐 자무시 감독은 애초 잭 러셀 테리어로 마빈의 견종을 설정했으나 트레이너로부터 “한번 만나보라”는 권유를 받고, 브로드웨이 경력이 있는 넬리와 미팅을 가진 후 마음을 바꿨다고. 여성으로서 남성을 연기한 넬리는 2001년부터 시작된 팜도그상 사상 최초의 사후 수상자이자 최초의 ‘트랜스젠더’ 연기 케이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