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코르넬리우 포룸보이우 / 출연 마리시아 안드레스쿠, 테오도르 코반 / 제작연도 2006년
1988년 겨울, 5공 청문회가 열렸다. 그해의 기억을 소환한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내게 1988년의 기억은 청문회만이 또렷하다. 7살에 불과했으니 텔레비전에 나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던 군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마찬가지로 무지렁이 같은 차림으로 중계 카메라 앞에 주눅 들어 앉아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작은 화면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어른들과 그들이 풍기던 분위기였다. 그곳은 광주였고, 할머니가 하던 함바집의 작고 두툼한 텔레비전 앞이었다. 그들은 화를 내다가 중얼거리다가 차갑게 돌아섰다 다시 돌아와 술잔을 기울였다.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는 1989년 독재자 차우세스쿠를 쫓아낸 루마니아의 혁명을 다룬 영화다. 그러나 혁명의 드라마틱함은 자료화면처럼 스치듯 지날 뿐이다. 남은 건 사람들의 기억. 그때 거기 있었는지 아닌지를 두고 벌이는 설전 아닌 설전이 유머 아닌 유머를 만들어낸다. 오랜 시간을 시민 위에 군림한 절대 권력이 헬기를 타고 도망가는 모습이 생중계된 역사적인 순간이지만, 그때에 거기에 있었던(혹은 없었던) 사람들의 기억은 모두 다르다. 영화관에 막 들어섰을 때, 혁명의 정중앙에 있었던 소시민의 남은 열정 같은 것을 기대했던 내게, 영화는 혁명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다시 묻는 듯했다. 그때에 거기에 있었던가, 있었다면 무엇을 했었나. 기억을 더듬는 순간 감독은 마지막 시퀀스로 슬쩍 힌트를 준다. 하나둘씩 켜지는 가로등 불빛. 이어서 낮은 조도로 불을 밝힌 크리스마스트리. 혁명 후 16년 지난 오늘, 다시 시작되는 하루.
혁명의 기념은 거대한 조형물, 으리으리한 기념관, 달력의 빨간 날 같은 것들로 완성될 것이지만, 그것들을 구성하는 본질은 사람이다. 우리의 기억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그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그때 거기에서 누가 사라져갔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1988년 청문회 생중계 화면 앞, 더 나아가 1980년 광주 변두리 마을, 나의 삼촌과 고모와 부모와 이웃 어른들은 있었다. 그리고 하나둘 켜지고 꺼지는 가로등처럼 깜박이며 삶은 지속된다. 혁명은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각자의 기억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어느 훗날, 2016년의 촛불은 어떻게 기억될는지. 우리는 그때 거기 있었고, 지금도 여기에 있다. 미래에도 우리는 그곳에 있을 것이다. 어두운 사위를 밝히는 가로등이 될 것인지 어두움에 잡아먹힌 망각의 그림자가 될 것인지는 마저 지속될 우리의 삶이 증명할 것이다. 그날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어딘가에서 무엇을 하며 있었다고, 삶으로 대답할 수 있기를, 그때와 거기를 들먹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진 않기를, 다시 돌아온 겨울에 다짐한다. 이 다짐이 기억되길 바라면서.
서효인 시인, 출판편집자.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와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