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 <신과 함께-죄와 벌> <1987>, 김소희·송형국·안시환 평론가 대담
2018-01-10
글 : 송경원 | 사진 : 최성열 |
<강철비> <신과 함께-죄와 벌> <1987>, 김소희·송형국·안시환 평론가 대담
안시환·김소희·송형국 평론가(왼쪽부터).

올겨울 세편의 한국영화가 흥행 약진을 거듭 중이다. 먼저 <신과 함께-죄와 벌>(2017년 12월 20일 개봉)이 지난 1월 4일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역대 20번째 천만영화이자, <명량>(2014)에 이어 2번째 빠른 돌파 기록이다. 같은 시기, 가장 먼저 개봉한 <강철비>(2017년 12월 14일 개봉)가 450만 관객, 가장 늦게 개봉한 <1987>(2017년 12월 27일 개봉)이 300만 관객에 육박하며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제작비 100억원 이상의 대작들이 겨울 시장에서 맞붙어 관객의 고른 선택을 받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라 할 만하다. 이에 <씨네21> 영화평론상 공모 출신 김소희, 송형국, 안시환 평론가와 함께 세 영화의 이모저모를 짚어보고자 한다. 우리가 궁금한 건 이 영화들이 왜 흥행했는지가 아니다. 이 영화들은 지금 이 시점에 우리에게 무엇을 던져주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영화만큼 뜨거운 담론의 잔치에 초대한다.



<강철비> <신과 함께-죄와 벌> <1987> , 2017년의 반가운 발견



-<강철비>, <신과 함께-죄와 벌>(이하 <신과 함께>), <1987>, 이렇게 세편의 한국영화가 연달아 개봉했다. 겨울 시장에서 대형 영화들이 이렇게 격돌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송형국_ 세편 모두 굉장히 한국적인 소재로 흥행 중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신과 함께>는 소방관이라는 영웅 캐릭터를 불러왔고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군 의문사다. <강철비>의 남북 관계나 <1987>의 민주항쟁은 말할 것도 없다. 세 영화 모두 한국이 아니면 꺼내기 어려운 소재들을 전면에 내세워 흥행 1, 2,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 100만 관객도 들지 않았던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와 비교하면 기현상처럼 느껴질 정도다.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소재, 한국의 특수성이 겹쳐서 나온 현상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실화를 바탕으로 한 <1987>이나 남북 상황을 그린 <강철비>가 아닌 CG 판타지 <신과 함께>가 천만 관객을 향해 독주 중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특이한 현상이다.



=안시환_ 흥미로운 것은 세편 모두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골고루 흥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한편이 독주하고 나면 나머지 두편은 망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곤 하는데, 지금 상황은 세편 모두 각자의 장점을 분명히 가지고 있고 각자의 흥행 포인트로 관객에게 호소하고 있다. 나는 세편 다 재밌게 봤다. 한국 블록버스터라고 부를 수 있는 경향 속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작품들이라고 생각한다. 세 작품 모두 과거의 익숙한 소재를 반복하면서도 다루는 방식에서 적절한 변형을 통해 차이를 드러냈다. 그 결과가 관객에게 어필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2017년 12월이다.



=김소희_ 동의한다. 익숙함에 바탕을 두고 오늘날로 현재화했다는 게 공통점이다. 여기서 익숙함을 만든 요소란 역사일 수도 있고, 흥행한 만화일 수도 있고, 반복되는 사회 상황일 수도 있다. 어느 정도는 실제로 체감했거나 스스로 안다고 느끼는 것들이기 때문에 관객이 더 개입하고 판단할 수 있는 지점들이 늘어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1987>이 가장 좋았다. 굉장히 좋은 영화라는 평들이 다수여서 기대치가 높았던 탓인지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분명 생각할 지점을 많이 만들어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송형국_ 사실 이번 2017년 <씨네21> 연말 결산에서 11월까지 개봉한 한국영화 중 베스트를 꼽는 게 정말 힘들었다(송년호가 12월 중에 나오는 관계로, 연말 베스트 결산에서 다루는 영화는 2016년 12월 1일부터 2017년 11월 30일 개봉한 영화까지 그 대상으로 한다.-편집자). 그런 면에서 보아도 지난 12월에 등장한 한국영화 세편이 더욱 반갑다.



안시환_ 지난해에 봉준호, 류승완 감독의 영화가 개봉했다. 2010년 초반만 하더라도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의 영화가 개봉한다고 하면 기대감으로 들썩였다. 그러나 지난해를 돌아볼 때 믿고 보는 기성감독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느낌이 들더라. 물론 여전히 파워는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번에 등장한 김용화, 장준환, 양우석 감독 등이 시장에서 더 환영받는 분위기다. 이슈 메이킹을 해줬던 과거의 감독들이 아니라 새로운 이름들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분기라 생각한다.



송형국_ <1987>은 나머지 두 영화와 함께 이야기하는 게 감정적으로 힘들 정도로 특별하게 다가왔다.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나’에 대한 질문을 품게 만드는 영화가 아닐까. 다음 순위를 매기기 어렵지만 굳이 2위를 꼽자면 <강철비>다. 우선 <강철비>의 세계관에 대해선 강하게 부정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밀도를 따지면 세편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만듦새가 뛰어난 영화다. 장면마다 많은 정보가 담기는데 매우 고민하고 공부한 감독의 흔적이 느껴진다.



안시환_ 나는 <1987> <신과 함께> <강철비> 순이다.



김소희_ <1987>을 제외한 두편의 순위는 공동으로 두고 싶다. 세 영화의 톤이 너무 달라서 순위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 특히 언론이나 평단에서 <1987> <강철비> <신과 함께> 순으로 꼽는 것이 약간은 익숙하고 빤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강철비>

<강철비> , 도발적인 소재와 익숙한 화법



- 개봉한 순서대로 하나씩 이야기해보자. <강철비>는 도발적인 동시에 재미난 영화다.



송형국_ 굉장히 높은 밀도로 강도 높은 주장을 하고 있는 영화다. 거의 비슷한 컨셉인 <의형제>(2010)가 주장이 아닌 제시의 영화라면 <강철비>는 감독의 세계관을 투영해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감독의 세계관을 찬성하는지와는 별개로 연구와 고민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김소희_ <강철비>를 보기 전에 마케팅 포인트로 보았던 게 영화에 지드래곤의 노래가 나온다는 거였다. 처음엔, 영화 중간에 잠깐 흐르는 노래일 뿐인데 홍보를 위해서 과장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어쩌면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딱 맞는 비교는 아니지만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포인트로 사용했던 것처럼 <강철비>는 그동안의 영화가 주로 향수 어린 태도로 남북 관계를 그렸던 것과 달리 최신식 K팝을 선곡함으로써 새로운 코드를 내보인다. 익숙한 것을 오늘날 다시 이야기한다는 담론과도 연결이 될 것 같고, 남북 문제를 현재화하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안시환_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강철비>가 기존에 북한을 다뤘던 영화들과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북한 내부에서 쿠데타라는 특정 상황이 일어난다는 가정 자체는 상당히 흥미로웠지만, 남북의 이해관계가 갈리는 이후의 전개는 기존의 영화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연장 선상에서 엄철우(정우성)가 암에 걸린 상황이 밝혀질 때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있었다. 왜 항상 비극의 역할, 희생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건 북한의 인물이어야 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들더라. 곽철우(곽도원)가 암에 걸렸다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웃음) 그래서 직접 북한에 협상하러 갔다면 더 전복적인 설정이 되지 않았을까? 북한에서 넘어온 인물이 언제나 자기희생적인 모습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북한을 다루는 서사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급진적인 설정에서 출발했지만 그걸 이어가는 내러티브 구성은 기존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송형국_ 익숙한 서사적 프레임이라는 건 아주 중요한 지적 같다. 말기암으로 어차피 죽어가는 사람이라는 설정을 통해 결말에서 엄철우의 마지막 희생과 죽음을 완충하는 식이다. 북한 1호가 남한에 온다는 건 겉보기에 매우 센 설정인데, 이건 기본적으로 남한 정부가 편하고 강한 칼자루를 너무 쉽게 쥔 상황이기도 하다.



김소희_ 심지어 곽철우가 그 사실을 알고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나라를 위해 이롭게 죽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일종의 수혜적인 태도가 녹아 있어 아쉬웠다. 덧붙여서 마지막 폭격 장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연출 역시 얼핏 윤리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미 이전 장면에서 폭격 상황을 부감숏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이후의 장면도 반드시 숨길 필요가 없었을 텐데 굳이 죄책감과 연민을 피력하는 처리 방식이 불편했던 것 같다.



안시환_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똘똘한 화법을 지닌 영화라는 생각은 들었다. 기존의 익숙한 화법을 통해 센 설정들, 특히 마지막의 강한 주장, 심지어는 동의할 수 없는 주장까지도 익숙한 서사가 흡수해버린다. 익숙함 속에서 급진적인 주장까지도 관객이 편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내겐 <강철비>가 3위다.



송형국_ 폭격 시점 또한 엄철우가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이후다.



안시환_ 어떤 자가 살아남아야 유리할 것인지 현실의 정치 원리도 생각해보게 된다. 강자가 살아남는 편이 좀더 도움된다는 힘의 논리에 기반해 엄철우가 죽어야 하는 것일 텐데, 이건 영화의 주장과도 연결된다. 한국도 전쟁 억제력을 위해 핵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에는 한국도 힘을 길러야 한다는 논리가 숨어 있다. 비약일 수도 있지만 이 영화의 서사적 선택과 이데올로기적 주장이 제대로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 구성면에서 본다면 현명한 선택들이 돋보이는 잘 만든 영화이다. 양우석 감독은 최근에 활동하는 감독 중에서 자기주장을 텍스트에 명확히 드러내는 몇 안 되는 감독이다. 그것이 영화의 전체적인 만듦새를 투박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기도 하지만, 관객 입장에선 그래서 훨씬 더 편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면도 있다. 양우석 감독은 기존의 진보, 보수 프레임으로는 말하기 힘든 사람이다. 자신의 행동의 옳고 그름, 정치적인 세계관이 중요한 사람으로 기존의 이데올로기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송형국_ 엄철우의 대사 “그런 이분법적 논리로 우리를 파악할 수 없다”가 감독 자신의 말처럼 들리더라. 자기주장을 매체를 통해서 드러내는 건 어떤 형태로든 감독의 자유겠지만, 비평의 입장에서는 예술을 통해 주장을 하기 시작하면 그건 좋은 예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변호인>과 <강철비> 사이, 양우석 감독의 연결성



김소희_ <강철비>를 같이 봤던 사람은 “<변호인>(2013)을 만들었던 사람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가”라고 하더라. 비핵화가 아닌 핵무장을 택하는 결정은 사실 보수의 입장이기도 하니 주변에선 놀라워하더라. 아마 많은 관객이 그런 반응을 보일 것 같다. 양우석 감독의 스타일을 정의하기엔 이른 시점 같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론 <변호인>과 <강철비> 사이에서 작가적 공통점 혹은 연결된 세계관이 잘 보이지 않는다.



송형국_ 다들 많이 놀랐다. 어떤 댓글에는 “<변호인>의 양우석인 줄 알았는데 강우석인 줄”도 있었다. (웃음)



안시환_ 많은 관객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여전히 텍스트를 통해서 대중의 정서 구조를 읽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강철비>에서 발견되는 양우석 감독의 태도, 기존의 진보-보수 프레임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강한 자의 힘의 논리를 따르는 지점까지 결합시키면 그것이 곧 2017~18년에 대중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정치적 무의식일 수도 있다. 촛불시위 현장에 나온 많은 시민들을 과거의 이분법적 진영 논리로 구분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집단적인 정치적 무의식은 강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속에 있다고 본다. <강철비>는 텍스트 속에 대중들의 정서구조를 투영해냈다고 보이며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송형국_ 이 영화의 민족주의가 대단히 위험하고 무책임하다고 말하고 싶다. 미국은 벽을 가득 채우는 압도적인 사이즈의 화면으로 화상통화를 하는, 공식적인 대화를 진행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화상통화 장면은 처음엔 바스트숏이었다가 위기 상황에선 클로즈업된 얼굴로 바뀐다. <강철비>가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렇게 압도적인 힘으로 표현된다. 반면 중국은 주로 비공식적인 채널을 이용한다. 중국 대사와 곽철우가 뒷거래하는 장면처럼. 재미있는 건 일본인데 대화가 아예 없다가 곽철우와 일본 대사가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고 중국 대사가 서로를 소개해준다. 이 영화에서 두번 반복되는 대사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분단은 분단 자체가 아니라 분단을 이용하는 자들 때문에 고통받는다”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이 우리 300백만을 죽였다”다. 20세기 한반도의 불행이 일본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걸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가 <강철비>다.



김소희_ 여성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에 답하자면 캐릭터의 비중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처음 등장했던 여성 인물을 마치 없었다는 듯이 후반부에 없애버린 것이 문제라고 본다. 초반에 등장시킨 여성 캐릭터들은 그저 벡델테스트(미국의 여성 만화가 엘리슨 벡델이 남성 중심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계량하기 위해 고안한 영화 성평등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한 용도인가 싶을 정도였다. 벡델 테스트의 한계를 보여주는 작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직업마저 굉장히 클리셰했다. 서사적으로 남성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더라도 여성 인물의 쓰임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강철비> 개봉 후 꽤 논쟁이 붙을 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잠잠해서 의외였다.



안시환_ 슬프지만 논쟁이 불붙을 만한 비평적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만약 <강철비>가 10년 전에 나왔다면, 물론 나올 수 없었겠지만(웃음), 비평적으로 좀더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강철비>가 가진 텍스트 속 이슈에 비해 비평적으로 너무 조용하다는 느낌이다. 비평에서 더이상 이데올로기를 다루지 않는 시대다. 그런 비평이 읽히지 않는 시대인 것도 사실이고. 이런 분위기에서 쉽게 지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건 텍스트보다 비평의 문제다.



<신과 함께-죄와 벌>

관객은 왜 <신과 함께>를 선택했나



-비평의 무기력을 말한다면 <신과 함께>를 빼놓을 수 없다. 평단의 박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이번 겨울 블록버스터 대전의 실질적인 승자가 됐다.



송형국_ 그냥 재밌게 잘 봐서 할 말이 없다. (웃음) 마지막 장면에선 객석 곳곳에서 관객이 소리내 울더라. 그 실력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 같고, 어떻게 해서 그게 가능했던 것인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안시환_ 정신 차리고 보니 나, 아내, 딸이 동시에 울고 있었다. 각색의 모범사례라고 생각한다. 웹툰을 영화로 어떻게 옮겨놓을지 매체성을 고민한 결과라고 본다. 두 매체를 즐기는 관객의 성향이 다르다는 점까지 고민하고 각색을 했다.



김소희_ 웹툰은 소소한 잔재미 위주였고, 서사 역시 평범한 소시민 캐릭터가 환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반면 영화는 처음부터 귀인으로 보이는, 스펙터클한 배경을 가질 수밖에 없는 소방관(차태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가 난관을 겪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가 드러내는 ‘영화적’인 장치가 정말로 영화적인가 하는 점에는 의문이 든다. 볼거리와 오락적 측면에 치중하고, 모성 코드로 익숙한 감정까지 건드리는 건 지나치게 빤하다.



안시환_ 이 부분에 대해선 생각이 조금 다르다. 매회 독자들을 만족시켜야하는 만큼 순간의 잔재미는 웹툰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김용화 감독은 이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전체적인, 유기적인 스토리텔링에 집중했다고 본다. 없앨 인물은 없애고 인물들에게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기도 하면서 이야기의 통일성을 갖췄다.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는 클리셰, 신파적인 눈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가 되지만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영화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제작비 400억원의 영화라면 그에 맞는 최소한의 서사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김용화 감독이 <미스터 고>(2013)의 우를 범하지 않았다는 점이 돋보였다.



-<신과 함께>의 흥행과 함께 ‘한국적 신파’라는 말이 종종 언급된다.



안시환_ 신파와 자주 붙어다니는 단어가 억지눈물인데, 대체로 이를 지적할 때 서사적인 빈약함을 얼굴의 힘으로 때운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영화를 신파라고 부정적으로 칭할 때 흔히 이런 식의 안일한 처리를 주된 이유로 삼는다. <신과 함께>는 눈물을 흘리게 한다는 점에서 신파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전에 불렀던 전형적인 신파의 의미에선 조금 벗어나 있지 않나 싶다. 관객이 눈물을 흘리게끔 만드는 과정의 일련의 서사적 진행들은 오히려 치밀한 계산 끝에 나왔다고 보인다. 비난조의 신파라는 용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으면 하는 영화다.



김소희_ 한국적 신파를 한국인이 보편적으로 울 수 있는 코드라고 한다면, 이는 실제 리얼리티와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판타지인 것 같다. 보편적 모성, 부성, 가족관계는 언제나 그게 정답인 양 상상되어왔다. 가령 ‘엄마라면 이래야 해’ 하는 기준을 세우면 그렇지 않은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은 배제된다. 모성을 타자화하는 것이다. <신과 함께>는 그 지점을 노골적으로 건드린다. 이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눈물이 과연 실재하는 감정에 바탕을 둔 것일까 의심스럽다. 누구나 다 가지는 것처럼 강요하는 듯한 감정이 코드화되는 순간 생기는 불편함이 있다. 앞서 안전장치라는 말도 했는데, 많은 관객이 소급할 만한 환상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영화의 서사가 현실을 반영할 여지가 줄어드는 게 아닌가.



안시환_ 모든 텍스트는 수행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신과 함께>가 강요된 모성을 내보이고, 그것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이루는 지점은 분명히 있다. 문제는 그걸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눈물이 있다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강요된 눈물이기도 할 테고. <집으로…>(2002)의 할머니나 <신과 함께>의 어머니나 일방적인 희생을 끝까지 감내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른 게 없다. 20년간 어머니, 여성을 그리는 방식은 지독히도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집으로…>를 볼 때도 그랬다. 머리로는 저것이 강요된 할머니의 모습이라고 이해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영화 속 할머니의 모습을 비판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 그것을 꺼낼 때 나 자신의 불편함 같은 이율배반적인 것들이 생기는 거다. 차라리 내가 흥미로웠던 건 자홍(차태현)과 수홍(김동욱) 형제 그리고 어머니(예수정)가 현재의 시간에서 단 한번도 한자리에 모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월애>(2000) 이후에 주인공들끼리 서로 만나지 않으면서 감정을 이렇게 끌어올리는 영화는 거의 처음이다. (웃음) 이건 단지 신파라는 비난 속에서 사라지기엔 아쉬운 장점이다.



송형국_ 대단히 설득이 된다. (웃음) 원작에서 가장 크게 변한 부분이 주인공 설정일 것이다. 자홍의 직업이 소방관이라는 게 의미심장하다. 이번 제천 화재 때 네티즌의 반응을 보니 소방당국을 비판하는 언론에 대해 냉소하는 여론, 소방관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정착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와도 잘 맞물린 소방관 캐릭터는 완벽하게 선한 인물이기도 하다. 철저하게 만들어진 선한 영웅에 이입한 관객은 천륜지옥에서 자홍의 비밀이 밝혀질 때 자홍과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 반면 그래서 지나치게 완벽한 선한 인물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최루에 성공한 실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나 캐릭터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공감이 안 됐다. 덧붙여, 이 정도 규모의 영화라면 텍스트도 풍성하길 원하게 된다. 이를테면 봉준호의 <괴물>(2006)은 아주 풍성한 텍스트로 천만관객을 넘지 않았나. 그런 모범사례가 있었으니 욕심을 부려보는 것이고, <신과 함께>는 그런 면에서 확실히 아쉽다. 상업성을 흐리지 않으면서도 판관들이 저마다 한마디씩이라도 충분히 좋은 대사를 전달할 수 있었을텐데, 그런 지점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했던 것 같다.



김소희_ 특히 <신과 함께>에선 전반적으로 많은 배우들이 자신의 클리셰를 연기하는 느낌이었다. 이를 배우 개인의 해석 문제라고 보아야 할지 혹은 영화산업이 추구하는 안전하고 익숙함에 대한 선택이 만들어내는 방향성과 맞물린 걸로 봐야 할지 단언하기 어렵다. 물론 이 영화에서 하정우가 기존의 익숙한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캐릭터를 해석하는 걸 관객이 진정으로 원할지는 의문이다. 다만 분명한 건 확실히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데서 오는 재미는 없다는 거다.



안시환_ 모든 블록버스터영화들이 <괴물> 같은 텍스트를 갖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겠지만, 한편으론 비평적 관점이 유연해졌으면 좋겠다. 차라리 진짜 아쉬운 건 CG다. 대개 이런 영화에 기대하는 건 한번도 본 적 없는 세계를 창조하는 거다. 그런데 <신과 함께>는 서양의 연옥과 지옥에 대한 묘사에서 힌트를 얻어 약간씩 복제한 정도에 불과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에서만큼은 오히려 오랫동안 CG의 조악함을 논할 때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관대했던 분위기인 것 같다.



<1987>

<1987>의 연희가 상징하는 것



-<1987>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세 작품 중 평단에서는 가장 호평을 받았다.



안시환_ 부산에서 살았는데, 중학생 때 아버지가 나를 광복동에 데려가서 당시 상황을 보게 하셨다. 아버지가 나를 역사의 한복판에 있도록 해주셨고, 그래서 나도 딸을 데리고 촛불집회에 나갔다. 그럼 <1987>은 과연 그 역사의 현장으로 관객을 데리고 갔는가 질문한다면, 이 영화가 세편 중에서 가장 좋긴 했지만 화법이 약간 분열되어 있다는 생각은 든다. 초반부와 후반부의 이야기 화법이 다르다. 강동원이 연기하는 이한열의 등장. 이것을 기점으로 영화가 전과 후로 나뉘는데, 만약 관객이 후반부에 편안함을 느꼈다면 아마도 이한열의 등장 이후로 ‘영화적’ 화법들이 펼쳐지기 때문일 거다. <1987>은 너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서 모두 조금씩의 역할만을 하게끔 구성되어 있다. 그러다 강동원의 이한열과 김태리의 연희가 등장해서 우리가 흔히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서사,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서 따라갈 수 있는 화법이 시작된다. 내게 초반부의 화법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건, 각자가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장준환 감독이 1987년의 역사적 사건들을 바라보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웅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담당했던 개별 인물이 역사를 만들어냈다는 것, 특정 영웅이 아닌 집단의 역사를 그리려는 것이 <1987> 초반부 화법에 대한 이유일 것이다.



송형국_ 파업을 하고 있는 공영방송 기자로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언론과 관련된 장면에서 부끄러워서 낯을 들 수 없더라. (송형국 평론가는 현직 KBS 기자다.-편집자) 그 당시에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아이러니한 생각도 들었다. 지난해에 JTBC나 <한겨레>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 비슷한 거다. 이 영화는 ‘나’에 대해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이고 많은 관객에게도 그렇게 다가갈 것 같다. 나는 저때 무얼 하고 있었나, 혹은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품게 한다. 역사 안에서 영화와 현실이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작품이다.



김소희_ 1987년을 다루고 있지만 실제 시대를 다룬 여러 작품들과 비교해 보면 역사적 팩트를 짚어준다든가 시대를 조망한다든가 하는 시대극적 요소가 도드라지는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핵심은 박종철에서 시작해 이한열, 연희(김태리), 그리고 우리에게로 이어지는 드라마다. 시대를 어떻게 재현했는지보다 그 시대와 현재의 우리가 어떤 관계성 속에 있는 지에 집중하려는 작품이기에 더 와닿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맥락에서 강동원이 등장하는 장면도 흥미롭다. 강동원이란 배우가 지닌 환상적 측면을 충분히 인지한 캐스팅이다. 그리고 이 판타지적 만남을 통해 내가 과거로 들어가서 체험한다는 느낌이 가능해진다. 내 경우엔 강동원 배우가 이한열 열사 역할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기 때문에 나 역시 연희가 받는 것과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그런 요소들을 아주 효과적으로 잘 쓴 것 같다.



안시환_ 연희라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오늘 다루는 세편 중에선 유일하게 기능적이지 않은 여성 캐릭터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동안 한국 역사영화에서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박 처장(김윤석)과 연희는 어떤 의미에서 약간 거울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데올로기적 희생자로서의 아버지를 갖고 있는, 어찌 보면 동일한 사연을 지닌 두 사람이 각각 극우와 각성이라는 반대의 길로 나아간다. 1987년의 큰 역사가 있기까지 얼마나 작은 힘들이 모였는가. 정치인이 독점한 1987년의 사건이 아니라 개인을 조명하는 시도로서, 역사의 주변부로서의 여성을 조명하려는 시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흥미로웠다. 그것을 김태리와 강동원의 로맨스 관계로, 갑자기 다른 톤으로 풀어나가는 방식도 재미있었다. 아까 김소희 평론가도 이야기했지만 나 역시 강동원이 이한열 열사 역할이라는 걸 모르고 봤기 때문에 이후에 약간의 충격이 있었다. 이한열의 억울한 죽음, 비극성을 적절히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친 과장, 영화적 판타지라고 이야기하기보다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멜로드라마적 감정이 그 사건 안에 있다고 보는데, 그걸 적절히 고양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송형국_ 좀더 욕심을 내보자면, 80년대 학생운동에서는 여학생들이 얼마든지 더 있지 않았나.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심지어 그 이전 세대이고 여학생들이 자꾸만 배제되는 것에 대해서도 싸워온 인물이다. 이화여대학생들의 투쟁도 그렇고. <1987>의 사건에는 실제로 여성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운동을 주도하는 인물 중에서도 여성 캐릭터가 나와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안시환_ 광장에 뛰쳐나가길 주저하던 연희가 어떻게 광장에 뛰쳐나가게 되었나. 실은 그게 이 영화의 부제가 아닌가 싶다. 장준환 감독에게 김태리가 필요했던 이유는 영화 속에 현재 관객의 대리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초반의 연희는 현실의 어려움으로 인해 역사적 무관심으로 나아가려는 자인데, 이 부분은 지금의 젊은 관객을 바라보는 장준환 감독의 관점이 투영된 것일 수도 있다. 현실이 나아지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는 있지만 자포자기한 세대. 김태리가 이것을 보여주고 있다. 연희가 구호를 외치는 순간은 장준환 감독이 노리던 연희의 서사적 역할을 정확하게 해내는 순간이다. 전체적으로 로버트 알트먼 영화 같은 원심력의 서사에서 연희는 관객을 이입시키는 구심력 역할을 담당한다. 물론 여성 캐릭터로서 아쉬운 점을 비판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지점들도 있다.



김소희_ 영화는 서울대생 박종철에서 시작해 연세대생 이한열, 그리고 또 다른 연세대생 연희로 옮겨온다. 이한열의 죽음을 굉장히 잘생긴 강동원이 재현하는 것에 약간 의문이 남는다. 이 영화가 배제한 것으로 비판받을 영역은 여성이 아니라 차라리 일말의 엘리트주의인 것 같다. 엘리트들을 그리는 과정에서 배제된 층은 없는가 되짚어볼 수도 있다. 노동자 이슈도 그렇고. 위험한 발언일 수도 있지만 이한열 열사가 연세대생에 공부도 굉장히 잘하고 잘생겼다는 사실과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이는 것이 완전히 무관했을까? 최근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라든지, 오늘날에도 누군가 한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과거만큼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을까 질문하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더 많은 논쟁과 말들이 필요하다



-<1987>은 최근 한국영화의 경향 중 하나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가운데 가장 근접한 역사를 다룬다. <군함도> <박열> <아이 캔 스피크> 등 앞서 나온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면 <1987>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송형국_ 이 영화만큼 현실과 교류하는 영화가 또 있었나 싶다.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박 처장이 한병용 교도관(유해진) 고문장에 들어와서 자기 과거를 이야기하는 장면. 이때 옆방에서 고문당하는 사람의 비명이 들리는데 그 비명이 박 처장의 과거의 사운드로 겹치면서 전환된다. 박 처장의 어머니, 가족들의 비명으로 겹치는 것이다. 박 처장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비명이 다시 현재의 괴물을, 현재의 비명을 만들어낸다고 느꼈다면 과장일까. 박종철이 지키고자 했던 대학 선배가 지금은 무얼 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역사의 순환, 되풀이를 드러내는 이 장면의 편집은 더욱 복잡한 심경을 불러일으킨다. 에필로그에서 전태일 열사부터 이한열 열사까지 진혼이 아닌 초혼 의식을 치른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열사들의 혼을 불러내서 지금 현재 광장에서 함께하는 것이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2017년의 광장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엊그제 본 100만 광장과 영화가 다루는 100만 광장의 풍경이 상당히 겹친다. 열사들의 정신과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열망을 드러낸 장면이다. 수년째 독재를 당해도 전혀 저항하지 못하고 겉보기에 평화롭게 살아가는 국가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저항의 역사는 특수한 기억이다. 앞으로도 이 영화의 기억이 관객의 일상에 많이 개입할 거란 생각이 든다.



김소희_ 역사를 과거의 사건에 국한시키거나 왜곡시키지 않으면서도 현재로 잘 끌고 왔다는 것이 <1987>의 장점이다. 윤리적이며 현재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훼손 없이 가져온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안시환_ <택시운전사>(2017)를 만든 장훈 감독과 <1987>을 만든 장준환 감독을 비교해, 누가 좀더 영화를 윤리적으로 대하고 있는가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87>은 영화적인 것들을 최대한 억누르려는 움직임이 텍스트 안에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건을 영화적으로 풀어갈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장준환 감독 또한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이 영화가 역사를 거창하게 다루지 않고 사적인 이야기에서 접근해나가는 시도였다고 본다. 박 처장의 사연, 연희의 사연 모두 자기와 관련된 사적 이야기에서 역사적으로 확장된다. 사람은 어떻게 역사적, 정치적 신념을 갖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역사를 개인화한다는 측면에서 위험할 수 있는 접근법이지만 사적인 이야기가 역사로 엮여들어가는 이음매가 무척 훌륭했다. 이건 분명히 ‘지금’ 어떻게 역사를 전달할 것인가 하는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송형국_ <씨네21>에서 2017년 12월 개봉한 영화들을 포함해서 올해의 영화를 다시 꼽으라면 순위가 확 바뀔 것 같다. (웃음) 겨울에 볼 영화가 많아 좋았다. 나쁘게 전망하면 앞으로 여름과 겨울 시장을 목표로 블록버스터가 늘어나는 현상이 더 심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천만 기획영화가 시장을 채우고, 나머지 영화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질까 괜히 걱정이다.



안시환_ 그런데 그보다 규모가 작은 50억, 60억원짜리 영화라고 더 좋았던 적이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론적으로 다이아몬드 구조가 되면 좋겠지만 실제로 현실의 사례들을 따져보면 큰돈 들인 영화가 담론적으로도 더 풍요롭고 만듦새도 좋은 경우가 많았다. 그보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건 이런 자리를 자주 마련해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일이 아닐까. 무슨 말을 할까 걱정하면서 나왔는데 할 말이 너무 많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