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독일이 프랑스 등 유럽국가를 차례로 침공하면서 영국 정부는 큰 혼란에 빠진다. 영국군 역시 큰 피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본토까지 공격받을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 국가적 위기에 윈스턴 처칠(게리 올드먼)이 극적으로 총리에 임명된다. 국왕(벤 멘덜슨)을 포함해 총리로서의 자질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처칠은 어려움 속에서도 독일과의 전면전을 다짐한다. 그러나 전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급기야 다른 정치인들은 독일과의 굴욕적인 ‘평화 협정’을 제안한다.
<어톤먼트>(2007) 등을 연출했던 조 라이트 감독의 신작 <다키스트 아워>는 최악의 시기에 총리에 임명된 윈스턴 처칠이 독일과의 전쟁을 결정할 때까지 겪은 사건들을 그린 작품이다. 게리 올드먼이 처칠을 연기해 큰 관심을 받았으며, 올해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다. 20세기 정치사에서 처칠만큼 많은 주목을 받은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는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성공한 정치인인 동시에 1차대전 당시 저지른 실책으로 비난을 받던 군인이었으며, 괴팍한 성격과 불행한 가족사 때문에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던 인물이기도 했다.
조 라이트 감독이 <다키스트 아워>에서 보여주는 것도 처칠을 둘러싼 이런 상반된 시선들이다. 물론 드라마의 기본적인 뼈대는 독일과의 협정을 거부하고 전쟁을 선언하기까지의 과정이지만 감독은 그 사이에 처칠의 남다른 개인사, 국왕과의 갈등, 정적들과의 신경전을 그리며 처칠이 살던 시대를 입체적인 관점에서 보도록 유도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전쟁 영웅’ , ‘위인’으로 평가받는 처칠이 실제 어떤 어려움을 겪었을지 상상하며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후반부로 접어들며 지금까지의 미덕을 잃고 만다. 처칠이란 이름의 특별한 개인이 가진 보편적인 문제를 묘사하길 그치고 국가의 미래를 짊어진 영웅적 인물을 그리려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물의 구체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영국의 미래와 세계의 평화라는 거대한 대의명분만이 남는다. 처칠의 위대함을 주장하는 영화로는 적절할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시대와 인물을 둘러싼 복잡미묘한 맥락은 휘발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