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선 감독님이 걸어오신 길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게 가장 큰 걱정거리다.” <1급기밀> 최강혁 프로듀서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고 홍기선 감독의 데뷔작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에서 프로듀서로 함께 데뷔했던 그다. 2016년 12월 15일 홍기선 감독이 <1급기밀> 후반작업을 앞두고 돌연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거목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1급기밀>은 최 프로듀서와 홍 감독이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이후 오랜만에 만나 작업한 영화다. 2008년, 최 프로듀서는 홍 감독으로부터 <1급기밀>의 당시 제목인 ‘별이 되어 떠난 님’ 트리트먼트를 받았지만 “군비리 사건이라는 소재가 부담이 되어 거절”했다. 6개월 뒤에 홍 감독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강혁아, 내가 나이를 먹어 함께할 나이 먹은 PD가 없다. 또 더 많은 소통을 하면서 만들고 싶고, 더 많은 대중에게 알리고 싶다’고 하셨다.” 마음이 짠했지만 그때도 그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홍 감독과 함께 아름다운재단 공익상 시상식을 찾아 ‘빛과 소금상’을 수상한 계룡대 근무지원단의 군납비리 사건을 내부에서 고발한 김영수 해군 소령을 만나면서 그의 마음이 바뀌었다. 리틀빅픽처스의 투자로 영화는 겨우 촬영에 들어갔고 그는 매 회차 홍 감독을 자신의 차로 모시고 현장과 집을 오갔다. 든든한 파트너 덕분에 홍기선 감독은 계획된 47회차 만에 촬영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홍기선 감독의 비보를 듣고 충격이 컸던 것도 평소 건강에 전혀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상범 편집감독, 장영규 음악감독을 포함해 스탭들이 머리를 맞댄 덕분에 <1급기밀>은 후반작업을 끝내고 1월 2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최 프로듀서는 한양대 영화동아리 소나기의 선배인 공수창 감독의 소개로 홍기선 감독을 처음 만났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이후 <박봉곤 가출사건>(감독 김태균)을 제작하고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감독 장동홍), <알포인트>(감독 공수창) 제작을 진행하며 홍 감독과 다른 길을 걸었지만, 그때도 그는 한달에 한두번은 꼭 홍 감독을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최 프로듀서의 꿈에 홍 감독이 종종 나타난다고 한다. “꿈에서 회의를 하고 계셔서 ‘여기 왜 계세요?’라고 여쭤보면 ‘콘티대로 잘 찍었는지 확인을 해야 될 거 아냐’라고 하시더라….” 하늘에서 홍기선 감독이 <1급기밀>을 보고 만족할까. “좋아해주실지 모르겠다. 다만 영화의 소재인 군비리 사건 내부고발자인 김영수 소령님과 조주형 대령님께서 영화를 보고 잘 만들어줘 감사하다고 해주셔서 적어도 그분들에게 누가 되지는 않은 것 같다.”
<1급기밀> 시나리오
그의 시나리오책은 빨간색 메모로 빼곡했다. “작업을 하면서 생각난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적어둔 것”이라고 한다. 그가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요약한 이 영화는 “힘없는 정의가 정의 없는 힘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2016 <1급기밀> 제작 2009 <아부지> 제작 2004 <알포인트> 각색, 프로듀서 1998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프로듀서 1996 <박봉곤 가출사건> 제작지휘 1992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기획,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