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더 히어로> 소멸하는 것들의 이유와 의미
2018-01-31
글 : 김소미

40년 전에 단 한편의 히트작을 낸 서부극의 스타 리 헤이든(샘 엘리엇)의 트레이드마크는 실제 배우 샘 엘리엇의 그것과 거의 동일하다. 홀쭉한 체격에 풍성한 콧수염, 발음을 길게 늘리는 중후한 목소리의 샘 엘리엇은 1970년대부터 미국 TV시리즈와 서부극에서 카우보이 역할을 도맡아왔다. 영화 바깥의 배우가 지닌 자전적 요소와 긴밀히 교류하는 <더 히어로>는 자기 가치에 대한 불안감과 쇠락에 맞서는 두려움, 동시에 실존의 형형한 아름다움을 감상적으로 풀어낸 드라마다. 리는 매니저에게 새로 들어온 시나리오가 있는지 다그쳐보지만 마땅한 일거리는 없고, 치킨 소스 광고나 녹음하는 신세다. 무엇보다 그는 암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랬던 그가 젊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샬롯(로라 프리폰)과 만나고, 평생공로상 연설로 유튜브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자기 삶에 새로운 챕터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들뜬다. 하지만 <더 히어로>는 잊혀진 은막의 스타가 다시금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판타지로 흐르지는 않는다. 리는 고대하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순간에 오히려 육체의 우울 속으로 고개를 돌린다. 시한부 인생의 고통, 가족과의 화해 등 후반부에 이르면 다소 구태의연한 전개가 이어지지만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리의 몽상 혹은 환각이 이를 적절히 해소한다. 버스터 키튼의 영화, 서부극, 스탠드업 코미디 그리고 시에 이르기까지 잊히는 것들을 한자리에 불러내는 영화다. 말미에선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의 서정시를 빌려 소멸하는 것들의 이유와 의미에 대해 넌지시 설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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