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설 합본호를 만드는 기분은 묘하다. 뭔가 진짜 1년의 시작 같은 느낌이 들어 설레기도 하지만, 오래도록 준비한 영화 특집과 인터뷰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그만큼 우울하기도 하다. 이번호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2018년이 다 가려면 앞으로 45권의 <씨네21>을 더 만들어야 한다. 이번에 다 담지 못한 내용들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계속 관심 가져주시길.
일단 설 연휴 개봉영화들을 모아봤다. 최근 한국영화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배우와 감독의 교체 없이 3편까지 이어지고 있는 시리즈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개봉 2월 8일)의 김석윤 감독을 인터뷰했고, <마이 제너레이션>(2003)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6)를 통해 <씨네21>이 언제나 관심을 가지고 있던 노동석 감독이 거의 10년 만에 만든 <골든슬럼버>(개봉 2월 14일)의 강동원을 만나 표지 촬영을 했고, 고 김주혁의 출연작인 조근현 감독의 <흥부>(개봉 2월 14일)는 김주혁이 현장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사진들을 모아봤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최초의 흑인 히어로 주연작인 <블랙팬서>(개봉 2월14일)의 제작진과 배우들을 LA에서 만났다.
야심적인 인터뷰는 바로 <곡성> 블루레이 음성해설을 위해 한국을 찾은 <카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 뱅상 말로사와의 만남이다. 지난해 국내 일부 평단에서 혹평을 하기도 했던 <곡성>을 ‘올해의 영화’로 치켜세우며 궁금증을 자아냈던 그가 속시원한 답변을 들려줬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환경 변화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카이에 뒤 시네마>의 현재, 영화비평과 영화잡지의 미래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와 3시간 넘게 인터뷰를 진행한 송경원 기자가 기사에 썼듯 ‘새로운 세계를 만난 여행 같은’ 느낌을 독자와 공유했으면 한다. 그리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고 있는 고 김기영 감독의 20주기 특별 전시에 맞춰 그의 둘째 아들 김동양씨 인터뷰도 진행했다. 장남 김동원씨에게 만남을 청했다가 “우리 막내가 아버지와 똑같이 생겼다”고 하여 그를 만나게 된 것인데, 진정 잡지에 실린 사진을 보게 되면 깜짝 놀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한편의 영화를 가족들이 거의 토론하며 만들었는데, 전시돼 있는 콘티에 어머니의 글씨가 보였다는 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하다.
끝으로, <철원기행> <초행>의 김대환 감독, <시인의 사랑>의 김양희 감독, <용순>의 신준 감독, <폭력의 씨앗>의 임태규 감독, <꿈의 제인>의 조현훈 감독, 그렇게 젊은 다섯 신인감독들의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평소 영화제 같은 데에서 만나면 조용조용해 보이던 그들이 그동안 쌓인 얘기가 뭐가 그리 많았는지, 뒤풀이를 위해 준비한 식당 예약시각을 늦춰야 할 정도로 역시나 5시간 가깝게 대담이 진행됐다. 영화를 다양하게 상영하라고 요구했더니, 매점 메뉴만 다양하게 만들고 있는 현재의 상영관 문화 앞에서 그들은 각기 다른 처지에서 독립영화를 만들고 있는 현실, 그리고 충무로 상업영화라는 코앞의 현실에 대한 저마다의 고민을 진솔하게 들려줬다. 차기작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고 싶다’가 아니라, 데뷔작을 만들면서 지나치게 긴장한 나머지 충분히 즐겁게 찍지 못했다며 “다음 영화는 사람들과 무조건 재밌게 즐기면서 찍고 싶다”는 김양희 감독의 얘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새벽까지 이어진 자리에서, 우리도 재밌게 즐기면서 잡지를 만들자는 다짐을 했다. 진짜 끝으로, 이번호를 꼼꼼히 읽으시게끔 괜히 거창한 화두를 툭 던져보자면, 프랑스 비평가 뱅상 말로사와 할리우드 시나리오작가 출신의 넷플릭스 프로듀서 레이타 칼로그리디스, 그리고 한국에서 TV와 영화를 자유로이 오가고 있는 감독 김석윤, 그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영화의 미래에 대한 답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비교하며 읽어봐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