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제작 다큐멘터리 <지구: 놀라운 하루>에 따르면 지구상의 동물은 크게 두 종류로 분류된다. 태양을 찾는 동물과 태양을 피하는 동물. 그에 따라 영화는 새벽 동틀 무렵에서 출발해, 태양이 자취를 감춘 어두운 밤에 도착하며 끝난다. 지구가 기지개를 켤 무렵, 이구아나 새끼들은 서서히 알을 깨고 나온다. 멀찍이서 이들을 노리는 뱀들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운을 시험해야 할 상황이지만 말이다. 태양이 가장 높이 떴을 때는 맹수도 사냥을 멈춘다. 이 평화로운 시간에 신진 기린과 원로 기린간의 집안싸움이 벌어진다. 해질녘까지 동물들은 먹이를 모으며 밤을 준비한다. 밤이 되면 스스로 빛을 내는 생물들의 아름다운 시간만이 펼쳐질 것만 같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사냥하고 누군가는 희생된다. 잔혹하지만 아름다운 밤이다.
더러는 어디서 본 것 같은 영상일 것이고, 몇몇은 실제로 본 것이 맞다. 이 다큐멘터리의 힘은 이미 있는 것을 재구성하는 데 있다. 전작에 해당하는 <지구>(2007)가 계절의 변화에 따른 동물들의 생태계에 주목했다면 이번에는 단 하루의 시간 속에 동물 생태계를 축약한다. 나열되고 분산된 동물들의 삶은 태양의 리듬에 맞춰 마치 군무를 추는 것처럼 배열된다. 다소 단순화하는 감은 있지만, 상황과 행동에 들어맞는 음악은 무성영화를 연상시키며 소소한 재미를 준다. 영어 버전의 원작에서 로버트 레드퍼드가 담당한 내레이션을, 한국어 버전에서는 배우 이제훈이 맡았다. 내레이션이 영화 전체 분위기를 좌우한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 이제훈의 친절하고 예의 바른 어투는 영화 속 이야기를 훨씬 친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