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人]
<피의 연대기> 오희정 프로듀서 - 관객에게 재미있게 다가서기
2018-02-08
글 : 이화정
사진 : 백종헌

“생리가 주는 우울함, 괴로움을 전복시키고자 했다.”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의 오희정 프로듀서의 방향성은 명쾌했다. 축축하고, 검붉은 피가 아닌 생리컵에 담긴 것처럼 맑은 피, 그 맑고 밝은 피의 색깔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금기시되던 생리라는 용어를 다큐멘터리에 담아내고자 하는 작품 의도였고, 그러자면 관객에게 ‘최대한 재밌게 다가갈’ 방법이 필요했다. 장소가 허락하는 대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대신 배경이 될 장소를 선정하고, 인터뷰이를 찍을 때 조명도 신경 썼다. 뿐만 아니라 생리의 모든 것을 쉽게 설명해줄 영화 속 애니메이션 역시 패션매거진 필름처럼 컬러풀하게 만들었다.

오희정 프로듀서가 김보람 감독과 <피의 연대기>를 기획한 건 2015년 11월. 함께 다큐멘터리 해외배급을 하는 ‘독에어’에 근무하던 둘의 의기투합에서 비롯됐다. “당시 국내는 아직 여성 이슈가 잠잠할 때였지만 해외는 말 그대로 들끓고 있었다. 인류 절반의 움직임, 그 조류를 우리도 담고자 했다.” 마침 생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해외에서도 단편을 빼곤 본격적으로 제작된 것이 없었다. <피의 연대기>가 완성되기까지 소재로 인한 주변의 염려와 만류가 적지 않았다. 당장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것만 해도 난관이었다. “여성학자가 아닌 일반인의 목소리를 담고 싶었다. 카메라가 켜지니 이야기가 쏟아지더라. 그만큼 여성들이 이 문제에 관해 할 말이 많았던 거다.” 특히 감독, 프로듀서, 촬영감독, 애니메이션 감독 등 주요 스탭 모두를 20~30대 여성으로 꾸렸다는 것도 고무적이었다. “취재를 하다보니 가사노동을 하든, 공부를 하든, 직장을 다니든 여성의 대부분은 피흘리며 노동하고 있더라. 여성을 노동하는 존재로 더 인식하게 됐다. 마침 나와 김보람 감독이 이 작품의 총대를 메고 있으니 여성 스탭들로 꾸려보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오희정 프로듀서는 차기작으로 정윤석 감독의 작품을 프로듀싱하고 있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다니다가 “재밌는 일을 하자”는 마음에 좋아하던 영화 일을 할 수 있는 해외배급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참여한 <더 플랜>(2017)의 개봉이 빨라져서 그렇지 <피의 연대기>가 오희정 프로듀서의 첫 작품. 그의 말에 따르면 그래서 ‘첫사랑’이다. “좋은 다큐멘터리를 계속 만들고 싶다. <피의 연대기>처럼 말랑말랑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든, 극영화처럼 감동을 주든 관객과의 접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더 치열하게 고민하려 한다.”

운동화

컨설팅 회사에 다닐 때만 해도 펜슬 스커트에 하이힐은 오희정 프로듀서의 공식 작업복이었다. “영화하면서 운동화가 일상화됐는데, 그게 나한테는 큰 변화였다.” 운동화를 신고 현장에서 뛰면서부터 성격의 변화도 함께 왔다. “쓰는 단어도 거칠어지고, 또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도 많이 하게 되더라. (웃음)” 오희정 프로듀서의 운동화는 모두 감독, 스탭들이 선물로 사준 것. 운동화 신고 더 열심히 달릴 예정이다.

영화 2017 <피의 연대기> 프로듀서 2017 <더 플랜>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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