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주간지는 명절 연휴 때 발행을 쉬기 때문에, 명절 전에 미리 잡지를 만든다. 연휴 전에 만든 잡지가 연휴를 보낸 뒤, 그러니까 1주일 정도 뒤에 독자들을 만나게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김성훈 기자가 이현주 감독 사건을 단독 보도했던 지난 1143호에서 “영화계 #미투(#MeToo) 운동을 이어가겠다”고 했던 에디토리얼은 정확하게는 지난주가 아닌 지지난주에 썼던 내용이다. 명절 연휴를 쉬는 주간지 입장에서는 ‘제발 큰 뉴스만 생기지 마라’ 하는 마음으로 보내는 그 한주의 공백이 어쩔 수 없는 것이긴 한데, 하필 이번 설 연휴는 그 어느 때보다 급박했다. 시인 고은과 연극 연출가 이윤택으로부터 시작한 뉴스는 배우 조민기를 지나, 이번호 <씨네21>이 단독 보도한 영화계 성희롱 사건까지(14쪽 김성훈 기자의 포커스, ‘조근현 감독 성희롱 사건 밀착 취재’ 참조) 씁쓸함과 반가움이 교차하며 아연실색할 지경이었다. 이번 포커스 기사 또한 사실상 설 연휴 전에 완료한 기사였다. 어쨌거나, 비록 쉬고 있었지만 차분하고 면밀하게 이후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어준 셈이다.
지난호 에디토리얼에서 참담한 마음으로 고백했다시피, <씨네21>로서는 그동안 후속 취재에 있어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달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부적으로는 <씨네21>이 진행했던 ‘영화계 내 성폭력’ 연속 대담이 일종의 ‘미투 운동’과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실명 비판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큰 효과가 없다는 것도 느꼈다. 사실 조근현 감독 역시 1년 가까이 진행된 그 연속 대담에서 많은 참석자들이 이니셜로 언급할 때 종종 등장한 이름이었다. 지난호 이현주 감독에 이어 이번호 조근현 감독까지 취재한 김성훈 기자가 (우리끼리 있을 때) 얘기한 것처럼, 가해자들을 A와 B로만 폭로할 때 그들은 콧방귀만 뀐다는 것이 절대 틀린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추측 가능하게 기사를 써도 실명이 빠지면 그 기사는 절대 완결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미투 운동, 그러니까 가해자들이 감히 명예훼손을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퍼져가고 있는 실명 폭로의 물결은 묘한 쾌감을 준다. 지난 1, 2년 동안 가해자들이 겉으로는 잘못했다고 사과하면서 뒤로는 피해자들을 한명 한명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던 사례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JTBC에 출연한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많은 이들이 큰 용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 함께 용기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알게 됐다. <씨네21>로서도 지난해 영화계 내 성폭력 특집과 연속대담을 진행하면서 마지막까지 실명을 공개하지 못해 분한 마음 달랠 길 없던 감독들이 몇명 있다. 법정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있는 다른 증거나 추가 제보자가 없다는 것을 눈치챈 그들은 도리어 우리를 협박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명예훼손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매체 입장에서 가해자에게 반론권을 충분히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준비가 덜 된 채로 ‘들이댔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했다. 그래서 추후 나름대로 준비하는 것도 있거니와, 더 많은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계 #미투를 metoo@cine21.com으로 보내주시길. 지난호에서도 얘기했지만,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지켜봐주었으면 한다. 앞서 얘기했던 그 감독님들, 정말 오래 기다리셨다.